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1:15절
남양주성실교회는 성경을 처음부터 읽어가면서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의 일년동안 달려왔는데, 어디까지 왔는지 볼까요.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열왕기 20장과 21장 사이입니다. 20장을 배경으로 5주에 걸쳐 이사야서에 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서를 통해 하나님만 신뢰하라, 다시 회복하시는 하나님만 믿어라, 완전한 회복을 위해 오실 고난의 종인 예수님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열왕기 20장(599장) 끝에 이사야서를 읽어라고 쓰고(968장)으로 가서, 이사야서 끝에 나홈서를 읽어라고(1300장) 쓰세요. 이렇게 성경을 읽어야 그 시대배경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연대기적으로 성경을 읽으면, 나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신앙을 벗어날 수 있고, 사회와 역사를 주관하시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님이 저희들을 향한 소명, 저희들에게 기대하는 삶의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관계를 바르게 정립될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소금과 빛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먹는 문제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면 전혀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비굴해 보이고, 없어 보여서 싫습니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으니를 자주 묻고, 우리들 자신에게도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주 질문하시길 바랍니다. 사명. 바울은 사명을 샹명보다 중하게 여겼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라고 저희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바뀌게 됩니다.
나홈서는 니느웨의 심판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별로 인기있는 책이 아닙니다. 창세기, 로마서, 요한계시록는 인기가 있어서 많이 들었을 것이지만 나훔서를 비인기종목입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책 중에 하나입니다. 게다가 불량도 적고, 교훈의 말씀도 별로 없고, 느낌도 별로 없어서 처음 읽으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읽었지만 무엇에 관해 기록된 말씀인지 모르기도 합니다.
나훔서는 앗수르가 멸망하기 전 4~50년 전에 예언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히스기야왕이나 므낫세왕이 통치할 때 예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앗수라가 아주 잘 나갈 때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기가 없었지만 당시 남유다 백성들에게는 인기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앗수르는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피해와 위협의 대상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한 국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망한다는 예언은 정말 기쁜 소식이었을 겁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주변국가인 일본이나 중국이 망한다는 예언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한때 요나의 전도로 회개를 했던 앗수르가 멸망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배경
니느웨하면 무슨 성경책이 생각이 납니까? 요나서입니다. 요나선지자는 여러보암2세 때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BC 770~80년경입니다. 하나님이 요나선지자에게 느니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하니까, 민족주의자이자인 요나는 느니웨가 빨리 멸망하기를 바라면서 40일만 숨어 있으려고 다시스로, 반대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보내고, 다시 사명을 받고 느니웨에 가서, 4일을 걸아야 하는 큰 성인데, 단 하루만 억지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짐승부터 왕까지 모든 백성들이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회개했던 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경건하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그 회개했던 사람들이 죽고, 후세대가 믿음을 이어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한 사람들의 자손이라고 해서 회개한 영혼이 태어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있다고 해서, 근육 있는 자녀가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은 유전되지 않습니다.
구원도 후천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아버지가 거듭난 사람이니까 아들은 자동으로 거듭나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무리 경건한 목회자라 할지라도 아들은 전부 개인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정권교체라고 합니다. 내가 주인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겁니다. 가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니느웨가 한때 요나 때에 회개했지만, 그 아들들 자손들 시대에 가서 불과 100년, 150년도 안 가서 그들은 또 다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악하게 타락했는지는 3장 1~5절을 읽으면서 설명. 3:18~19절을 읽음.
그들은 다시 피의 성으로, 음란과 거짓마술의 성으로, 포악으로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멸망은 갑자가 찾아오고,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신앙을 계승하지 못한 앗수르, 느니웨성은 약 150년만에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경험했지만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버렸습니다.
니느웨의 멸망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손들에게 하나님을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어떤 능력을 갖고 게신지를 가르쳐서 그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겁니다. 끝없이 하나님 말씀을 배워서 실천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 결과입니다. 그만큼 신앙을 계승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우리는 넘어집니다. 여러분 주위를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중직자의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고, 예수님을 무시하고, 교회를 비판하면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배운 것을 실천하고,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1. 교회와 가정에서 말씀대로 살고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성경과 역사를 가르쳐서 미신적인 신앙이 아닌 바른 경건을 연습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주신 복을 취해 교만하지 말고 늘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살을 빼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유지하기 위해 야식을 참아야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는 절제와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살은 며칠 굶은 뺄 수 있지만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을 유지하고, 성장해서 어디까지 가야 됩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보여주신 인간의 모습까지, 인격까지 닮아가는 겁니다. 여기까지 성도들의 목표입니다. 성도님들이 되길 축원드립니다.
