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3:16~19절
왕하 22장 뒤에 하박국, 스바냐, 예레미야를 읽기라고 쓰고요, 요시야왕 죽음 이후 멸망으로 달려가는 시점에서 선지자들의 외침을 들으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변국가의 역사를 조금 알아야 합니다. 세계사이면서 중동역사입니다. 당시의 제국이 바로 세계를 주름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국가는 미개한 국가에 불과했습니다.
갑자기 성장한 앗수르제국은 612년, 신흥제국으로 빠르게 성장한 신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앗수르제국은 멸망했지만 아직도 잔당세력이 남아서 다시 제국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는 시점에서 세계의 패권을 쥐고 싶은 나락 있었습니다.
이집트입니다. 609년, 이집트이 왕 바르노고는 대군을 이끌고 현재 레바논북쪽과 터키의 국경지대에 있는 갈그미스를 점령하려고 했습니다. 이를 저지하여 제국을 일으키려는 느브갓네살왕이 전쟁이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대군이 이스라엘을 통과하여 올라가고 있는 중에 요시야왕이 므깃도에서 이를 제지하려고 전쟁을 치르다가 허무하게 죽게 됩니다.
요시야와이 죽자 나라에 하루라도 왕이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백성들의 장로와 제사장들이 모여서 요시야 왕의 아들인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굽과 바벨론의 1차 갈그미스 전쟁은 무승부로 끝나게 됩니다.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한 째 귀국하고 있는 바르느고가 유다의 왕이 여호아하스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처들어옵니다. 그리고 유다의 지도자들이 세워 놓은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사로잡아 갑니다. 이렇게 포로로 끌려간 여호아하스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애굽에서 죽게 됩니다.
애굽 왕 바르노고는 여호아흐스를 애굽으로 끌고 가면서 여호야김(608~597)을 왕으로 세웁니다.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가지고 갑니다. 여호야김은 탐욕도 대단히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11년 동안 왕 노릇하면서 그의 행악은 여러 가지로 그 사회를 부패시키고 악하게 하는데 일조했습니다.
2차 갈그미스전쟁--605년
여호야김은 처음 애굽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섬겼습니다. 3년 동안 섬기고 있는데 605년 또다시 애굽과 바벨론이 갈그미스에서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여기서 바벨론인 승리를 하게 됩니다. 이 여세를 몰아서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해 옵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처들어와서 여호야김을 쇠사슬로 묶어 바벨론으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야김이 항복을 하고, 빌며 맹세를 해서 그대로 돌아갑니다. 이때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24:1절입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섬기라고 예언합니다. 하지만 4년 동안 바벨론을 섬기던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24:2입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한 수리아 사람들, 모압 사람들, 암몬 자손들을 약탈대로 만들어 게릴라전을 시켜서 5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속에서 여호야김은 왕 노릇을 하다가 죽게 됩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예레미야는 예언을 했는데, 여호야김이 끌려가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며 아무도 그의 시체를 위해 애곡하지도 않고,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에서 아주 유명한 선지자들이 등장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서는 하박국이 하나님께 질문을 던지고 하나님이 여기에 대답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박국이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께 따지듯이 두 번 질문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이 설명을 합니다. 그 설명을 듣고 깨달은 하박국이 기도시를 지어 부르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 2~4절 - 무슨 말입니까? 의인에 대한 오해
지금 하박국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지금 하박국 앞에 겁탈과 강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박국이 살던 시대에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이 겁탈당하고, 사람들이 파리목숨처럼 함부로 죽임을 당하고 강탈당하는 일들이 백주대낮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는데 하나님이 주무시는지 어디 출장을 가셨는지 도대체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럴 수 있는가? 이러니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하겠는가?’ 이러면서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런 짓을 하는 것입니까? 4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했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남유다왕 여호야김 3년에 느브갓네살이 쳐들어온 역사적인 사실을 말합니다. 605년.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잡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끔찍한 장면을 본 하박국이 고민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악인이 와서 의인을 에워쌉니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 대들었던 것입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은 악한 사람이고, 예루살렘은 의로운 사람’ 이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한 바벨론이 의로운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 이 문제 가지고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대답도 안하셨습니다. 그래서 세간에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느냐? 이런 식으로 하니까 누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으며, 그러니 자연히 율법이 해이해지는 것 아니냐? 의인이 이기고 악인이 멸망해야 사람이 선을 행하려고 할 것이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악인을 강하게 해서 의로운 나라를 치고 사람을 죽이는데 하나님이 되어가지고 가만히 있고.. 이런 식으로 하니까 어떻게 정의가 세워지겠느냐?” 이렇게 지금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괴롭히는데 가만히 계십니까?” 하박국의 눈으로 볼 때, 눈앞에서 전개되는 현실이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런 하박국의 기도에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우리들의 오해-세상-교회/ 세상사람-성도-하박국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 스스로 의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음.
