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교회
  •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느헤미야(완성)

기도확신이 현실로

by ysong 2022. 8. 20.

느헤미야 2:1~13

보통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습니다. 이는 직업에 대한 질문입니다.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인격의 사람이 되어서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는 인물입니다.

느헤미야를 함께 나누는 이유가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성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느헤미야라는 인물이 모델이 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에게 신앙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금식기도도 하고, 울부짖는 통성기도도 하고, 묵도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습관이 된 인물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의 성도는 기도로 일을 시작하고, 일의 중간에도 기도하고, 일을 마무리도 기도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혼자 걱정하는 것이고, 기도는 주님과 함께 의논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많은 대화하는 기도를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인생,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기도만 하고 아무것도 안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것이라고 말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만 했을까요?

기도하면서 면서 무엇을 준비했을까요?

느헤미야는 기도확신이 현실에 이뤄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들의 신앙과 생활 속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겪습니다.

 

느헤미야는 고향인 예루살렘 사람들이 능욕을 당했고, 성은 허물어졌고, 성문은 불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시급한 조치를 원해서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소식을 듣자마자 평소의 습관대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느헤미야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시가 급했지만 조급하게 서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4개월 동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긴절함 간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하면 누구에게나 겪게 되는 하나님의 침묵의 시간입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누구에게는 힘들고 어렵습니다.

의심이 찾아오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느헤미야처럼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느헤미야에게는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구에게는 몇 년, 누구에게는 생의 끝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25, 모세는 40, 다윗과 요셉은 13년이라는 긴 하나님의 침묵하시는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일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가장 선한 일을 준비하시는 시간입니다.

느헤미야에게 하나님의 침묵이 깨진 것은 왕이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시대에서는 신하가 먼저 왕에게 간청을 할 수 없습니다.

왕비인 에스더도 왕이 부르지 않으면 왕에게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는데 왕에게 갈 수 밖에 없었던 에스더는 왕에 나아가면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왕이 질문을 했지만 느헤미야에게는 크게 두려워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얼굴이 수척해졌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오해했을 경우,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위기이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동안 왕에게 간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기회가 왔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는데, 지금이 그 때라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이 시간을 하나님의 때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때인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왕에 대답하게 됩니다.

4개월 동안 기도하면서 준비한 계획을 왕에게 간청하게 됩니다.

 

다윗의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동굴에 숨어 있는데 혼자 용변을 보러 왔을 때, 밤중에 혼자 텐트에서 잠을 잘 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의 부하들도 하나님이 주신 때라고 말했습니다.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사무엘상 24: 4~5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사무엘상 26:7~8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8.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다윗은 이렇게 절호의 기회를 하나님의 때로 생각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때에 대한 원칙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셨다는 말씀을 원리와 원칙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때가 차매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믿음은 기다림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급함, 성급함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때를 알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환경, , 마음의 평안으로 하나님의 때를 직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아닌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아차리는 것이 그만큼 어렵습니다.

 

사도행전 1:7~8절을 볼까요?

사람들은 언제나 때와 시기에 관심을 가집니다.

주님은 때가 아니라 성령충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다 집중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과 깊게 사귐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면 결정들이 쉬어지고 단순해집니다. 이것을 원하시고 저걸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판단하게 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때를 알아차린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과 친밀한 기도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말씀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고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 기도확신이 현실로 되는 과정에는 분명하고 명확한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얼굴이 수척해진 이유를 묻습니다.

느헤미야의 대답이 3절입니다.

오해가 없도록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잇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불타서 얼굴에 수심을 갖게 되었다고 대답을 합니다.

느헤미야의 말을 들은 왕은 느헤미야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5~9절까지가 느헤미야가 왕에게 요청한 내용입니다.

 

느헤미야는 지혜의 말로 왕에게 필요한 것을 간청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재건인데, 조상들의 묘실로 표현합니다.

민감한 정치사항에 대해 조상의 묘실로 표현합니다.

개인적인 문제로 말하면서 왕이 공감하도록 합니다.

페르시아는 조상들의 묘실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왕의 공감을 사도록 말을 합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민족의 정체성을 내세우고,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유식하게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반역자로 몰려 죽게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 지혜는 왕이 오해하지 않도록 말을 하게 합니다.

 

느헤미야의 표현 중에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의 말이 중요합니다.

이는 왕의 권위에 순복한다는 표현입니다.

기도확신이 현실이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를 깨지 않는 지혜의 말이 필요합니다.

 

왕에게 부탁하는 느헤미야의 행동을 상향식 리더십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2인자로 1인자가 신뢰하도록 하는 리더십을 말합니다.

요셉, 다니엘과 같은 2인자인데 1인자가 그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우리가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상향식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깨지 않는 공감의 말을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직장에서 윗사람이나 동료에게나 가정에서 부부관계나 부자관계에서 지혜의 말이 필요합니다.

공감의 말, 순종의 말을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 기도확신이 현실로 이뤄지는 과정에는 신뢰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느헤미야는 평소에 왕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왕이 어떻게 해 줄까?

느헤미야는 기도만 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7절에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서 유다에 들어가게 해 주시옵소서.

8절에 왕의 살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 목재를 얻도록 해 주시옵소서

9절에서 왕의 군대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호의해 주시옵소서.

구체적이고 계획적으로 왕에게 부탁을 합니다.

분명하게 자기 입장을 밝힙니다.

왕에게 조서를 부탁합니다.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감독에게 명령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군대장관에게 호의를 부탁합니다.

느헤미야는 조사하고, 체계적이고 분석하면서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기도의 확신이 현실이 되는 것은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준비되지 않으면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느헤미야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와주셔서 왕이 허락했다는 것입니다.(8, 18)

왕이 도와주겠다는 태도를 보면서 하나님이 만지시고 계시다는 것을 감지했다는 것입니다.

왕이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녹인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사람을 통해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라고 표현에서 느헤미야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 기도확신이 현실이 된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겸손이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각자 신앙의 고백을 담은 관용구를 갖고 살자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선한 손이라는 관용구를 갖고 살았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간 에스라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라는 관용구를 갖고 살았습니다.(에스라 7:9, 8:18)

 

요셉의 인생은 형통이라는 단어로 묘사됩니다.

아모스는 공의와 정의를, 호세아는 여호와를 알자를 사역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바울의 인생은 은혜라는 단어로 설명됩니다.

 

어떤 분은 감사를, 어떤 분은 지혜를, 어떤 분은 믿음을, 어떤 분은 기도를, 어떤 분은 구령목양을, 어떤 분들은 신구약 성경의 어느 구절을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삼기도 합니다.

 

간단하면서 정확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을 담은 관용구를 만들어보시면 어떨까요?

 

 

 

'느헤미야(완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한 사람이 시비를 걸 때  (0) 2022.09.04
그 다음에 이어 그 다음에  (0) 2022.08.30
기도확신이 방해를 만나면  (0) 2022.08.23
소식을 들은 후에  (0) 2022.08.08
비전과 기도의 사람  (0) 2022.08.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