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6:1~3절
습관이 신앙의 수준입니다.
습관이 되지 않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필요할 때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은 출애굽을 했지만 마음은 출애굽하지 못한 모습과 같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 섬기는 백성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하나님 섬기 백성이 되는 과정, 절차에 관한 내용입니다.
백성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민낯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책이 있어서 광야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굶겨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을 가나안을 향하여 북쪽으로 가지 않고 자꾸 남쪽으로 갑니다.
하나님과 나의 생각과 다를 때 하나님에 신뢰가 필요합니다.
출애굽 하여 30일만에 신광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절에 온 회중이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시작된 불만이 온 회중으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불만은 금방 공감됩니다.
죄인이라 불만에 대한 내용에 귀가 더 솔깃합니다.
불만은 하면 할수록 커지고 많아집니다.
불만을 하는 사람은 늘 불만을 달고 사는 것입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이들은 홍해 앞에서, 마라의 쓴물 앞에서, 신광야에서 원망합니다.
3절에 이들의 불만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먹는 문제였습니다.
원망의 내용과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1) 원망이 결핍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고기 먹고 싶다, 떡을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중하게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2) 원망은 기억을 왜곡시킵니다.
오늘이 너무 힘드니까 과거가 미화됩니다.
우리에게 그 때가 더 좋았다고 표현합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의 압제 아래서 고통하고 있을 때입니다.
살기가 힘들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했던 때입니다.
정말로 배불리 먹었을까요?
애굽은 벽돌 굽는 곳이었고, 부족한 곳이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죄의 노예로 살아갔지만 그 때가 훨씬 좋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으면서 굶어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실이 힘들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은혜와 감격을 잃어버리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기적을 경험하고 찬양했던 백성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찬양은 무엇입니까?
살아났기에 감격해서 찬양한 것입니다.
죽음에서 건져주어서 찬양한 것입니다.
좋은 신앙은 예수님 때문에 조금 손해 보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본격적으로 신앙교육을 하고 계십니다.
4절~5절은 만나를 거두는 방법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중요한 의도가 있습니다.
깨우쳐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은 풍족하게 주십니다.
비 같이 내려주십니다.
하나님 안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길 원합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명기 8:2~4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2) 그런데 일용한 양식만 거두라고 합니다.
매일매일 감사하는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용한 양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도 먹이시는 하나님인데 하물며 너희들을 먹이시고 입시시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3) 여섯째 날에는 갑절을 거두라고 합니다.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주십니다.
자유인의 삶에는 안식이 있습니다.
죄인은 안식이 없습니다.
애굽은 안식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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