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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왕의 개혁

by ysong 2022. 6. 17.

열왕기하 22:1~2절

아마도 요시야왕의 시대에 활동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나홈과 오바댜선지자를 그동안 살펴봤습니다. 나홈 선지자는 회개했지만 다시 교만해진 느니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했고, 오바댜 선지자는 혈육을 나눈 형제가, 동료가 어려움과 고난을 겪을 때, 위로하지 않고 나쁜 사람들과 함께한 비도덕적인 에둠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에둠은 에서의 후손으로 야곱과 형제입니다. 마치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인데, 그들이 고난을 당할 때 어떤 도덕적인 행동을 취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들이 활동을 했을 때로 짐작되는 왕으로 있었던 요시야왕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특히 요시야왕의 개혁을 다루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변에서 난관을 딛고 일어서서 정상에 선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정상에 우뚝 선 사람을 만나면 존경하게 됩니다. 요시야 왕이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왕이 하지 않은 것과 행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우리는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요시야 왕이 하지 않은 것

1. 환경을 탓하지 마라

요시야처럼 나쁜 배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요시야의 할아버지는 므낫세입니다. 악한 왕이었습니다. 바른 소리한다고 늙은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죄악을 많이 저질렀는지 하나님도 용서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23:26절을 보면 하나님도 진노하셨습니다.

또한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도 할아버지 므낫세와 같은 죄악들을 저질렀습니다. 얼마나 악한지 신하들이 반역을 일으켜 아몬왕을 2년 만에 시애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지켜보던 백성들이 일어나서 아몬왕을 죽인 신하들을 또 죽였습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 백성들이 8살밖에 안 되는 요시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극도로 국론은 분열되었습니다. 악으로 가득했습니다. 절망이 가득한 환경이었습니다. 통치하기에 가장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또 정치적으로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쳐야 하는 어느 하나 편한 게 없는 상황에서 나라를 다스려야 할 환경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요시야왕에 대한 평가는 22: 2절에서 그가 환경을 탓하지 않음을 짐직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하나님 보시에 정직했습니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입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공의를 따랐다는 겁니다. 환경은 탓하지 마십시오. 요즘 목회자가 목회하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말씀에 떠난 행동들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을 탓하면서 개척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환경을 보는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진리를 외치는 교회들이 나와야 합니다.

 

성도 여로분. 나는 지금 환경을 보고 있는가?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계신지를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 불뱀에 물렸습니다. 뱀에 물린 손과 발을 퉁퉁 부었습니다.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 아픈 상처의 환경을 본 사람들은 죽었지만 장대에 높이 들린 놋뱀을 본 사람은 살았습니다. 환경을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길 바랍니다. 요시야왕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2. 나이를 탓하지 마라

 

어리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는 아주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적으로 만나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사무엘은 3살부터 성전에서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다니엘은 10대 청소년 시절에 뜻을 정했습니다. 요셉은 17살부터 부모를 떠난 종으로, 죄수로 살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75세에, 모세는 80세에 부름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합니다. 그리니까 나이를 탓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누구를 사용하실지 모릅니다.

 

요시야왕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추진력을 갖고 과감하게 진행합니다. 과거 선왕들이 할 수 없는 추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6살에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대상 34:3

20살에는 우상을 제거하는 개혁을 단행하고 대상 34:3

26살에는 성전을 청결케 하기 위해 수리하고 대상 34:8

본격적으로 개혁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도요한은 20대 초반이었고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20대 후반의 나이였습니다. 세례요한은 30세이었고, 예수님도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다윗, 이사야, 에스겔를 비롯한 구약의 많은 인물도 30세 전후의 젊은이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이 땅에 온 언더우드도 20대 후반의 젊은이었습니다.

 

어리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늙었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면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키실 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입니다. 꼭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사명을 주시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 출장 중입니다. 출장이 끝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야 합니다. 이곳은 일터입니다. 일터이기에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을 마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야합니다. 아주 짧은 출장입니다. 세월을 아끼시길 바랍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3. 가족을 탓하지 마라

 

요시야가 의로운 삶을 살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그의 외가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의 어머니는 여디다였고, 그의 외할아버지는 아다야였습니다.

 

열왕기를 보면 어머니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녀교육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못된 왕 밑에 선왕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시야왕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엉망인데,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느냐가 그 사람의 인품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에 보면 아버지가 일찍 죽었고, 어머니가 훌륭한 경우 대부분 훌륭한 인물로 자라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 할 것입니다. 다시 그가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훌륭한 스승이나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은 평생을 함께 한 37명의 장수들이 있었기에 다니엘은 신앙의 동역자 3명이 있었고, 예수님은 11명의 제자를, 바울은 누가와 디모데, 디도, 브스길라와 아굴라, 루디아와 같은 동역자들을 만났습니다. 의로운 뜻을 따라 살면 이런 동역자들은 하나님이 준비해 주십니다. 이런 신앙의 동역자들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요시야왕은 힐기야와 예레미야 선지자들와 같이 뜻을 함께한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요시야왕이 죽었을 때 가장 슬퍼함 사람이 예레미야선지자였습니다. 대상 35: 24~25절입니다. 이별했을 때 슬퍼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고전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생에 어떤 책을 읽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요시야는 신명기 두루마리를 읽게 된 것이 위대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너무 퇴락하여 이를 수리하고 소제하다가 성경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개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혼자의 열정으로는 그러한 개혁이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개혁은 사람을 길러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왕은 할아버지, 아비지가 악한 정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버린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시야왕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의로운 사람들과 함께 나를 바로 세워나갔습니다.

