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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척하는 사람들

by ysong 2023. 6. 27.

에스라 7:10절

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교 학생들이 부모와 교사를 속일 때-아픈 척,

여인들의 화장-예쁜 척,

나이든 어른들-젊은 척,

여기 저기 돈 꾸고 철면피인 사람-아무 일도 없는 척,

3-있는 척, 배운 척, 잘난 척

가족이나 교인 이웃들 앞에서 척하며 살지 말라야 합니다. 그것은 허당이며 허세입니다. 기도해도 기도한 척 할 필요 없고, 도와주어도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새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오늘 에스라 7~10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공동체의 지도자와 백성들은 척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하면서, 예배를 잘 드리는 척하면서 적당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공동체의 개혁 이야기가 7~10장의 내용입니다.

 

공동체를 개혁하는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척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에스라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7:10절입니다. 연구하고, 준행하고, 삶으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3박자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모세도 신명기 6장에서 지켜 행하도록 가르치라고 말씀하면서 그의 결과는 복을 받고 번성하게 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원리는 같습니다. 모세나, 에스라나, 바울이나 사람들이 마땅히 행하는 원리는 같습니다. 한마디로 줄이면 척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배우고, 행동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 복을 받고, 그 사람이 바로 사회를 개혁하고, 가정을 개혁하고, 공동체를 개혁합니다.

 

3박자를 갖춘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성경을 연구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좋아한다고 해서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했으면 지켜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교만해지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지식과 행동으로 타인을 정죄하는데 사용합니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데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새벽예배를 나온다는 이유로 그렇지 못한 사람을 신앙이 부족한 사람으로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에스라의 개혁으로 율법을 지키자는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변질되어 발전된 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지키고, 삶으로 가르치는 데까지 이르려야 합니다. 주일학교교사, 중고등부 교사, 대학부 부장님들은 특히 여기까지 나아가도록 힘쓰시길 바랍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출바벨론 공동체를 어떻게 재건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출애굽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많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1~6, 에스더, 7~10, 느헤미야//동양에서는 인도에서는 석가모니(483), 중국에서는 공자(479)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1~6장은 출바벨론을 한 이스라엘공동체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내용입니다. 지도자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입니다. 성전 건축이 중단되자 활동했던 학개와 스가랴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성전건축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관계의 회복입니다.

 

이 사건을 출애굽사건과 비교하여 보셔야 합니다. 애굽이라는 세상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출애굽을 했습니다. 지도자로 모세와 아론입니다. 그들이 시내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내산은 성막의 모형입니다. 모세가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만나 곳에 대한 상징이 성막의 지성소이고 장로들이 머물러 있었던 곳이 성소이고, 백성들이 머물러 있었던 곳이 뜰입니다.

 

출바벨론으로 성전을 건축한 것과 출애굽을 해서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는 것은 같은 의미로 봐도 무방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바로 예배이고, 성전을 건축하는 겁니다.

 

7~10장은 공동체의 개혁입니다. 에스라가 개혁의 중심에 섰습니다. 타협하고 적당주의에 빠진 백성들이 회개하여 다시 거룩하게 살도록 하는 정결운동입니다.

 

마치 이스라엘백성들이 레위기에 기록된 말씀대로 광야에서 살면서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과 대비됩니다.

 

느헤미야는 성곽을 건축하는 내용입니다. 마치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외적을 막아내는 나라를 건설되는 것과 대비됩니다.

 

또 한번의 탈출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예수님에게 가는 출세상입니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입입니다.

 

성도에게는 동일한 과정이 있습니다. 성전을 세우듯 예배를 바르게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주인이고 우리들은 그의 자녀임을 분명히 밝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삶의 개혁입니다. 세상과 적당하게 혼합된 관계를 끊는 겁니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단절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적을 막을 있는 성곽을 든든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교회의 모형입니다. 구약은 하나님나라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모형입니다.

 

7~10장의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에스라가 4572차 포로귀환을 했는데, 1차 포로귀환이 536년이었으니까 79년 후에 돌아왔습니다. 이미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죽었고 다음 세대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5만명이 돌아왔으니까 7~8만명이 되지 않았을까요?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의 총예를 받은 사람입니다.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르), 부활의 제국을 봤는데(살라미스 해전을 다룸), 무능한 왕으로 묘사(피어싱-에스더 남편), 그의 아들이 아닥사스다인데, 에스더의 아들인지 다른 왕비의 아들인지 모르지만 에스더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닥사스다의 조서에 대한 내용이 7:11~26절인데, 재정집행권, 사법권까지 주어짐을 봅니다. 조서에 따라서 모집한 사람의 숫자는 8장인데, 1753명 정도입니다.

 

이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을 돌아가는 길은 험하고 도독들이 출몰하는 지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많은 돈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왕에게 군사를 요청하는 것은 에스라의 신앙에 맞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도움을 요청하면서 금식기도하면서 준비합니다. 8:21~23절입니다. 이런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과정에 어려움을 만났지만 무사히 도착하게 됩니다. 8:31절입니다.

 

돌아와서 보니까 9:1~2절입니다. 이방인과 통혼하고 있습니다. 특히 모범이 되어야 하는 지도자가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4:16절을 보면 이방인과 결혼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게 됩니다.

 

국제결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두 번째 아내 하갈은 애구병인입니다. 반대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 신앙이 오염되고 부패하게 되고, 이방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에스라의 반응이 9:3~6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하게 되었나? 왜 예루살렘 성전이 황폐하게 되었나? 왜 종노릇을 하게 되었나? 그것은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공동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남은 자, 스바냐 선지자가 예언한 숨겨놓은자들이 돌아와서 다시 옛날 삶을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되고, 혼합, 적당주의에 빠져서입니다.

 

백성들의 반응 10:1~5-동역자가 있습니다, 10~12

하지만 반대자들이 있습니다. 10:15절입니다.

 

조사하여 공동체를 개혁하는 일을 마무리 짓게 됩니다. 7~10장은 내용은 공동체가 거룩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적용

예수님을 믿으면 그 다음 거룩해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엄청나게 힘든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수행과정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수행과정을 겪으면 적당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혼합주의, 적당주의를 버리자. 이정도 괜찮겠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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