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 9~13
신데렐라,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같은 전래동화는 멋진 왕자님과 결혼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결혼해서 둘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결혼이 끝인가요? 결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결혼한 이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즐거워하기도 하면서 친숙해지는 과정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전래동화의 이야기처럼 되면 안됩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것으로 끝을 맺으면 안됩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따라오는 멋진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실패자로 인생을 끝내기를 원하실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이=우리들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떤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기를 원하실까요? 그 사실을 로마서 12장~15정까지 간략하게 요약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잘사는 방법이 영적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1절) 일상적인 삶이 영적인 예배라는 차원에서 일주일을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2절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이 세상의 삶의 패턴을 따르지 않고=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신데 우리들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를 개발하여 섬기면서 살아가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10계명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살도록 은혜도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인도해 주십니다.
제가 자꾸 반복하는 것은 억지로 기억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각나도록 하고, 순종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도 말씀을 생각하면서 절제하고,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적예배자로 살아야지, 이 세대를 가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살아야지, 나에게 준 은사를 갖고 섬기면서 살아야지를 결단하는 겁니다.
요즘 시대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시대입니다. 이기주의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리도록 디자인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족, 친구를 통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사람들에게 참된 위로를 줄 공동체는 교회인데, 정말 위로로 주고 있느냐고 질문을 하니까 부끄럽습니다. 교회조차 유지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변병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9~13절에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교회를 가꾸는데 노력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9~13절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공동체인데, 우리들이 꿈꾸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는
1. 거짓 없는 순수한 공동체(9절)
거짓 없는 순수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과 없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신앙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순수하게 해야 합니다.
순수한 사랑의 공동체에 없어야 할 것은 거짓입니다. 저희 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입니다.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거짓은 욕심의 시작입니다. 거짓이 쌓이면 죄로 발전하고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거짓으로 생명을 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소유를 팔아 내놓으려고 했는데, 욕심이 생겨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사도들 앞에 놓으면서 이것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 거짓말을 듣고 베드로 “네가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라고 말하니까 그 즉시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시작하는 초대교회는 거짓이 없는 순수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극단적인 처방을 쓰신 것입니다. 교회공동체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악을 미워하지 않으면 악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폭력배는 악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악한 단체는 악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악을 미워하지 않으면 잘못된 종교권력을 휘두르는 폭력단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사람들을 악하게 만들 수 있는 은, 금이 많아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은, 금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주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를 해결 받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선에 소속되라,,,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 신앙의 경험을 보면 손해 보는 쪽, 어려운 쪽, 좁은길이 선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17절, 21절을 실천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랑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습니다. 고전 13:4~7절
거짓이 없고,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때 순수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가르침에 교훈을 받아들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는
2.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공동체(10절)
옆에 있는 사람을 형제로 봐야 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자매로 봐야 합니다. 가족으로 봐야 합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이고 우리 모두는 형제, 자매입니다. 중,고등부 친구들 형제, 자매로 볼 수 여기도록 해요. ‘우애’는 그 집의 형제들은 우애가 좋다는 쓸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일원으로서 서로 돕고 이해하며 아껴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존경합니까? 한국사람은 언행일치, 신행일치 하는 분을 존경합니다. 요즘 굵직굵직 사건을 보면서 존경을 받아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언행일치를 하지 않아서 비난을 받는 것을 봅니다.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설교와 삶이 달라서 존경받지 못합니다.
“존경하고 싶어도 존경 할 분이 없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10절은 이런 상식을 깹니다.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존경할 수 없는데도 존경하는 느앙스가 강합니다. 존경할 수 없어도 남편이니까 순종하는 것이죠, 부모니까 공경하는 것이죠. 조건을 따져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존경하는 것입니다.
CCC 창립자이고 전세계 청년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빌 브라이트목사님(2003년에 소천)은 “믿음으로 사랑하는 법”이라는 책을 통해 감정으로 끌리지 않지만 순종하는 차원에서 하나님이 하라고 하니까 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엄청난 일이 일어났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사라진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존경입니다. 바울은 존경은 상대방의 뛰어남을 인정하고 칭찬하며 상대방에게 양보하는데 존경의 관계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상대방을 낫게 여기는 존경이 회복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학교 안에서(담땡이라고 하지 말고 존경하여 사랑을 받도록 하라), 직장 안에서, 소속된 공동체 안에서 먼저 존경하기를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교회는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는
3. 열정이 살아있는 공동체(11절)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직분자들을 세웁니다. 직분자는 부지런히 섬겨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작은 직분이라도 맡겨주면 감사할 줄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갑니다. 열정이 생깁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이 우리들을 불타오르도록 합니다. 실증내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도록 합니다.
열정이 없으면 죽는 겁니다, 계시록 3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교회는 열정이 없는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계 3: 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미지근한 신앙을 버립시다. 칸트가 행복한 사람이란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열정적으로 맡긴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가꾸나가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는
4. 기도에 힘쓰는 공동체
환난 중에는 참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가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컵-영생수가 있다고 가정,,,분석만 하고 있으면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받아 마실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기도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결정하기 앞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를 선택하기 전 눅 6:12~13,,,십자가에 달려죽기 전 막 14:32)
개인기도는 가장 개인적인 종교생활입니다. 남자성도는 기도를 많이 안합니다. 신앙성장도 느립니다. 나이들어서 예수님을 믿은 남자인 경우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쑥스럽고 어색하기도 하고, 불신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초신자들의 기도를 잘 들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유는 믿음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도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과 같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사건이 자기 것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체험이 잇어야 합니다. 기도응답의 체험은 두 가지 면에서 좋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되니까 복이 됩니다.
올해 들어서 여집사님들에게 수요예배 때 대표기도를 세우는 것이 기도하자는 뜻입니다. 대표기도-이름을 찬미, 주신 은총에 감사, 죄를 고백, 도고의 기도, 우리의 필요, 기도의 응답에 대한 확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성교회는 새벽기도하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기도의 체험이 있을 때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가 세우지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는
5. 대접을 잘하는 공동체
여기서 쓸 것은 의식주=생존에 필요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초대교회부터 힘써왔던 것입니다.
로마교회는 대도시에 있는 교회입니다. 많은 여행객들이 로마를 들렸습니다. 당시에는 호텔이 없어서 주로 친척이나, 믿는 사람들은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당시 로마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은 주로 노예, 여자들로 살기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도 살기 힘든데 손님을 대접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꼭 우리교회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아브라함도 손님을 잘 대접해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돌볼 사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입니다. 남의 도움이 없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국가가 많은 부분 감당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고아, 과부, 나그네는 누구일까요? 경제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고아, 과부, 나그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우리들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교회는 주일마다 방문하는 분들을 잘 대접하도록 해요?
결론
계시록에 등장하는 아시아의 7교회를 보면 칭찬을 받는 교회가 있고, 책망을 받는 교회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칭찬과 책망이 있다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어느 교회는 어떠하더라 아닙니다. 우리교회가 아름다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아름다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저 같은 부족한 종을 보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도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라는 대로 해보는 아름다움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