요시야 왕이 행한 것

1.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라

요시야 왕은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집중합니다. 요시야 왕은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22: 3~7절에 보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위해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성전은 형편없는 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거의 황폐화 되었을 겁니다. 수리되지 않은 기간이 어느 정도 되었겠는가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므낫세 통치기 55년이 황폐되었고, 아몬이 2년간, 요시야왕이 된 지 18년 되었으니까 75년 동안 성전은 황폐화된 상태로 있었음을 짐직 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왕궁을 세우는 일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사를 키우는 일에 진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재물을 모으고 후궁들을 거느리는 일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퇴락해가는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열정을 바쳤습니다. 요시야 왕은 성전을 위해, 영적인 것을 위해 자신의 권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투자하였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의 중심이 항상 영적인 일에, 하나님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지 못하고 패역하면 나중에 재난이 쏟아져 내립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으로 영적인 일에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정상에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 보는 시간,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물질, 교회와 사회를 위한 봉사를 위한 삶에 자신을 투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더니 결국 망하게 됨을 보기 때문입니다.

 

2. 자신이 먼저 말씀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요시야왕은 또 다른 장점은 말씀에 겸비했다는 것입니다. 22: 11절입니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율법을 들은 요시야 왕은 통곡을 하면서 옷을 찢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 것인가를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두 가지의 태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했을 때 어찌할꼬! 하면서 회개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죽이기로 작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찌할꼬 한 이후에 단계가 또한 중요합니다.

 

3. 백성들을 말씀으로 개혁했습니다.

23:1~3. 백성들과 언약을 맺습니다.

 

4. 다 개혁했습니다.

23: 4~14절까지 13가지의 개혁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요시야 왕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개혁을 단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20절을 읽고 설명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말씀에 기초한 개혁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은 잊혀진 율법책(신명기)의 발견이 그 동기였습니다.

 

25절은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요시야 왕이 직접 백성들에게 말씀을 읽어주고, 말씀을 지키기로 백성들과 언약을 맺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모습은 모세이후 처음 있었던 사건입니다. 다윗, 요아스, 웃시야 등을 비롯한 유다에는 훌륭한 왕들이 있었지만 요시야 왕처럼 말씀을 읽어주고 말씀을 지키자고 약속을 한 왕은 없었습니다.

 

어떠한 때에 영적인 부흥과 진정한 부흥과 진정한 개혁이 일어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읽었을 때 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강요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에 기초한 요시야 왕의 첫 번째 개혁은 우상을 대청소하는 것입니다. 이 우상들은 솔로몬 이후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는 대단한 우상청소였습니다.

 

혹시 우리에게는 우상이 없습니까? 우상이 있다면 한 두 가지의 우상을 제거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완전히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9절 하반절에 보면 요시야가 다 제거하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모든 산당을 제하였다고 했습니다.

 

열왕기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들조차 산당은 제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마도 백성의 삶과 너무나 밀접히 연결되어 있거나, 다른 우상숭배에 비해 미미하다고 판단되어서 이전 왕들은 차마 제거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짐작할 뿐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요시야 왕의 개혁은 타협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개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은 철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대충이나 봐주기 식이 아니었습니다. 장소의 개혁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전 안과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라 전지역에서 행해졌습니다. 인적 개혁이었습니다. 우상 숭배와 관련된 자들을 다 처리했습니다. 전통의 개혁이었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우상 숭배 문화를 개혁했습니다. 조상들이 앞서 행한 전례도 개혁의 대상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세운 유적지 및 문화재도 개혁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우상과 관련된 제사장들도 모조리 죽어야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의 사건을 보면 하나님은 완전한 개혁을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전인적인 개혁을 원하신다는 겁니다. 우리 앞에 우상이 있다면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그 우상을 제거하는데 교회, 가정, 직장에서 범하고 있다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죄의 세력이 얼마나 무섭고 죄에 빠진 부패성이 얼마나 회복하기 어려운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죄악에서 인생을 건져내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그때 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꼭 마찬가지로 있지만 사람들은 점점 관영해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가운데로 들어감을 봅니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일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하나님이 은총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겪으면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고,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정말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이요, 영생의 길임을 깨닫고, 그 때부터 기쁨으로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우리도 그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날마나 개혁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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