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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완성)

길이 참으라

by ysong 2022. 1. 30.

야고보서 5:7~12

야고보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행일치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사도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람을 대하는데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가에 대해 많은 시간동안 묵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인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1:3~4절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

시험을 통과하는 필요한 인내입니다.

지혜와 기도와 어울리는 인내입니다.

인내를 통해 온전한 사람,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순물이 제거되어 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내가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 빚어 가는 도구라는 관점에서 봤습니다.

 

오늘 본문도 길이 참으라는 표현처럼 인내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1장의 인내와는 다른 측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에 대한 시간에 관한 말씀입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먼저 적용하고 은혜를 받곤 합니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저는 가끔 잘 참지 못해 실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중에도 잘 참지 못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바로 미안하다고 했지만 또 부족한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준비하는데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은 가끔 참지 못해 실수하는 저에게 먼저 주신 말씀입니다.

또한 오늘 말씀은 저와 비슷한 실수를 할 수 있는 여러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도는 왜 참아야 하고, 언제까지 참아야 하고, 어떻게 참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입니다.

 

1절에 언제까지 길이 참아야 할까요?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까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주님이 머지않아 강림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면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기대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주님이 강림하지 않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죽어서 주님의 품으로 가실 때까지 길이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했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7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지요.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용서하면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요?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든 아니면 우리가 죽어서 주님께 가실 때까지입니다.

 

오래 참는 이유에 대해 농부의 예를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농부는 열매를 거두기까지 참는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시작부터 끝까지 참는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참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간만 기다려지면 열매를 맺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수확이 주는 기쁨을 누릴 것을 소망하기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분명한 소망을 전제로 하는 인내입니다.

소망이 있는 자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소망이 있는 자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기다리며 참는가요?

늦은 비와 이른 비를 기다리며 참는 것입니다.

이른 비는 파종 후에, 늦은 비는 열매를 거두기 전에 내리는 비입니다.

이른 비는 10월 하순과 11월 상순에 오는 비입니다.

이 비가 안 오면 뿌려진 씨가 전혀 싹트지 않습니다.

늦은 비는 4월과 5월의 비입니다.

이 비가 안 오면 곡식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적절하게 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반드시 결실을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농부처럼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셔서 결실을 맺게 하실 겁니다.

 

야고보사도는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마음을 확정하라, 마음을 정하라, 기다릴까 포기할까 갈등에 있을 때 소망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참을 만한 일이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였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니까 찾아오는 어려움입니다.

자의적 선택으로 인해 고난입니다.

고난의 이유가 나의 선택으로 인한 것입니다.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택하지 않았는데, 고난이 오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때 하지 말 것과 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 말 것은 원망입니다. 해야 할 것은 선지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원망하면 안됩니다.

4:11절에서 겸손하지 못한 교만은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어려움이 계속되면 원망으로 나타납니다.

소망이 흔들릴 때 언어로 죄를 짓게 됩니다.

부모형제를 원망하고, 주변사람을 원망하고, 환경을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합니다.

원망은 원망만 키웁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파괴시킵니다.

민수기에서 광야에서 원망했던 이스라엘백성의 결국을 봤습니다.

다 망했습니다.

원망은 인내할 때 자주 할 수 있는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사탄은 슬며시 도둑처럼 우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생각과 가치관을 죄로 물들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으로 치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원망하는 자를 소망의 자로 바꾸십니다.

인생전체를 바꾸십니다.

 

어려움이 계속되면 선진들의 신앙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욥과 선지자를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길이 참아낼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신 그대로 이루실 것을 믿고 선포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니까 인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리어 고난과 어려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날이 올 것이기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사도가 욥에 대해서 많이 묵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야고보사도가 구약의 여러 인물 중 욥을 많이 묵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야고보사도는 욥의 고난이 아닌 인내를 묵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난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고난을 견딘 인내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인내를 했기 때문에 결론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복된 욥을 봤던 것입니다.

 

욥이 인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묵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욥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변죽이 들끓든 합니다.

그 신들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십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이 자비하시고 긍휼하시기 때문에 욥이 인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욥의 복된 결말은 주께서 만들어준 결말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욥의 인내는 하나님의 인내였습니다.

하나님이 순간순간마다 참고 견디고 인내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욥기의 대부분은 욥의 자기주장으로 가득합니다.

자신을 고난 받을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주장합니다.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다가 다스리시는 천지만물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운행된다는 것을 욥에게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로 인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주께서 이끌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인내도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로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무력해서 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힘 주시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12절에 인내와 맹세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맹세는 지나친 것입니다.

감정에 앞서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기면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라, 고난을 견디다 보면 감정이 앞설 수 있는데, 감정이 지나쳐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적용)

인내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하나님의 일하심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소망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을 기억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같이 흠 많고 단점 많은 이에게 변함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서 나옵니다.

 

예레미야애가 3: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시편 92:1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스스로 인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자비하시기 때문에 참을 수 있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맛봤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참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참을 수 잇도록 붙잡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게 했다는 것입니다.

 

인내는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삶의 열매를 거두라면 인내해야 합니다.

끝까지 참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세상 사람이 참는 목적과 성도가 참는 목적이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열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은데, 성도의 참음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욥의 고백처럼 귀로는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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