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9: 13~21절
9장에는 5~7째 재앙이 진행됩니다.
5번째 재앙은 가축입니다.
가축은 우상입니다.
생축은 재산목록 1호입니다.
소유를 치신다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 하나 하나 상실하는 것을 보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가 마음을 완악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력자는 나 안 죽고, 내 가족이 안 죽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7절에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정면으로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방해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면서 4:21절에 이미 바로 왕에 대해서 소개를 했습니다.
완악하다는 하자크로 고집하다, 단단히 허리를 졸라매다의 의미입니다.
7~14장 사이에 11차례 등장합니다.
9:7절의 완강하여, 완고하다는 다음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옵니다.
14장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인류역사 상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 없을 대 이적입니다.
이 이적이 일어나기 이전에 14:4절, 8절, 17절 세 번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러고 나서 대 이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둠이 바로 지나고 나면 빛이 오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로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완강함을 활용해서 자신의 일을 명료하게 드러냈습니다.
첫 번째 보고 바로가 항복했다면 이스라엘백성은 전능한 하나님을 아는데 한참이 걸렸을 겁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대 이적을 경험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만 했을 겁니다.
인생에 바로가 있습니다.
바로에게 에너지를 써버립니다.
바로 때문에 힘들다, 저 사람만 없으면 될 것 같습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만사가 형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람을 내 눈 앞에서 안치웁니다.
니가 볼 때는 너를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를 통해 나의 일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해서, 그 사람의 완고함을 활여해서 하나님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 자신을 비쳐봐서 나를 성숙하게 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 사람 때문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서 하나님께 엎드리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니 안에도 그 완악함이 없는 줄 아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만 있을 것이라는 그 완악함이 내 안에도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며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때문에 내가 무릎 꿇게 만듭니다.
하나님만 소망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막히는 것 같은데 주님의 일을 촉진시켜 주는 것이라는 것을 밝히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관건은 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6번째 재앙은 종기입니다.
재가 치료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재가 종기가 되었습니다.
7번째 재앙은 우박입니다.
하나님은 7번째 재앙의 목적을 14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 재앙에 대해 신하들의 반응이 갈라집니다.
20~21절입니다.
어떤 신하들은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 대비를 했습니다.
말씀을 두지 않은 신하들은 들에 종과 가축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25절이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마치 소금과 고모라에 있었던 롯의 사위와 같습니다.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은혜는 말씀을 듣는 귀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의 반응이 나옵니다.
27절입니다.
이번은 범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6번째 까지는 번죄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회개는 인생전체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남까지 끌고 가서는 회개가 안됩니다.
이는 다급함을 모면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두려움에 시작되었고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물에 잉크 한 방울만 떨어져도 못쓰는 것입니다.
두 방울, 셋 방을이 떨어져서 못쓰는 것은 똑같습니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약속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가짜 회개한 바로에게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내일을 염려합니다.
자기가 인생의 주인인 사람은 내일을 걱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을 삽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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