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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완성)

계속 변해야 합니다.

by ysong 2022. 10. 19.

느헤미야 13:4~14

10-인봉한 사람들의 이름, 11장은 제비를 뽑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을 거주하는 사람에 대한 이름, 12장은 제사장의 이름과 제사장의 몫, 성벽봉헌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넘어가고 13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주로 느헤미야서를 마치려고 합니다.

다음주부터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통해 신앙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를 말씀으로 해결해 갔는지를 배우려고 합니다.

 

12주 동안 왕도, 선지자도, 제사장도 아닌 평신도 느헤미야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느헤미야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변화된 사람이 세상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모델로 충분합니다.

흔히 듣는 요셉, 다윗, 모세에 비해 조금은 낮선 인물이지만 느헤미야를 통해 기독교인의 리더십을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리더가 우리 교회에서 나오길 기대합니다.

 

13장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이 딱 맞습니다.

사람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만큼 연약합니다.

 

느헤미야 13장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변함없이 주님의 편에 있는 사람과 상황과 형편에 따라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전자에 해당됩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는 변함없는 사람입니다.

1:4절에 예루살렘성이 허물어지고 불탔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일동안 울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13:31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로 마칩니다.

 

그러나 13장에 등장하는 지도자와 백성들은 변덕이 심한 편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쉽게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넘어졌을까요?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유대총독으로 재직했습니다.

느헤미야 5:14절입니다.

6절에 아닥사스다 32년이 되었을 때, 느헤미야는 왕과의 약속한 시간이 되어서 페르시아로 돌아갑니다. 왕을 만나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보고했습니다.

6절에서 며칠 후라고 했지만 보통 2~3년으로 봅니다.

예루살렘에서 페르시아로 돌아가는데 6개월, 다시 오는데 6개월, 왕 앞에서 1~2년을 보냈다고 가정하면 2~3년 정도 됩니다.

느헤미야는 다시 유다총독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옵니다.

2~3년만에 돌아와서 보니(10, 15, 23), 영적인 기강이 무너진 것입니다.

성벽봉헌을 하면서 언약했던 약속들을 저버린 것입니다.

특히 성벽봉헌식날 약속하고 실천한 내용이 1~3절입니다.

신명기 23장의 말씀을 읽고 이방인과 분리를 단행했습니다.

3절과 4절 사이에는 최소한 2~3년의 시차가 있습니다.

 

이스라엘공동체는 느헤미야가 비웠던 2~3년 만에 다시 타락한 상태로 돌아간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금송아지를 만든 것처럼 타락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처럼,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 것처럼 타락한 상태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돌아왔을 때,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토록 힘들게 재건했던 거룩한 영적성벽들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순식간에 무너졌던 것입니다.

쌓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느헤미야는 대표적인 3가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4~9절은 부패한 제사장의 문제입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암몬 사람 도비야에게 성전의 큰 방을 개조하여 직무실로 쓰도록 했던 것입니다.

도비야는 산발랏과 함께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을 하는데 집요하게 방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 사이에 성전에 자리를 잡고 이익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도비야는 성전의 창고에 자리 잡고, 10절의 말씀처럼 레위사람에게 줄 몫을 주지 않고 부당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보입니다.

 

10~22절은 십일조와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10절에 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사람들이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15절에 안식일에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16절에 두로의 상인들이 장사를 하도록 허락했습니다.

17절에 귀인들이 악행을 허용하고 참여했습니다.

 

24~31절은 금하고 있는 이방사람과 통혼을 하지 않겠다고 것을 깼습니다.

솔로몬의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국제결혼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이방신, 이방사상, 이방가치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LA에서 사역하는 후배목사가 우리 부부를 보고 싶다고 해서 주중에 또 보게 되었습니다.

후배가 우리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돈을 쫓는 인생이었는데, 부부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신앙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내는 감리교 교육사로 시역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부부싸움을 하면 헤이지자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럴 수 없다고 단어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가 사람이 되어 주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헌신과 희생을 따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멋진 말을 했습니다.

가치 있는 인생, 바른 신앙생활에 필요해서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했습니다.

 

이에 대한 느헤미야의 반응은 분노였습니다.

의로운 분노, 거룩한 분노입니다.

8절에 도비야의 방의 세간을 밖으로 내어 던졌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청결케 하기 위해 장사꾼의 상을 뒤엎은 것이 연상됩니다.

11절에 민장들을 꾸짖었습니다.

17절에 귀인들을 꾸짖었습니다.

25절에 몇 사람을 때리고, 머리털을 뽑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적당히 넘기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넘기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노가 거룩한 열매를 맺으려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거룩한 분노와 함께 기도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의와 감정에서 나오면 처음에는 의로운 것 같지만 실수 하게 됩니다.

자신만이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을 정죄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14절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22절에 이 일도 기억하옵소서.

31절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자신의 공로를 기억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하고 있지만 자신도 분노를 받은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나 또한 심판을 받을 대상을 기억하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반복됩니다.

분노와 기도가 반복됩니다.

죄악을 슬퍼하고 애통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슬픔과 애통 가운데서 이런 개혁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 때부터 시작된 운동이 있습니다.

분리주의 운동, 즉 바리새인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운동은 율법주의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외식하는 자로 비판을 받습니다.

겉은 깨끗한 척 하지만 속은 썩었다는 책망이었습니다.

죄의 복원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줍니다.

혹시 언제부터인지 예배와 찬양, 기도에 감동이 없어졌습니까?

형식만 굳어져서 시큰둥하게 됐습니까?

그렇게 되면 생활이 흐트러지고 일이 잘 안됩니다.

경고를 못 들으면 사고가 납니다.

신앙의 경고등, 생활의 경고등, 삶의 경고등을 실피시길 바랍니다.

 

적용) 죄의 복원력을 멈추게 하십시오.

죄의 복원력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느헤미야의 신앙과 리더십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3가지 모습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기도의 사람입니다.

느헤미야서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칩니다.

모든 주제, 장소, 기도했습니다.

페르시아 궁전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집에서도 기도했습니다.

대화를 하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기도했습니다.

 

-목표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영적재건, 성벽재건에 대한 목표가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방해를 만나도 목표를 이룹니다.

성실을 통해 이뤄내는 인물입니다.

 

- 지혜와 용기와 결단의 사람입니다.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담대하게 추진해 나가는 결단이 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물이 고이며 섞습니다.

계속해서 마르지 않는 샘물이 흘러 들어와야 합니다.

죄의 복원력을 막는 방법은 은혜의 힘이 더 세면됩니다.

말씀, 기도, 찬양이 끊기면 넘어집니다.

항상 은혜가 운데 머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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