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1~13절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화목의 직분을 수행합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피조물에게 부탁하신 사역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면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디서나 환영받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독교인에게 은혜는 친숙한 단어입니다.
우리는 은혜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그래서 그런지 은혜에 관한 찬양도 참 많습니다.
저도 수요예배 때 은혜 찬양을 많이 부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은혜라는 단어를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합니다.
특히 부모나 스승에게 감사를 표현할 때 주로 씁니다.
은혜란 무엇인가요?
일반적인 의미는 값없이 주어진 사랑입니다.
성경적인 의미는 예수님을 알고 닮아가는 모든 과정입니다.
예수님을 닮게 하는 모든 환경과 사건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들이 느끼는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의, 과분한 대접이 은혜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감동에 대한 표현입니다.
나에게 이런 것을 주시다니,
은혜가 메마르지 않을 때 인생이 달라집니다.
어떤 모양으로 있든 다 은혜입니다.
반면 은혜를 잊으면 불평이 나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의 은혜를 잊자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평은 자기 자격을 따지는 것입니다.
불평은 자신이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한탄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은혜를 잊으니까 불만, 불평, 다툼, 분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좋은 은혜를 받고 누리지 못하느냐?
화목하게 하는 복음을 듣고 왜 싸우고 다투느냐?
누가 그 은혜를 누리려고 하겠느냐?
은혜는 흘러가야 하는데 누가 은혜를 흘러가게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1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누가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일까요?
은혜를 헛되이 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는데 받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2~3절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설명한 내용입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과 때와 날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때와 날은 시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시점에 매여 살 때, 은혜를 헛되이 받게 됩니다.
옛 언약, 과거의 율법에 매여 있으면 은혜를 헛되이 받게 됩니다.
옛날 것에 매여 있으면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것입니다.
은혜를 말할 때 대부분 과거의 은혜를 말합니다.
나도 옛날에 그런 은혜 받아봤습니다.
과거에 매여 있으면 과거에 매인 신앙이 됩니다.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지 못한 신앙인이 됩니다.
지금은 그때의 영광이 없거든요.
공허하거든요.
미래의 은혜에 매여 있어도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를 받지 못할 사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상황이 좋아지면 은혜를 받겠죠.
오스카 와일드라고 하는 유명한 소설가가 지은 "지옥의 단편"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술집 앞에서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술주정뱅이를 만나 깜짝 놀라시며 물으셨습니다.
“네가 절름발이였을 때 내가 고쳐 주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의 대답은 날카로웠습니다.
“주님이 내 다리는 고쳐 주셔서 걸어 다녔지만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돈은 없는데 다리가 멀쩡해서 구걸할 수도 없었습니다.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홧김에 술을 계속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알콜 중독자가 되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저작거리에서 깡패가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놀라십니다.
그 예수님을 본 깡패가 “예수님! 저는 본래 앞 못 보는 소경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지요. 그런데 보면 무엇합니까? 온 세상이 다 썩은걸요. 그래서 화풀이로 닥치는 대로 부수고 때리고 살아갑니다. 저는 제 인생을 부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았는데,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때와 날로 은혜를 강조한 이유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때, 지금은 구원받을 때입니다.
은혜는 늘 현재입니다.
지금입니다.
과거에 은혜받았을 때도 현재이었습니다.
미래에 받을 은혜의 때도 현재입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요?
지금을 놓치면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지금을 놓치면 미래도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받지 못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힘든 지금이 은혜입니다.
지금이 최고의 기회입니다.
지금 은혜를 놓치지 안 됩니다.
왜 은혜 가운데 살면서 은혜의 소중함을 모를까요?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어버리면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고난 중에 깨닫습니다.
인간은 겸손해질 때 은혜를 깨닫습니다.
오늘이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구원받을 시간은 지금입니다.
은혜를 누리는 바울은 사람과 환경을 어떻게 대할까요?
그 사실을 4~13절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직분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았기에 직분을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았기에 일과 사람의 관계에서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바울이 만난 9개의 고난 목록입니다.
4~5절입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견디는 것과로 번역해서 10가지 보이는데, 원문의 의미는 많이 견뎠는데, 견디었던 실례를 9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3개씩 나눴습니다.
환난, 궁핍, 고난은 일반적인 고난입니다.
자원이 궁핍하고, 마음이 곤란해진 상태입니다.
매 맞은, 갇힘, 난동은 사람에 의해 당하는 구체적인 고난입니다.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지 못함은 자초한 고난입니다.
밤새워 일하면서 수고하거나 사서 고생한 어려움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바울은 9가지를 지켰습니다.
5절 하반절의 가운데서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6~7절입니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성령을 중심으로 앞에 4개, 뒤에 4개를 구분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지켰습니다.
성령의 감화받아 성령의 빛을 따라가면서 지켰습니다.
깨끗함, 지식, 오래 참음, 자비함은 성령의 내적인 능력입니다.
거짓이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로 가지고는 성령의 외적인 능력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내면과 외면의 무기를 가지고 인내했습니다.
신앙의 덕목을 지켰습니다.
깨끗함으로 지켰습니다.
성령의 갑옷을 입고 싸웠습니다.
방패와 검으로 이겼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누리는 성도의 삶입니다.
은혜를 누리는 모습입니다.
은혜를 누리면 상반된 평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평가일까요?
8~9절입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광으로 반응도 있었습니다.
반면 어떤 곳에서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바울의 평판이 좋았고, 어떤 곳에서는 나쁜 평판을 받았습니다.
그런 평가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바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어떤 사람은 바울을 거짓말쟁이라고 모함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되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죽은 자 같으나, 돌을 맞아 죽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실리셨습니다.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즉 세상은 바울이 징계를 받아서 고생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근심이 떠날 날이 없을 것 같은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우러나옵니다.
재산이 없으나 물질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속이는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진실하고, 무명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알고 있고, 징계받는 것 같지만 죽지 않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전부가 됩니다.
은혜를 누리면 상반된 평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9~10절에 같으나가 반복됩니다.
같으나, 그렇게 보이나, 그런 평가를 받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끝난 것 같지만 죽지 않습니다.
징계를 받을 수 있지만 끝이 아닙니다.
시편 23편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다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부족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누리기에 내면은 항상 기뻐합니다.
우리의 실제 모습입니다.
힘들죠, 아뇨, 행복해요.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가졌기에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 은혜를 누리길 부탁하고 있습니다.
11~13절입니다.
마음을 넓혀라.
속이 좁으니까 남을 품지 못합니다.
집은 좁아도 살지만 좁은 사람하고는 못산다고 합니다.
바울은 입이 열려 있고, 마음이 넓어졌습니다.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삐지면 입이 닫힙니다.
자기 마음을 좁게 합니다.
쉽게 삐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을 좁게 합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상상하면서 좁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바울도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속이 좁았는데, 은혜를 누리면서 속이 넓어졌습니다.
이방인까지 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은혜는 늘 현재입니다.
은혜는 고난 가운데 누리는 삶입니다.
은혜는 상반된 평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은혜는 넓은 마음을 갖는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적용) 순간 순간이 은혜입니다.
시끄러운 교회를 보면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인정할 때 감격이 있습니다.
은혜를 보답하려고 할 때 충성이 있습니다.
은혜가 열매를 맺기 위해 고난이 있습니다.
마치 산모의 고통이 요구되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모의 고난과 같습니다.
영광의 고난이고, 승리의 고난입니다.
보라 지금이 은혜 받은 때이고 날입니다.
보라 지금이 구원 받을 때이고 날입니다.
매일 매일, 순간 순간에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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