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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완성)

어떻게 예배를 드리십니까?

by ysong 2022. 10. 10.

느헤미야 9:1~6

미국에서 사역하다가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친하게 지낸 후배 목사님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업가가 장시간 뉴욕에 머물게 되었을 때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기업가 A씨는 하나님 말씀에 갈급했습니다.

그래서 뉴욕에 머무는 동안 이 곳 저 곳의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A의 사업가는 목사님들의 설교에 실망했습니다.

말씀을 떠난 세상 이야기들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에 A의 사업가는 아주 작은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은 오직 말씀만, 생명이 되는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A라는 사업가는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과 잠시 인사를 나눌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간략하게 소개한 사업가는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며 다음주에 또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도 떠났습니다.

작은 교회의 목사님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사업가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주 동안 신문과 잡지를 참고하면서 열심히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사업가는 약속처럼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목사님은 한 주 동안 열심히 준비한 대로 사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설교를 마쳤습니다.

예배를 마친 사업가는 목사님을 다시 만나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다시 올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 교회를 다시 찾은 것은 순수한 복음으로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경제적인 지식과 경험은 제가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목사님은 무엇을 놓친 것일까요?

변함없이 말씀을 전하는 것을 놓쳤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일까요?

또한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성벽이 완성된 후 이스라엘백성들이 보여준 신앙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말씀을 읽고 절기를 지키는 것을 놓쳤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 이후 처년 동안 놓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회복된 것은 무엇인가요?

말씀을 듣고 예배하는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님 앞에 납작 엎드리게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됩니다.

깨달은 사람은 자아가 깨어집니다.

자아가 깨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바꾼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성벽을 완성한 후 이스라엘백성들이 보여준 8장의 모습입니다.

이런 일렬의 신앙과정을 꼭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 다음은 무엇이 일어나야 할까요?

9장은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9장은 천년만에 초막절기를 지킨 이스라엘백성들이 보여준 모습입니다.

9장은 1~6절과 7~36절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이들이 처한 현실은 37~3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환경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나라가 망한지 140년이 지났고, 바벨론에 이어 페르시아제국에게 바쳐야 하는 과중한 세금으로 생활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한 해 농사를 지어도 겨우 입에 풀칠 할 정도입니다.

성벽을 건축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달라질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달라졌기에 견고한 언약을 세우고 인봉하여 간직하게 했을까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자신들의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들에 나타는 첫 번째 모습은 1~6절입니다.

1절에 금식을 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쓴 태도는 회개할 때 한 행동입니다. 이런 행동은 인위적으로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고생하다고 돌아온 둘째 아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시는 아버지 앞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죄와 자신의 실상을 깨달을 때 가능합니다.

겸손한 자만이 낮은 자세로 하나님 앞으로 나옵니다.

극도로 자신을 낮추는 자세로 살아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애통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말씀이라는 깨끗한 거울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나의 참 모습이 말씀 앞에 설 때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말씀은 자기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사람이 다르게 보입니다.

 

당연히 뒤따라오는 것이 2절의 말씀처럼 이방 사람들과 절교입니다.

사람을 사귀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방 사람은 세상적 가치관에 젖은 사람입니다.

세상 가치관과 절교한다는 것입니다.

 

겸손히 주님을 따르면 만나는 사람이 바뀝니다.

일하는 방식도 바뀌고요, 일하는 내용도 달라집니다.

관계가 끊어져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과거와 단절되지 않고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관계를 붙여주십니다.

영성이 약한 채로 세상에 가치관에 물든 사람을 만나면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은 말씀과 기도가 지루하지 않습니다.

3시간 동안 서서 말씀을 듣고, 3시간 동안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니까 내 자신의 죄의 실체를 더 깊게 보게 됩니다.

자기의 죄와 조상의 죄까지 회개하게 됩니다.

계속 회개한 이유는 계속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또 회개하고 기도하고 경배합니다.

이런 단순한 반복이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예배가 이렇게 되길 바랍니다.

 

4절에 영적 지도자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 회개합니다.

6절에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높여 드립니다.

말씀의 부흥을 체험하니까 예배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고백하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들에 나타는 첫 번째 모습은 예배가 회복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두 번째 모습은 7~36절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형식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기까지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신들을 역사를 바라보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이렇게 역사를 정리한 분이 없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자신들의 반복되는 죄악과 끊임없이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기도문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홍해사건, 출애굽사건, 율법의 수여장면, 사사시대, 왕정시대를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을 반복했습니다.

목이 곧고 불평과 불만을 달고 살았습니다.

16~18, 26절과, 28절과, 29절에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타락은 축복을 당연히 여기면서 시작됩니다.

시대마다 선지자가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계속해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불순종보다 더 큰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었습니다.

광야생활에 대한 정리가 21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부족함이 없었고,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고, 광야를 걸었던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출애굽 사건도, 홍해가 갈라진 일도,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도, 광야 길의 구름기둥과 불기둥도,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요, 모두 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1절에 징계는 있었지만 죽이시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죽일 수 없습니다.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32절에 바벨론 포로의 시대의 처절한 포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 업고 오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고백입니다.

허물을 덮어 주시고 긍휼을 베푸셨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부어 주시는 은혜로 온 것입니다.

그것이 깨달아져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급류를 건너갈 때 바위를 안고 건너간다고 합니다.

그래야 급류에 쓸려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위는 인생의 고난과 같습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16)

하나님은 자녀와 같은 백성을 사랑하니까 끊임없이 퍼 주십니다.

부모가 자신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없는데 퍼 주십니다.

 

부흥을 체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과거를 재조명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상처를 묵상하고 있다면 축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상처만을 묵상했습니다.

이젠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은혜로 자신의 삶을 보게 되었습니다.

 

적용) 나는 어떤 시각으로 과거를 보았는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차별과 원망의 시선으로 자신의 과거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감사의 시선으로 봅니다.

그 사람은 모든 사건과 어려움이 감사의 조건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고, 주변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믿음의 시각으로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기억들이 긍정적인 기억들을 지워버린다고 합니다.

마귀는 과거의 실패와 실수를 집중적으로, 나쁜 쪽으로만 보도록 합니다.

마귀는 우리들이 고통과 실수만을 보도록 잡아맵니다.

마귀는 배신자와 고통을 준 자를 묵상하면서 살도록 합니다.

과거를 부정적이고 패배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복음은 승리의 사건을 기억하게 합니다.

고난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역사가 다르게 보게 합니다.

촉박한 광야에서 불 구름과 기름 기둥을 보게 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과거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믿음의 사건으로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10월 어느 멋진 날에하나님을 보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과거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봐야합니다.

깨끗하게 마무리를 해야 미래로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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