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6:1~7절
극적 반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배우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반전은 기다리면 오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반전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면서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브엘세바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헤브론이나 다른 곳에서 살았을 겁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 남쪽 끝입니다.
또한 브엘세바는 아비지 이삭과 어린 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형 에서를 피해서 집을 떠난 것이기도 합니다.
브엘세바에 이른 야곱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요셉의 청함을 받고 기근을 피해서 잘살게 하려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생각은 기근이 생겨서 어렵다고 먼 나라로 가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인가에 대한 염려가 찾아왔습니다.
3대에 걸쳐서 동일하게 기근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고, 이삭은 머물렀고, 야곱도 약속의 땅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기근으로 힘들지만 자신은 가나안 땅에 머물면서 자식들을 시켜서 곡식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겠는가? 혹시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마음 속으로 이것인가 저것인가 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볼 때에 애굽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같이 생각이 되는데, 한편으로는 가나안을 떠나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묻기 위해 희생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애굽에 내려가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당장 요셉을 보고 싶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약속의 땅을 떠났을 때 고생을 했기 경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이 대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3절-큰 민족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십니다.
안심시켜주시기 위해서 다시 확인시켜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때는 자상하십니다.
야곱이 편안한 마음으로 갔을 겁니다.
벧엘에서 너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알기 때문에 애굽에 갈 때 안심하게 된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그에게 필요한 말을 잘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을 여기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요할 때마다 나타나셔서 확증시켜주시고 안심시켜주십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21년 동안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뜸을 드리는 면이 있습니다.
진작 가르쳐주었으면 야곱이 그동안 맘 고생하지 않고 행복했을 겁니다.
고통 가운데 살도록 내버려 두신 이유가 뭘까요?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사야 55:8~9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은 천천히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게 하신 후에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 우리들은 믿음으로 기다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뒤돌아보면 하루하루 급급하게 사니까 살았을 뿐인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생존문제 놓고 살아갈 뿐인데 우리의 연약한 인생을 통해서 위대한 뜻을 이뤄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살았을 뿐인데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삶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이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갈지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끝까지 믿고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두 번째 떠남은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떠나게 됩니다.
4절-복된 죽음을 약속해 주십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8~27절-7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8~34절-야곱이 유다를 믿고 있습니다.
17살에 헤어져서 13년+9년(7+2)으로 22년 만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만난 것입니다.
극적인 상봉으로 이뤄집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최대 기쁨이라는 표현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연상하게 됩니다.
다시 만남의 회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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