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4:2절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 있어서 소개하려고합니다. 오늘 설교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아서입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즉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그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그 성적표를 보여 드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록된 성적표를 정교하게 손을 보아 근사하게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국민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 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교수이고 박사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 전 경북대 총장 박찬석 -
육신의 부모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데, 하나님의 깊고 넓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라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들은 권력을 쥐고 있고, 왕과 가깝고,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영적인 인물로 대우를 받았지만 정작 하나님의 계획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서 생각나는 대로 예언을 하고, 꿈을 꾸었다면서 자신을 영적인 예언자로 포장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은혜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이 불러 세운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처참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을 꾸리지도 못하게 하고, 설교를 하면 듣기 싫다고 하고 성도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설교는 늘 부정적인 이야기뿐입니다. 나라가 망한다, 바벨론이 처들어온다며 전쟁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오면 항복해야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판단할 떼 어떤 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처럼 생각이 듭니까? 당연히 성공한 사람, 존경받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 겁니다.
우리들도 믿음을 착각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보통 열심히 기도했더니 들어주셨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을 반반하면 기도를 반대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자신에게 두고 있습니다. 자신이 기도의 공력을 쌓았기 때문에 응답을 받았다고 말하는 겁니다. 기도응답의 관건을 자기 자신에게 두고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려 있는 겁니다.
성공하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처럼 말합니다. 믿음의 척도를 공적에 두면 안됩니다. 우리가 한 일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순종하려고 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레미야는 실패한 목회자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를 보면 하나님의 평가 방법이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공적, 사회적인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상생활이든, 신앙생활이든 두 종류의 사람, 두 종류의 길, 두 종류의 방법, 두 종류의 성공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좋은 무화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고,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과’는 그 땅에 남아있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나쁜 무화과이고 불행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포로로 잡혀갔으니까요.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복을 받았거나, 은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았습니다. 5절을 보면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 좋은 무화과나무라고 하고, 8절에 나쁜 무화과나무에 해당하는 사람들인데, 세상에 흩어져버린다고 합니다.
무화과나무 비유는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원하는 것의 차이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 때문에 당시 많은 사람들은 헷갈렸습니다. 그래서 이같이 말하는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고, 거짓선지자로 몰아부쳤습니다. 나라는 망하지 않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지 않겠다고 했던 말은 틀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예레미야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기 때문에 당해봐야 알게 됩니다. 당하기 전까지는 틀린 이야기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이사야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든 것은 이와 같은 상황입니다. 내 생각, 내 계산과 맞지 않을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난 경우입니다. 이럴 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을 말씀 통해 깨닫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두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레위기입니다. 26장을 볼까요? 3~4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기에서 ‘내 규례와 계명’은 레위기서 전체를 말합니다. 레위기는 예배, 사람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좁게 말하면 10계명이고, 더 좁히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을 지키면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5절에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레위기의 명령을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6절~9절에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의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이스라엘백성들이 레위기 명령을 지킬 때, 그 땅에 평화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평화롭게 평안하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12절에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으로 말미암아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스라엘백성들이 레위기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겠다는 것인데, 그 내용인즉슨 물질의 풍요로움을 주시고 나라를 평화롭게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올 2014년 여러분들이 풍족함을 누리고 싶으면 이 말씀에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레위기의 명령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떻게 하시겠다고 했습니까? 거기에 대한 말씀이 14절부터 26장 끝까지인 46절까지입니다. 14절~17절에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패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가 파종한 것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쫒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레위기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저주를 퍼붓겠다는 것입니다. 폐병과 열병으로 치신다고 했습니다. 또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먹을 수 없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라는 대적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쫒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이 말씀의 결과가 바로 예레미야서를 통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때라도 제발 정신차리고 돌아와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더 큰 저주를 퍼붓겠다는 것입니다. 18절에 “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 했습니다. 그래도 정신차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21절에 “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도 정신차리지 않을 때는 어떡합니까? 23절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칠 배나 더 치리라” 했습니다. 그래도 정신차리지 않을 때는 어떡합니까? 27절입니다.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너 징벌하리니” 했습니다. 이와같이 ‘칠배나 더 하겠다’는 말씀이 4번이나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않을 때 점점 재앙의 수위를 높여가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종의 사랑의 매를 드시겠다는 것입니다. 33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 앞에 이렇게 두 가지 길을 놓으셨습니다. 순종하고 복을 누리는 길과 불순종하면서 저주받는 길을 놓으셨습니다.
순종하지 않아서 그대로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모델국가입니다. 열강에 하나님의 나라의 좋은 점을 선전해야 하는 국가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중심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반대로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모든 열강의 길목이 됩니다. 이놈 저놈에게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 말씀의 결과가 바로 예레미야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 결과는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에덴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불순종의 나무와 순종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 선택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헷갈렸습니다. 그 현장이 바로 26장과 28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절을 읽고,,재판을 받게 됩니다. 죽이자는 쪽과 살려두자는 쪽으로 갈라집니다. 살려두자는 주장하는 어느 장로는 과거 히스기야왕의 시절에 미가라는 선지자가 예레미야처럼 예언을 했지만 살려줬다면서 풀어주자고 주장했고, 여호야김왕의 때에 예레미야처럼 예언한 우리야를 죽인 사건을 들어서 죽이자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풀려납니다.
28:1~4절을 읽고,,12~17절을 읽어줌
여러분 하나냐가 더 은혜롭습니까? 예레미야가 더 은혜롭습니까? 하나냐가 더 애국자이고 예레미야는 매국노 같습니다. 그래서 헷갈리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만 보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29:23절입니다. 겉으로는 애국자인양,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는 것처럼, 꿈의 봤다고 하면서, 환상을 봤다고 하면서 신비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정작 그들은 뒤에서 갖은 악행을 저질르고 있었습니다. 복받는 자리가 아닌 저주의 자리에 앉아서 광명의 천사처럼 행동했던 겁니다. 고후 11:14~15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을 모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언하는 그들이 바로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끝이 중요합니다. 사무엘과 모세, 여호수아가 말씀한 고별설교와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끝을 비교하시길 바랍니다. 공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앞에는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 21:8~10절입니다. 듣기 싫지만 생명의 길이 있고, 달콤하지만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 성경을 자기 맘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거짓선지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23:16, 25~28절입니다. 말씀을 세심하게 살피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행동하는 한 해 되길 바랍니다. 복과 저주의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계획이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인생은 B와 D의 사이에 C라고 하듯이 출생과 죽음 사이에 무수히 많은 선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시길 축원합니다.
1. 2014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2. 십자기의 길, 좁은 길에 대해 생각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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