나훔선지자는 남쪽 유다선지자인데, 언제 활동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요엘, 오바댜) 3:8절을 보면서 어림짐작으로 연대를 추정하고 있는데, 대략 663~630년 사이, 612년 멸망하기 전에 예언했을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요나선지자가 780년이라고 본다면 약 120년, 조금 길게 잡으면 160년만에 망하게됩니다. 한국교회가 기독교를 받아들인지 120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앗수르처럼, 느니웨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을 계승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앗수르는 악해서 40일이면 멸망시킬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해서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을 보고 기특해서 많은 복을 주셨는데, 그들은 교만해서 속국들을 악하게 통치했습니다. 민족말살정책을 펼쳤고, 대적하는 속국들에게 무자비하게 대했습니다.
다시 부강하게 되었고, 타락한 북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막대기로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우상을 섬기고, 타락했습니다. 신앙을 지키고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강력한 제국이었던 앗수르는 흔적조차없이 사라졌습니다. 신앙의 계승이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나훔서가 역사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영상보기
니느웨가 완전히 없어지게 되는 것은 BC612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가지고 완전히 없어지게 되고, 무너진 그 위에다가 범람한 물, 티그리스 강물이 흘러 넘쳐서 모래밭 14피트. 14피트면 약 3~4m 우리가 보통 집 한층 높이가 3~4m이니까 완전히 니느웨를 범람하는 물로 모래를 쓸어다가 3~4m 두께 모래로 덮어버렸습니다. 그 위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는데 몰랐습니다.
헬라제국을 일으킨 알렉산더대왕도 그 위를 지나갔는데, 거기가 니느웨 터인줄 몰랐습니다. 따라서 18세기 19세기 어간에 신학자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니느웨 유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못해서 가뜩이나 성경을 의심하던 신학자들이 ‘요나서가 그래 어째 좀 황당하더라니’ 하면서 ‘니느웨라는게 실제로 역사상 실제 했던 도시가 아닌 것 같다.’ ‘마치 플라톤에 나오는 아틀란티스라는 도시가 전설의 어떤 도시인 것처럼 니느웨도 전설속에 무슨 설화이지 실제로 있은 것 갖지 않다. 요나서가 좀 황당하더라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니느웨사건과 요나사건을 신화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다가 1820년도 영국의 ‘클라우디우스 제임스 리치’라는 학자가 4개월간, 지금 현재 이라크 북쪽에 가면 모술이라는 지역있습니다. 모술이라는 지역을 정밀 답사를 하고 4개월간 답사를 하고 갔는데, 그로부터 25년이 지나서 1845년도에 고고학자 레이아드 라는 사람이 와서 그 지역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3~4m 파내려가니까 흔적이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1845년부터 파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팝니다. 160년간 파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160년간 파도 끝이 안 나옵니다. 왜냐하면 파는게 포크레인으로 파는게 아니고 붓으로 파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자녀를 공부시킬 때 고고학을 시키면 일거리가 끝이 없습니다.
니느웨성은 길이 50km, 넓이 16km가 되고, 성벽은 호수로 회자를 둘렀고, 도시의 가운데는 티그리스강이 통과하도록 하고, 3개의 왕궁을 지었을 정도로 화려하고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최초로 전차와 기병대를 조직하여 전쟁에서 악독한 민족으로 악명을 떨친 제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말입니다. 이러다가 큰코다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말씀도 자기가 믿고 싶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큰코다칩니다.
이런 니느웨성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1장 전체를 읽으면서 설명.
1) 하나님은 보복하시는 분입니다. 2절에 3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최상급입니다. 진노하시는 분으로 2번 나옵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하나님 하면 사랑, 자비, 긍휼만을 갖고 계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런면도 있네 하면서 놀라실 수 있습니다.
성도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신앙생활에 필요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힘주어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는데 모든 면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 알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오해는 모든 비극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이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이 소개하는 하나님이 진짜입니다. 우리는 간혹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믿으려고 합니다. 긍휼, 자비, 용사만 하시는 하나님만 알면 큰코다칩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대적자에 대해 철저하게 보복하시고, 진노하시는 분입니다. 악을 참지 못하시고, 죄를 넘기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든지 외예가 없습니다.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고, 보복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서는 환난 날에 선성이십니다. 사랑하시데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를 버리시기까지, 자기를 십자가에 달려 죽이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에게 피하는 자를 아시고 영원히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영원한 진구로서 선을 베풀어 주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결론
앗수르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은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교만에 취해서 음란과 음행을 일삼았습니다. 악하게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무지막지한 권력으로 사람을 죽이는 횡포를 부렸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아닌 악의 통로가 믿는자를 괴롭히고, 하나님의 형상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나훔서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지금 인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각종 문화, 영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고 파괴하면 천재라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파괴하고 헝클어뜨리는 것을 즐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 대해 분명히 심판이 따른다는 것을 나훔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지식은 얼마나 한계적인지 모릅니다. 느니웨가 발견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말들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신화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니느웨성이 역사적으로 발굴 됐을 때 그들은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겁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믿으라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런 참된 신앙을 계승하는 주인공들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
1. 우리가 신앙의 계승자가 되겠습니다.
2. 내기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으라는 것을 믿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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