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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

부자 거지

by ysong 2024. 1. 15.

누가복음 16:19~31

2024년 표어는 보내주소서입니다.

이번 표어는 두 방향으로 보내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았습니다.

우리교회에 일꾼을 보내주소서, 말씀으로 양육된 일꾼들을 직장에, 생업에, 가정에, 학교에, 열방에 보내주소서입니다. 올해 보내신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잠시 멈추었던 예수님의 비유를 다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쉽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달라집니다.

말씀을 맛보아 알아가는 즐거움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말씀에 믿음을 실어서 능력을 맛보아 알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돈을 좋아합니다.

여기저기서 돈을 버는 노하우를 알려줍니다.

주식의 노하우, 장사의 노하우, 투자의 노하우를 알려줍니다.

그런데 한 가지 빠진 게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알려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재물을 둘 다 섬길 수 없다고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비웃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비웃음이 오늘 비유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부자와 거짓 나사로 비유의 배경은 15~18절입니다.

옳지 못한 청지기의 비유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악함이 돈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는 하나님의 축복도 아니고, 경건의 결과물도 아닙니다.

가난은 하나님의 저주도 아니고, 하나님이 벌로 주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가난은 선하고, 부자는 악하다고 나누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부를 선과 악으로 나누었습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로 나누었습니다.

 

오늘 비유는 돈에 대한 잘못된 성경해석, 돈과 관계없는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왜 비웃었을까요?

먼저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누구인지를 지적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신명기 28:1~6절은 부와 신앙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8:1~6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을 듣고 지킨 결과로 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편 1~3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이 밖에도 많습니다.

율법에 순종하면 복 받고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부는 내가 율법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복 주신 것입니다.

반대로 가난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하나님의 벌 주신 것으로 여겼습니다.

철저한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돈을 좋아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율법이 부에 대한 신념을 강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부는 자신이 성경을 따른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왜곡하고 당당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15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 앞에 스스로 옳다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틀림이 없는데, 바리새인들이 말씀을 곡해하는 인간의 완악함을 드러냈습니다.

뜬금없이 말씀하신 것처럼 보이는 18절에 이혼과 재혼을 관함 말씀을 언급한 까닭입니다.

인간의 완악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24:1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이혼증서를 써 주라는 것은 여인보호법입니다.

먹고 살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기 위한 보호법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악용해서 오히려 더 쉽게 아내를 버리는 근거로 이용했습니다.

밥이 타네, 말을 안들어 하면서 이혼증서를 써 주어 집에서 쫓아내었습니다.

악용되었습니다.

 

말씀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귀에 걸면 귀고리로, 코에 달면 코고리로 이용했습니디.

이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참된 의가 무엇인지를, 천국 가는 의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비유의 내용입니다.

부자와 거지의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부자는 명품으로 치장하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아갑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존재로 살아갑니다.

부자는 바리새인을 상징합니다.

부자인데 이름은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는데 이름도 없습니다.

갈급함이 없는데 이름도 없습니다.

자신이 누리는 부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데 이름이 없습니다.

내가 열심히 잘 믿어서, 나의 의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천국에 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지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피부병이 걸렸는데 개가 와서 핥습니다.

그러나 거지의 이름은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서 무슨 죄를 지어서 저렇게 사느냐고 손가락질을 당했지만 이름이 있습니다.

이 땅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공존합니다.

 

죽음은 부자와 거지에게 공평합니다.

죽은 이후 둘 사이에 역전이 일어납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깁니다.

부자는 장례식을 치러 장사 되었습니다.

죽어 음부에 가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 부릅니다.

그만큼 신앙에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고통 중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긍휼히 여겨달라고 간구합니다.

 

부자는 음부에 가서 긍휼의 여김을 구하고 있습니다.

부자로 살 때는 긍휼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음부가 어떤 곳인지 알려줍니다.

서로 왕래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음부는 이 땅에서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고통을 느끼는 곳입니다.

고통으로 하루를 보내는 곳입니다.

고통을 잊게 할 수 있는 마취제가 없는 곳입니다.

 

음부는 목마른 곳입니다.

부자가 이 땅에서 목마름을 몰랐습니다.

거지의 목마름을 외면했습니다.

늘 자기 인생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음부는 사랑을 느끼는 곳입니다.

부자는 이 땅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28절에 형제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을 느껴지게 되니까 고통입니다.

자신의 역전된 현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형제들을 위해 나사로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말합니다.

모세와 선지자가 있으니 들을 거라고 합니다.

율법과 선지서에서 충분히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왜곡하는 시각으로 대하면 아무리 더 큰 기적이 있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말씀을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무엇을 놓쳤기에 비유를 들려주신 것일까요?

비유에서 한 부자는 바리새인을 상징합니다.

부자가 부유했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기는 하지만 부자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부가 직접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여기서 부자는 자기의 의, 자기 경건으로 충만합니다.

부족함이 하나도 없습니다.

긍휼을 구하지 않아도 살 수 있습니다

복 받았다는 자신감으로 말씀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합니다.

부자이기에 천국은 당연히 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그런 사람에게 닫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바리새인들은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구제는 우월의식의 표현이었습니다.

자기 경건의 과시였습니다.

구제하면 더 큰 복을 주시겠다는 보상 심리가 작용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천국이 닫혀 있습니다.

 

반대로 나사로는 하나님의 은혜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나사로는 늘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에게 천국은 열려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철저히 경험한 사람에게 천국은 열려 있습니다.

 

재물을 섬기지 않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참부자는 누구란 말인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무엇을 복의 근거로 삼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참 부자는 본질적으로 자기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알아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영혼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참 거지는 자기 의로 충만한 사람, 영혼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비유에 등장하는 한 부자는 부자이지만 거지입니다.

반대로 나사로는 거지이지만 부자입니다.

 

부는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잘 사용하라고 맡긴 은사입니다.

부는 하나님이 내리는 벌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더 큰 하나님의 긍휼과 영적인 유익을 얻을 기회로 사용되는 수단입니다.

 

적용) 나사로로 삽시다.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시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우리도 2024년에는 나사로처럼 살길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요.

자기 의를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갑니다.

돈으로,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은 나사로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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