누가복음 14:15~24절
제가 목회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누가 알곡인지, 누가가 가라지인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저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교회 중에 온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습니다.
주님의 밭에서는 은혜가 임하면 가라지처럼 보이던 사람이 알곡이 됩니다.
교회가 매일 매일 은혜를 사모하는 이유입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행사는 순서자와 참석자의 자리가 있고, 위치가 있습니다.
반면 누구든 참석할 수 있는 결혼식, 환갑잔치, 교회 행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천국 잔치는 어떨까?
세상의 잔치와 무엇이 다를까?
누가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
천국 잔치도 지위와 위치에 따라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을까?
우리는 천국 잔치를 얼마나 소망하면서 살까?
이 땅 잔치의 즐거움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닐까?
베드로는 변화산 사건을 평생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천국을 조금 맛본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들려주신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해 베드로가 맛보았던 천국 잔치를 소망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보통 큰 잔치 비유는 전도를 강조하는 말씀으로 적용했습니다.
거리에 나가서 강권하여 데리고 와서 교회에 채우라는 것이 강조되었습니다.
저도 부흥회가 열렸으니 채우라는 것으로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잔치 비유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큰 잔치 비유를 들려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비유를 들려주신 장소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해서 식사하는 자리입니다.
첫 번째 배경은 장소입니다.
14:1절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았습니다.
두 번째 배경은 참석자들의 행동입니다.
14:7절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앉으려는 것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높은 자리를 앉으려고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14:11절입니다.
세 번째 배경은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14:12~14절입니다.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에게 어떤 사람을 초청해야 참된 잔치가 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자를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면 나중에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번째 배경은 바리새인의 말입니다.
15절의 바리새인의 말이 오늘 비유의 직접적인 배경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을 들은 어떤 바리새인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것이 복되다”고 합니다.
자기는 하나님 나라 잔치에 충분히 참석할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이 바리새인은 잘난 사람이 참석할 수 있는 곳으로, 세상과 같은 곳으로 여겼습니다.
천국 잔치는 너희들이 지금 즐기고 있는 잔치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천국 잔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석하는 곳이 아니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 잔치라는 비밀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비유의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잔치의 날이 되었습니다.
집주인은 종을 보내어 사람들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잔치는 우리의 잔치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잔치는 참석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습니다.
먼저 초청자는 초대할 대상을 정하고, 초대장을 보냅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은 참석 여부를 초청자에게 알립니다.
주인이 잔치 준비를 마치면 참석에 응한 분에게 다시 종을 보냅니다.
17절의 상황입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잔치에 참석해야 합니다.
변명이나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거절하면 초청자가 복수해도 무방합니다.
거절은 초청자를 모독한 행위가 됩니다.
거절은 초청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동이 됩니다.
유대 전승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에는 친구였던 자들이 이제 내 원수가 되는 쪽을 택했다.
그들에게 가서 이런 목욕을 당했으니 나도 내 마음대로 어떤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전하라”
비유에 등장하는 세 명은 핑계를 대면서 못 가겠다고 말합니다.
두 명은 이렇게 해서 못 가니 양해해 달라고 합니다.
미안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8절은 첫 번째 사람의 변명입니다.
밭을 샀는데 밭을 살펴봐야 한다고 변명합니다.
거짓말입니다.
계약 전에 밭을 살피고 삽니다.
직장이 바쁘다, 사업이 바쁘다, 일반적인 핑계를 대는데 거짓말입니다.
19절은 두 번째 사람의 변명입니다.
소를 샀는데 소의 건강을 살펴봐야 한다고 변명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소를 사기 전에 소가 건강한지 점검하고 살핀 후에 삽니다.
소유에 집착한 사람의 변명입니다.
소유는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20절은 세 번째 사람입니다.
변명조차 없습니다.
장가를 갔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율법을 악용한 것입니다.
사실 남자가 결혼하면 1년 동안 전쟁에 나가지 않도록 율법에 정해 놓고 있습니다.
잔치가 전쟁이 아닌데 잔치를 전쟁과 동실시 하면서 거절한 것입니다.
세 사람이 약속을 어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집주인이 베푼 잔치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 더 중요한 일이 생겨서 성가신 초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이 준비한 잔치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천국 잔치로 비유합니다.
그런데 예배보다 바쁜 일, 더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배가 매력적이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참석을 거절한 사람과 얼마나 다른가를 묻고 있습니다.
천국 잔치에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날마다 드리는 예배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나와야 은혜가 있습니다.
감격이 사라지면 형식만 남습니다.
집주인은 종으로부터 세 명이 거절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거절한 사람들이 자신을 모욕했고 명예를 실추시켰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은 분노의 에너지를 은혜로 바꾸었습니다.
집주인은 그들에게 당장 분노 표현하기보다는 종들에게 나가서 누구든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24절에 거절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잔치를 맛보지 못합니다.
같은 큰 잔치 비유이지만 강조점이 다른 마태복음 22:1~10절의 잔치 비유가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면서 시작한 비유입니다.
내용은 비슷하지만 강조점이 다릅니다.
마태와 누가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정서를 잘 알고 있는 마태는 심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를 진멸합니다.(마 22:7절)
누가는 심판보다는 구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주인은 참석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들이 데려온 사람들이 21절입니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천국은 이런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잔치에 불러주면 황송한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간절한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천국 잔치는 넉넉합니다.
아무리 채우려고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경계선을 넘어 데려오라고 합니다.
이방인까지 초대하고 있습니다.
비유에서 주인이 빨리 데려오라,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하는 주인의 마음이 느껴지나요?
재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인은 잔치에 자신이 있습니다.
일단 잔치에 오면 실망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입니다.
큰 잔치는 주인의 자비하심이 가득합니다.
기쁨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잔치는 지금 베풀어져 있습니다.
여기까지 비유의 내용입니다.
집주인의 초청에 거절한 사람은 당시의 바리새인, 유대인, 종교지도자를 가리킵니다.
종교적인 자부심 때문에 예수님의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평소에 율법을 강조하고 겸손을 강조한 바리새인의 잔치에 무엇이 빠졌다고 보셨기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가 베풀 잔치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역사의 끝에 큰 잔치가 벌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사야 25:6~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만군의 여호와가 잔치를 베풀고 왕들이 먹을 음식을 제공하는 꿈입니다.
이 잔치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서 열리며 손님 중에는 모든 이방 민족이 포함 될 것입니다.
죽음의 끝이 나고 눈물이 씻음을 받는 그날은 영광스러운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는 즐거움 때문에 영원한 잔치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인 것들과 영원한 것을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용) 자만하지 마세요.
바리새인은 자만하여 예수님의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늘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자꾸 높아지려고 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높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부와 배타와 차별과 배제, 정죄만 일삼습니다.
초청이 거절되었던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잊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천국 잔치의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천국의 넉넉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의 넉넉함으로 치러지는 천국 잔치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매일의 예배가 천국 잔치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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