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5~11절
신앙은 재해석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능력입니다.
똑같은 일 두고도 어떤 사람은 죽겠다고 하지만 어떤 분들은 살겠다고 합니다.
똑같은 일을 바라보는데 불평하고 원망하는데 아니요, 여기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기대하면서 긍정적으로 감상적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신앙이 주는 위안이고 신앙의 능력입니다.
합격, 취업, 결혼, 출산과 같은 가족과 이웃과 성도의 각종 소식에 대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가족과 이웃과 성도의 슬픈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느헤미야는 여러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제일 먼저 기도했습니다.(4절)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나 무시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본문은 느헤미야가 어떻게 기도했고 무엇을 기도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생각하고 각자 신앙에 적용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총애를 받아 술 맡은 관원입니다.
인간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으로 높은 지위와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 상상할 수 없지만 아마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쁜 일정을 보내야만 했을 겁니다.
예루살렘에 관한 슬픈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취한 태도를 보면 그는 평소에 기도하는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바쁜 일과 속에서도 기도가 습관화 된 것으로 보입니다. 평소에 기도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제일 먼저 기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상황에 따라 금식기도도 하고, 잠깐잠깐 시간을 내서 하는 묵도기도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니엘도 기도가 습관화 되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루에 3번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4절에 수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금식기도로 인해 얼굴이 수척해졌습니다.
금식기도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금식기도는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인간적인 방법으로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철저히 항복하는 금식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무시로 기도했습니다.
2:4절의 말씀처럼 왕에게 대답하기 전에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잠깐 기도하는 묵도기도를 했습니다. 대화를 하는 중에 잠시 숨을 멈추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묵도기는 순간순간 주님께 묻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묵도기도를 따라하신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을 저술한 김하중 장로입니다.
전통일부장관이며 최장수 주중대사이시기도 했습니다.
김장로님은 대통령을 만나기 전 꼭 기도하고 나아갔다고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대통령을 만나면 지갑을 놓고 왔다고 하면서 화장실에 가서 잠시 기도하고 만났다고 합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묵도하고 사람을 만나는 습관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아직 습관은 안되서 잊어버리지만 사람과 상담을 할 때는 잠깐 묵도하고 대답하곤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말씀이 생각하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확신을 가질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기스르월(11-12월)에 시작된 기도는 니산월(3-4월)까지 약 4개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에 탔다는 소식에 즉시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군사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복구에 필요한 재정을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확신을 주시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게 되었습니다.
너무 슬피 울며 금식하며 기도해서 그 모습이 수척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수척해졌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수척해지면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왭니까?
이 술관원의 자리는 굉장히 위험한 자리입니다.
얼굴이 조금이라도 어둡거나 수심이 있으면 당장 ‘무슨 음모를 꾸미는가보다’ 이렇게 오해를 사서 끌려가서 큰 화를 당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 앞에서 절대로 수심찬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왕 앞에 나아가 술을 따라 드리는데,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그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왕이 알아차릴 정도로 느헤미야의 얼굴이 수척해졌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 위기였지만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십리 가운데 인도하심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고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33:2~3절(1106장)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일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그 분에게 기도하면 응답하시겠고, 크고 은밀한 비밀까지고 가르쳐 주십니다.
느헤미야는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신앙인이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분의 신앙을 깊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나눌수록 기도의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필요한 것을 채워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찾아온 대부분 사람들도 고쳐달라, 살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주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내용의 기도를 했을까요?
필요를 채워주고, 원수를 물리쳐주고, 상황을 바꿔달라는 기도해야 할 것 같은데 느헤미야의 기도내용은 달랐습니다.
5~11절이 기도의 내용입니다.
5절은 느헤미야는 자신이 믿고, 알고 따른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꼭 지키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 앞에 범죄 했음을 자복했습니다.(6절)
이스라엘의 범죄는 한마디로 우상 숭배의 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바알과 온갖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에 둔 모든 것은 우상입니다.
그는 모든 죄를 자신에게 돌렸습니다.(6절)
느헤미야는 유다의 모든 죄가 '나와 나의 아비집'의 범죄임을 자복하였습니다.
조상이 범죄하여 이런 꼴을 당했다고 조상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국 중에 흩어진 것은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니라 곧 나와 나의 아비집에 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들에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교회가 능욕을 당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느헤미야는 상황을 분석하거나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울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우리는요?
분석하고 원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환경이나, 정치성향이나, 교회지도자, 몇몇 대형교회의 탓으로 돌립니다.
간혹 기도한다고 하지만 형식적으로 흐르길 일쑤입니다.
느헤미야처럼 울지 않고 금식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기도했습니다.
연대적인 마음, 죄에 대한 공동체성을 가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죄는 우리의 죄, 악함입니다.
새벽이나, 수요일기도시간에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을 위해 서로 기도하는 것도 너의 문제만 아니라 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상황분석이 달랐습니다.(7절)
현재의 피해상황이 예루살렘에 있는 에스라의 리더십의 부재로 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방인 세력들의 방해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겪게 되었다고 본 것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봤습니다.
신앙은 다른 눈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눈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훈련을 많이 받고 실제로 현실에서 경험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자비를 구합니다.(9절)
성경의 약속은 32,500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꼭 지키십니다.
느헤미야는 신명기에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구약의 무수히 많은 약속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은혜를 입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11절)
형통함을 통해 사람 앞에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왕에게 감동을 주셔서 응답되길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 내용입니다.
강 건너 물을 끄러 가면 내 발의 불은 자연히 꺼집니다.
교회, 전도, 선교, 이웃을 위해 기도하면 나의 기도는 알아서 해 주십니다.
나의 문제는 이미 하나님이 이뤄주실 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기도를 습관화 합시다.
기도는 모든 종교에 있습니다.
종교 없는 사람도 기도를 합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가장 열심히 기도하는 종교인은 무슬림들입니다.
그들은 하루에 5번 메카를 향해 기도합니다.
타종교에서 행하는 기도와 기독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기도는 다릅니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타종교의 대부분 기도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데 있습니다.
알라딘의 램프의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주길 원합니다. 지니가 주인의 말을 듣는 것처럼.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과 관계이며 소통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변화를 이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기도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입니다.
다 아시는 분입니다.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위대한 일에 우리를 동참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혼자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작은 일 하나라도 당신의 아들과 딸들과 힘을 합해 이루어 나가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기도라는 우리의 동역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기도해야 합니다.
크고 작은 일에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진실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그 기도는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계신 것이기에 반드시 응답받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완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한 사람이 시비를 걸 때 (0) | 2022.09.04 |
---|---|
그 다음에 이어 그 다음에 (0) | 2022.08.30 |
기도확신이 방해를 만나면 (0) | 2022.08.23 |
기도확신이 현실로 (1) | 2022.08.20 |
비전과 기도의 사람 (0) | 2022.08.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