하나님의 대답-5~11절
하박국의 두 반째 질문-12~17--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오해
12절 이하입니다.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계시다면, 우리를 사망에는 이르게 하지 않아야 되지 않습니까?’ 이런 말입니다. “그래 좋습니다. 하나님이 혼내 주겠다면,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뭐 그런 정도는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나라를 심판하실 수 있죠. 하나님이니까! 뭐 그 정도면 다 이해하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13절에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자 없는 벌레같게 하시나이까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그가 그물을 떨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의로운 사람을 들어서 악인을 삼키도록 해야지, 어떻게 악인을 들어서 의로운 사람을 삼키게 하십니까? 그리고 그 악인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도록 하고,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고 있는데, 지금 이것이 옳은 일입니까? 어디 하나님 대답해 보십시오.” 아 이렇게 지금 하나님 앞에 항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두 반째 대답-2장 전체인데, 2~4절만 읽고 설명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종말’은 바벨론의 종말을 말합니다. 하박국이 ‘바벨론이라는 악한 나라가 의로운 나라를 잡아삼키는데 그래도 되는 겁니까?’ 물었더니, ‘그 바벨론의 종말도 속히 온다.’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이 언제까지 살육하고 다니느냐? ‘정한 때까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나라도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정한 때가 있다. 그들의 종말도 속히 온다.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바벨론이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천천히 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려보면, 반드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덧붙이셨습니다. 2장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마음은’ 바벨론 사람들의 마음을 말합니다. 그 바벨론 사람들이 교만할 뿐 아니라 정직하지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래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패망이 오기 전에 먼저 오는 것이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아 저 사람은 곧 망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교만하기만 해도 이렇게 패망이 오는데 지금 바벨론은 교만할 뿐 아니라 정직하지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말이 조만간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벨론의 악행을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악행을 하나님이 못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다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눈에도 보이는데, 하나님의 눈에 안보이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도 반드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 예언이 언제 이뤄졌습니까? BC539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박국이 ‘의인 살려!’하면서 의인이 다 죽는다고 하니까, ‘의인은 니가 염려안해도 사는 길이 있어.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길을 만들어놨어!’ 이런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의인이 과연 누구냐?”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예루살렘이 의인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 예루살렘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바벨론 군대를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만 있으면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에는 그 소돔과 고모라보더 훨씬 더 악해서 의인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레미야서를 보면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 의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 이 사람이 의인인데, 그런 사람 한 사람만 찾아오면, 그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예루살렘을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에 의인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악인들이 의인들을 다 죽는다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런 하박국을 보고 “의인? 이 사람아 거기에 의인이 어디 있어? 한 사람도 없어! 만약 있다면 내가 바벨론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야!”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런 음성을 듣고 하박국이 ‘아니 하나님! 정말 없습니까?’ 하니까 하나님이 ‘그래 정말 없다.’는 것이예요. ‘하나도 없습니까?’ ‘하나도 없다.’ ‘그럼 바벨론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겠네요?’ ‘막을 수 없다.’ ‘피할 수도 없습니까?’ ‘피할 수도 없고, 이제 돌이킬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망할 일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칼과 기근과 염병에 다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는 길 하나 만들어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레미야서를 읽어 보아야 합니다.
3장 하박국의 깨달음-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가는 길만 사는 길이고, 그 땅에 남아있기로 고집하는 사람은 칼과 기근과 염병에 다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재앙을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 없고, 그냥 바벨론 군대가 오는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이 남유대 나라의 죄악이 이미 도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이 하나님께 들은 음성이요, 하나님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는 것입니다. 바들바들 떨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박국이 내린 결론이 뭡니까? 나라도 버림받지 말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까딱하다가는 자기까지도 버림받지 않겠는가? 이런 두려움이 휩싸이면서 이렇게 결단한 것이 오늘 본문말씀 17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자기 혼자라도 자기 신앙을 추스르겠다는 것입니다. 바들바들 떨면서 잘못하다가는 자기 영혼까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겠는가! 이런 숨막히는 두려움으로 어떤 형편에 있어도 나는 여호와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그 분을 섬기겠노라고 결단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탐욕에 눈이 멀어도, 파멸이 눈 앞에 다가와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지도자들은 그저 평화 평화로다! 거짓 평화를 외쳐대도 나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노라! 그런 나를 천만인이 둘러싸고 조롱한다 하더라도, 나는 믿음이 길을 가겠노라! 오직 하나님의지하고 하나님 섬기는 삶을 살겠노라! 이것이 하박국의 깨달음이요, 결론이었습니다.
우리의 깨달음
1)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살다보면 불의한 세상을 보면서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 모순에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아니 어찌하여 악인이 득세하고, 출세하는가? 반대로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움이 계속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하나님은 잠잠히 계시기만 하고 도와주시지는 않는단 말인가? 세상에 공의와 정의가 사라지고, 무법천지가 되었는데도 어찌하여 하나님은 잠잠하기만 하십니까? 온갖 강탈이 난무하고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십니까? 이렇게 항의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계획한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땀 흘려 일한 것들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아무런 복을 내려 주시지 않는 것 같은 현실이 지속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온갖 못된 짓을 다하면서 사는 자들은 떵떵거리고 잘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때는 낙심하고 불평할 때가 아니라, 더욱 믿음으로 정진할 때입니다. 하박국처럼 그런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신뢰하면서 믿음의 길을 가겠다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깊은 신앙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산 믿음의 선조들은 한결같이 고난 가운데 이런 깨달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쉽게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쉽게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내적인 강인함을 가지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을 이겨냅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솔하게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의인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일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어떤 삶을 사는가? 더욱 하나님께 충성하고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살라! 여기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복된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붙잡고 살 때, 세상이 아무리 요란하더라도, 하나님이 이런 세상을 이길 힘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하박국의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달콤하게 유혹한다 하더라도 불의한 세상에 물들지도 말고, 그렇다고 믿음의 길을 가다가 낙심하지도 말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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