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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완성)

선으로 악성 소문에 대처하라

by ysong 2022. 9. 25.

느헤미야 6:1~14

느헤미야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뜻을 이루면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모델이 됩니다.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면 느헤미야가 만났던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자 할 때도 비슷한 일들로 겪게 됩니다. 게다가 악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괴롭히는 경향이 강합니다.

 

나는 리더가 아니라 큰 은혜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리더라는 사실입니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는 누구든지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면서 살게 됩니다. 작게는 부부관계에서도, 부모와 자녀관계에서도, 회사의 직원들 속에서도, 친구들 관계에서도 각자의 리더십에 따라 일과 관계를 관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느헤미야에게서 신앙적으로 배울 점이 많습니다.

 

내부갈등을 해결하기 무섭게 외부공격이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느헤미야에게도 끝까지 훼방을 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절에 등장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2:10절에 처음 나오는데 처음부터 느헤미야를 싫어하고, 반대했습니다.

4장에 또 나오는데요, 느헤미야가 진행하고 있는 성벽중수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훼방을 놓았습니다.

6장에 또 나오는데요, 성벽완공이 코앞에 닥치자 이들의 압박과 협박은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공격하는 방법을 달리하면서 집요하게 훼방을 놓습니다.

그전에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더니 급기야 물리적인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젠 공사가 거의 마무리에 이르게 되자 지도자 느헤미야 한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을 합니다.

 

혹시 떠도는 소문으로 어려움을 당해 본적 있습니까?

거짓으로 만들어진 소문으로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있습니까?

평소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배신 비슷한 것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반대자들이 느헤미야를 제거하기 위해 쓴 방법입니다.

선한 한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해 쓴 수법이기는 하지만 우리들도 한번쯤 경험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잘 배우셔서 각자의 삶과 신앙에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는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합니다.

2~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산발랏과 게셈이 사람을 보내어 만나서 대화로 풀자고 제안합니다.

공사가 완공되어 가는 시점이기에 정치적인 타협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성공이 눈앞에 있을 때, 방심할 때 듣기 좋은 평화를 내세웁니다.

대화로 풀자는 것은 거절하기 힘든 제안입니다.

합리적인 제안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평화협상을 위해 오노평지에서 만나자고 제안했습니다.

오노평지는 예루살렘에서 32km 떨어진 곳으로 사마리아와 유대 땅의 접경지역입니다.

그러나 그 제안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살해음모였습니다.

느헤미야를 제거하여 성벽중수를 마무리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지도자를 치면 양떼가 흩어질 것이라고 생각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의 숨은 계략을 알았습니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타협을 내세우지만 의도는 살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대답은 3절인데요, 공사 중이라 못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4번이나 똑같은 공격에도 느헤미야는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거절하는 이유가 바뀌지 않습니다.

질문에 말려들지 않고 같은 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성벽재건 중이어서 못 간다고 반복해서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 대로, 변명하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만들지 않고 동일한 대답을 했습니다.

혹시 느헤미야가 음모를 알았다고 하면서 대화를 거절했다면 그들의 속셈에 말려둘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만나게 되면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만들게 됩니다.

저도 과거에 이와 비슷한 일을 만나면 나에게 유리한 말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 상황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느헤미야의 일관되고 정직한 태도를 보면서 회개했습니다.

 

느헤미야처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느헤미야의 집중력이기도 한데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확고할 때 가능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가에 대한 확고한 답을 갖고 있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이 길을 가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면 성공한 사람을 만나도 위축되지 않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도 우쭐거리지 않습니다. 나는 나에게 주신 사명의 길을 갈뿐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는 것이 순결한 지혜입니다.

 

시편 1: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했습니다.

시편 1편은 시편 전체를 여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느헤미야는 복 있는 사람이어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않았고, 오만한 자들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잡아준 것은 시편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 뜻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그를 붙잡아 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숨겨진 음모를 알고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공갈협박을 합니다.

산발랏이 봉하지 않는 편지를 느헤미야에게 보냈습니다.

지도자가 지도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반드시 인봉되어야 합니다.

산발랏이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낸 것이 내용이 새어나가서 루머로 퍼지길 바라는 의도가 숨겨진 있는 것입니다.

전달자들이 먼저 읽어서 거짓된 내용을 진짜로 믿고 소문을 내길 원했던 것입니다.

 

편지의 내용이 6~7절인데 모두 지어낸 거짓말입니다.

