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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완성)

하나님께 가까이 하기

by ysong 2022. 1. 16.

야고보서 4: 1~19

신앙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이 보여준 믿음의 행동들을 따라 해보는 것입니다.

자꾸 해 보면 나도 모르게 신앙이 진지해지고 깊어지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말씀 한 절이 자신의 인생을 바뀌는 역사도 일어납니다.

 

지난주 위로부터 난 지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를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것으로 표현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혜가 행함이 있는 믿음과 연결되는 이유는 지식을 활용하는 인격을 가리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내면의 인격에 따라 지식을 활용한 말과 행동, 판단이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은 사람이 지식을 발휘하여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화평을 이루며 의의 열매를 맺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믿음을 삶에 적용하기 위한 무단한 노력을 하신 것이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을까를 위해 수행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땅 위의 지혜와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있습니다.

성도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안에서 땅 위의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다툼이 있었습니다.

 

1절에 너희 중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믿음이 가장 순수하다고 하는 초대교회부터 현재 한국교회까지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런 문제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싸움과 다툼은 어디서 옵니까?

야고보 사도는 정욕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정욕으로 인해 교회 공동체가 찢어지는 것을 봤던 것입니다.

 

정욕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총체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욕심, 욕망, 탐심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욕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기적입니다.

얻지 못하면 비방하고 공격합니다.

 

속이 부글부글 꿇는데 좋은 표현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내 마음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 싸움입니다.

내 마음의 갈등이 해결되어야 밖의 갈등이 해결됩니다.

 

내 안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를 봐야 합니다.

마찰과 갈등을 겪고 있다면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저는 남양주성도님들은 싸우지 않고 다투지 않고 평화를 이루면 살길 바랍니다.

정욕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자족의 방법입니다.

디모데전서 6: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빌립보서 4:11~13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욕심은 채워서 만족함이 없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싸우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었습니다.

창세기 13에 룻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다툼이 아니라 양보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싸움과 다툼의 문제는 곧 행함이 있는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바울이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계속해서 무엇을 합니까?

2절에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얻지 못하는 것들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허비한다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얻으려고 했는데 얻지 못하니까 살인을 해서라도 취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시기하여 얻으려고 했는데 얻지 못하니까 다퉈서라도 얻으려고 합니다.

욕심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시기가 다툼으로 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원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향한 욕심은 경제판에서, 인기를 향한 욕심은 연예계에서, 권력을 향한 욕심은 정치판에서 싸움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반절에 이것을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은 까닭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욕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목적을 이루려고 하지 하나님께 자족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나로 사는 방법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용한 양식과 필요한 양식으로 만족할 수 없어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절에 갑자기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를 이야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에 관해 신앙의 영역과 연결했습니다.

 

기도했는데 왜 응답받지 못하느냐?

야고보 사도는 기도를 많이 하신 분인데 그 분이 주는 기도의 팁이기도 합니다.

간단합니다. 욕심 없이 구해봐라, 순수한 동기로 기도해 봐라,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야고보 사도는 기도의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면 응답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동기와 목적이 순수한 것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합리화를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도 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동기를 스스로 잘 살펴봐야 합니다.

영혼구원은 대부분 응답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셨는데 응답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운 사람이 있는데, 망하게 해 달라고 하면 응답되지 않습니다.

욕심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저주하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다윗의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사무엘하 712~16)

다윗이 하나님을 성전을 짓겠다고 합니다.

자신은 왕이 되어 궁전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은 성막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획을 나단 선지자에게 전했더니 나단 선지자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뜻을 전하셨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왕국을 통일하기 위해 많은 전쟁을 치러서 손에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분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평화의 사람이 성전을 지어야 한다며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순수한 마음은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왕위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후손을 축복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조금 다른 예도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입니다.

남편 엘가나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아내인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아내인 브닌나는 아이를 아이를 낳았습니다.

한나는 남편에게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한나는 실로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너무나 속상하여 하나님께 한탄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한나는 하나님이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합니다.

한나는 기도하면서 순수한 동기를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순수한 동기로 만들어가는 비법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를 구합니다.

자녀가 좋은 직장에 입사하기를 구합니다.

자녀가 훌륭한 사업가가 되기를 구합니다.

욕심으로 구하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욕심을 내려놓고 욕심 없이 다시 다시 구하는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도록, 이렇게 쓰겠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순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동기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은밀하게 숨어 있는 정욕을 끊어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포장을 하지만 욕심이 가득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는 삶의 태도가 다릅니다.

삶을 사는 방식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은혜를 주시는 줄 아십니까?

6절에 겸손한 자입니다.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본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람과 비교하면 내가 난 것이 많습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잘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들여야 봐야 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을 만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나 자신을 비교하면 비교가 안됩니다.

전지, 전능, 완전하신 하나님과 비교하면 자신의 허물을 알게 됩니다.

진짜 겸손해 집니다.

 

그래서 7절에 겸손해 지는 방법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라고 말한 까닭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마귀의 소욕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길이다.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으면 마귀가 피합니다.

 

더 나아가 8절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손을 깨끗이 하라(회개)

-두 마음을 품을 품지 말라.

- 애통할지라.

- 주 앞에서 낮춰라.

 

적용)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세상의 벗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벗이 되라고 합니다.

안보이는 존재와 가까이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벗으로 인정해 줬습니다.

 

세상의 벗이 되면 즐겁습니다.

하나님과 벗이 되면 외롭습니다.

하나님과 친구가 된 공동체가 많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혼자였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외로운 길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맛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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