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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민수기)-완성

보기만 하면 살리라

by ysong 2021. 9. 12.

민수기 21:1~9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민수기에 등장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고생이 많았고, 민수기를 통해 광야를 간접 경험하신 여러분들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광야에서 무엇을 배워야 했을까요?

우리들도 민수기를 통해 인생광야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들이 광야에서 무엇을 배우시길 원하실까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광야의 촉박한 환경이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현실인 것을 믿고 인정하는 것을 배우길 원하십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조금씩 배워 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결과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21장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어두웠는데, 흐름이 반전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행군의 속도가 빨라지고, 시를 암송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진군을 합니다.

21장에는 출애굽 당시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40년 만에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합니다.

또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도 전쟁을 치러 승리를 합니다.

이는 38년 동안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고, 변화가 전혀 없는 광야를 통과한 이들에게 주어진 작은 상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21장을 통해 전쟁의 승리 이야기와 불 뱀 사건을 통해 우리들이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 것인가를 배우고 적용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3절은 아랏 왕과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짧게 기록하고 있지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 남쪽 위치한 네겝에 거주한 가나안 사람입니다.

아랏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다림 길(정탐꾼의 길)로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상황 파악을 위해 일부 정탐꾼을 보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랏 왕은 이들을 포로로 잡아버렸습니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이 반응이 성숙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엎드렸다는 것입니다.

과거엔 이런 일을 당하면 모세를 원망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넘기시면 우리들이 처서 정복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출정하여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곳의 이름을 호르마라고 하였습니다.

 

호르마는 민수기에 두 번째 등장하는 지명입니다.

첫 번째는 민수기 14장에 정탐사건 이후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가나안 땅을 점령하려고 시도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함께 하지 않앗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범궤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올라간 그들은 크게 패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호르마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민수기 14:45)

 

정탐사건 후 순종치 않고 쫓긴 곳이 호르마입니다.

이번에는 붙여주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넘기시면 허락하시면 승리하는 전쟁입니다.

미리 가나안 전쟁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호르마에서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됩니다.

작은 성읍을 점령한 사건이지만 이것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징조입니다.

자그마한 승리이지만 매우 뜻이 있는 승리입니다.

 

그것도 잠시입니다.

4~9절은 불평사건이 등장합니다.

승리한 김에 바로 가나안 땅에 올라가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에둠을 가로질러 올라가지 못하고 외돌러 돌아가야 합니다.

에둠 땅을 우회하게 되니까 마음이 상했습니다.

돌아가니까 마음이 상합니다.

요긴한 길이 있는데 막혔기 때문입니다.

지름길, 편한 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쉽게 편하게 살 수 있는데 힘들어지니까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들의 불평의 내용이 5절입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합니다.

과거에는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더니 이번에는 아론 대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또 애굽에서 인도해 낸 것을 원망합니다.

또 없는 것을 원망합니다.

만나를 하찮은 음식으로 비아냥거립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싫어합니다.

부모의 세대에 했던 불평입니다.

음식에 대한 말이 아닙니다.

또 변화가 없고, 현재는 고통스럽고 미래는 오지 않을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승리한 사람답지 않게 같은 실수를 하는 것을 보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그 처지가 되면 똑같은 일을 저지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징계로 불 뱀을 보냅니다.

색깔이 붉은 색을 띠어서 그렇게 불렀는지, 물리면 불과 같은 열이 나서 그랬는지 정확한 해석은 없습니다. 아무튼 독이 있는 뱀을 보내서 백성들을 물게 하십니다. 지금도 그 곳에는 뱀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징계를 받고 어떻게 행동을 했는가요?

7절입니다.

우리가 원망하여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모세에게 여호와께 기도하여 달라고 사정합니다.

 

하나님은 8절에 특이한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장대 위에 달린 불 뱀을 바라보는 자가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백성들의 문제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마음을 빼앗겼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는 내 시선이 어디에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광야에 집어넣으신 하나님께 시선을 둬야 합니다.

그 분만 바라봐야 합니다.

시선이 병들면 불평을 합니다.

이것 때문에 원망이 찾아오고 불 뱀을 초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물게 한 불 뱀의 형상을 보라고 했을까요?

불 뱀은 고통을 주고, 공포에 몰아넣게 만든 형상입니다.

불 뱀의 형상으로 만든 놋 뱀을 볼 때, 두려움과 염려와 불안 마음이 함께 일어납니다.

이는 두려움과 염려와 불안 뚫고 하나님의 은혜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때, 불 뱀을 뚫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뚫고 하나님을 볼 때 치유와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불 뱀에 둘러싸인 상황입니다.

그것을 뚫고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주님의 방법은 장대 위에 매달아서 그것을 보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형상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불 뱀이 신통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라고 했기 때문에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를 보면, 이 사건을 주술적으로 받아들인 후손들이 실수를 합니다.

이들은 놋 뱀을 우상으로 섬깁니다.

히스기야 왕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이 놋 뱀을 부수게 됩니다.

열왕기하 18:4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하나님을 안보고 놋 뱀을 봤던 것입니다.

성전 한 복판에 놋 뱀을 세워 놓고 분향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치우게 됩니다.

놋 뱀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는 능력은 놋 뱀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볼 뱀의 독으로부터 구원을 결정짓는 것은 장대에 달린 놋 뱀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가 낫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였습니다.

 

놋 뱀 사건의 중요한 의미는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은 3:14~15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 시대에 뱀에 불린 자들이 장대 위에 달린 놋 뱀을 보면 살듯이 예수님을 보면 살게 됩니다.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사실에 대한 예표입니다.

지금도 주님만 바라보면 삽니다.

 

나를 보다가 십자가를 보는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보면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입니다.

 

그런데요, 모세 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뱀에 물려 놋 뱀을 만들기 전에 죽은 사람도 있겠지만 바라보지 않고 죽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아픈 상처만 만지다가 죽은 이들이 있을 겁니다.

고개를 들어 보면 되는데, 이렇게 쉬운 방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보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예수님만 믿기만 하면 산다고 하는데, 이렇게 쉬운 방법이 없는데 믿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고 산 사람들은 승리를 맛보게 됩니다.

아모리 왕 시온과 바산 왕 옥을 처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은 무기를 다루는 훈련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훈련뿐입니다.

전투 훈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하고 믿음으로 관계를 맺는 훈련인데, 이것이 기본기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전폭적으로 믿는 훈련, 두려워하지 않는 훈련입니다.

 

우리가 21장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달라진 모습입니다.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은데, 진행과정에서 조금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호르마에서 하나님께 간구한 것과 불 뱀 사건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불 뱀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은 사라집니다.

이들의 시선이 조금씩 하나님께 옮겨가는 것을 봅니다.

적용)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자 합니다.

갑자기 낙심이 찾아오고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사건이 반복됩니다.

광야의 사건은 시시때때로 찾아옵니다.

승리하여 잠시 기뻐할 때도 찾아오고, 낙심될 때도 찾아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사건은 사건과 환경으로 돌아갑니다.

 

마치 베드로가 바다를 걷다가 바람이 부니까 물을 봤던 것과 같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기적을 경험했는데, 순간 바람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 순간 두려움이 찾아오고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나요?

불 뱀에 물려 아픈 상처를 보고 있나요?

아픈 현실을 보고 있나요? 그곳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가요?

흔들리는 사람을 보고 있나요?

 

바라보면 살겠다고 하는 의지하는 심정이 생겨야 합니다.

바라보면 살겠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면 삽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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