주변의 이방과 온 나라에 퍼진 소문이 있는데, 그 소문은 느헤미야가 반역을 꾸미고 있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또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를 세워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당신이 왕이 되려는 소문은 페르시아 왕에게 곧 들릴 것이라며 협박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서로 의논해서 해결해 보자는 것입니다.

 

팩트는 하나도 없습니다.

소문의 실체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고 엄포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위협하고 있을 뿐입니다.

산발랏은 음흉합니다.

자신이 소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가 만든 소문인데, 자기가 소문의 실체가 아닌 것처럼 행동합니다.

 

사람들은 거짓 소문에 속습니다.

오죽하면 요즘 팩트체크가 유행하겠습니까?

자신이 실제로 소문의 피해자가 되면 정말 어렵습니다.

일터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에 대한 소문으로 인해 속상한 적은 없습니까?

거짓 소문으로 어려움을 당한 적은 없습니까?

말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소문만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랬다더라고 합니다.

누가 한 말이고 밝히지 않았다면 그 소문은 말하는 사람이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8~9절인데요, 하나님께 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거짓이라는 것을 단호하게 밝혔습니다.

자신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해명을 하려고 했다면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 수 있었을 겁니다.

해명하는 과정에서 평정심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한 것은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이 일을 마칠 수 있도록 힘 있게 해 주옵소서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에 속상해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줄 믿었습니다.

하던 일에 중단없이 집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소문에 대한 이렇게 처신하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정말 사실인가를 확인하라?

본인에게 반드시 확인하라?

사실이라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따져보라고 합니다.

 

거짓말을 계속 들으면 참말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진실을 내려놓고 거짓을 수용하게 하는 수법입니다.

진실에 근거하지 않는 교회에 대한 소문이 얼마나 많습니까?

입만 가지고 살기 때문에 소문이 많습니다.

말씀이 없고, 기도가 없는 안 좋은 교회는 모이면 모일수록 소문만 무성해집니다.

진신한 근거한 삶이 되어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가까운 사람을 매수하여 공격합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매수했습니다.

스마야인데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스마야가 며칠 동안 밖에 나오지 않으니까 느헤미야가 그의 집에 찾아갑니다.

스마야가 찾아온 느헤미야에게 자신이 계시를 받은 것처럼 말합니다.

안전을 걱정해 주는 것 같지만 이중적인 행동을 합니다.

너를 죽이려고 하니까 성전에 들어가 숨자고 합니다.

그곳은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외소인데, 그곳에 숨자고 했습니다.

스마야는 두려움을 이용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느헤미야도 스마야의 말이 처음에는 자신을 위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13~14절에서 스마야는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고, 범죄하게하고, 비방하게 할 의도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율법을 어겼다는 소문을 만들어 위신을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지도력을 떨어뜨려서 성벽중수를 진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스마야의 배려처럼 보이는 행동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깨닫게 되었습니까?

11절에서 느헤미야는 율법을 어기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취할 때 알게 되었습니다.

비겁하게 도망갈 수 없다고,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분명히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을 때 알게 되었습니다.

 

12절에 깨달은~ 즉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그때 알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태도를 취하니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결단을 하니까 진리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기준을 두니까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속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사람은 깨닫게 되고,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던지니까 그때 진실이 보입니다.

진실에 헌신하니까 거짓을 분별하게 됩니다.

본질에 집중하면 비본질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느헤미야와 가까운 사이에 있었던 스마야는 어떻게 무너졌을까요?

뇌물에 무너졌습니다.

돈이 무섭습니다.

돈의 유혹에 말려들면 영적 분별력이 흐려지게 됩니다.

매수된 자들은 10, 14, 17~19(혼인동맹으로 친해진 자들)에 등장합니다.

그들은 도비아갸 나쁜 자가 아니라고 느헤미야에게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23:8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신명기 27:25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성경은 뇌물을 받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느헤미야는 권력자이지만 지킬 것을 지켰습니다.

겸손은 항상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지키지 못해 망한 이들이 있습니다.

사울왕이나 웃시야왕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15~16절에 52일 만에 140년 동안 폐허된 성벽을 중수하게 됩니다.

 

적용) 확고하고 단순한 신앙을 갖고 삽시다.

가장 영적인 압박이 오니까 목숨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사도바울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사도행전 20: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저도 가끔 갑자기 찾아오는 영적인 압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약속한 사명선언문을 생각합니다.

예수님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기로 한 사명입니다.

 

느헤미야가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집중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말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느헤미야는 단순한 처신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순결한 지혜가 교활한 음모를 이깁니다.

느헤미야에게 신앙의 교훈을 얻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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