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8:19~20절
16~19장은 광야에서 보낸 38년의 역사에 대한 압축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라자손과 르우벤 자손, 레위인 250명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내용뿐입니다. 또 이들에게 적극적이었던 만4천7백 명의 백성들이 심판을 받아 죽었다는 내용뿐이었습니다.
4장뿐인 38년의 세월은 역사에 남길만한 내용이 없는 생활이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이전 삶에는 출애굽의 이야기, 시내산에 있었던 이야기,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이야기,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 이야기, 진을 갖춘 은혜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그 이후 38년은 더 이상 은혜의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동일하게 인생의 광야에 함께 서 있습니다.
우리들도 그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의 마지막까지 은혜의 이야기를 써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멈춰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인생을 살아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생이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세대의 삶을 정리하면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책무와 역할을 기록하도록 했을까요?
지금까지 전개된 불평과 반역에 대한 내용과 동떨어져 생뚱맞아 보입니다.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위해 제사장을 통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관계를 지속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역할과 책임이 중요합니다. 이들이 이 직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어떤 제도를 마련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는 사사기도 동일합니다.
자기의 소견대로 살았던 사사기의 마무리 이야기는 레위인과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귀속된 이야기, 레위인이 타락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사시대가 끝나면 왕정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운 제사장과 레위인의 역할과 책임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만인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 역할과 책임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상당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멸해 가는 것을 보고 두려움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젠 우리들은 다 망하게 되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하소연을 합니다.
하나님이 두려움에서 나오는 백성들의 말을 들으시고 아론을 불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대부분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는데, 레위기 10장, 민수기 18장, 두 곳에서 아론을 불러 직접 말씀하십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와 보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레위인인 고라가 반대한 핵심세력이 되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 때 레위인이 하나님의 편에 섭니다.
드런데 지금은 하나님이 가시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두 가지 죄를 담당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성소를 지키면서 두 가지 죄를 담당해야 합니다.
성소에 관한 죄라는 것은 낯선 자들이나 부정한 자들이 침입하여 성소를 더립히면 그 책임은 레위인과 제사장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무단으로 침입한 죄인은 자신의 불법으로 죽어여 하지만 파수꾼의 역할을 맡은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면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직무를 소홀히 하거나 자기들의 일을 등한시하면 책임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특권이면서 책무를 함께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직무를 충실히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5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역할이 얼마나 큰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흥과 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제사장이란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제사장이 충실하면 백성에게 내리는 진노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잘하면 이 땅을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신 이유는 요셉이 섬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중요한 비밀입니다.
요나가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상관 없는 사람이 고생한 이유는 요나가 역할과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18절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열쇠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신앙고백 위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권세를 말합니다.
신실하게 서 있으면 그것 때문에 세상에 선한 은혜가 미치는 것입니다.
죄가 만연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백성들의 문제는 제사장의 문제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목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속마음을 전하지 못하면 완악해집니다.
1세대의 끝에 제사장과 레위인의 권리와 책무를 기록한 이유입니다.
망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책임을 제사장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죄를 담당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쓰레기 청소부입니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부패하고 썩은 냄새가 납니다.
이 사명을 우리들에게 맡겼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계를 이어가는 길을 말씀하십니다.
6, 7절에서 이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선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헌물을 주관하게 해서 제물과 첫 수확물로 생계를 이어가도록 합니다.
첫 수확물을 제사장에게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소금언약이라고 했습니다.
변치 않는 약속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이고 입혀서 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징조로 땅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나눠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소유물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설입니다.
땅을 줘서 먹고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하나님이 분깃이며 기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던지신 곳에서 차분을 기다리며 사는 자입니다.
내가 분깃이기 때문에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일을 할 때 무엇을 공급하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전존재를 통째로 걸고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땅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자 책임입니다.
이 사실을 신약시대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고전 9:13~14절(273쪽)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가 네 생명줄이다. 너는 안전하다. 하나님께 전존재를 통째로 걸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의지하고 의뢰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사가 문제이고, 이 사회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문제입니다.
특권만 주장하고 복만 강조했던 이기적인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레위인이 받는 보수에 대한 말씀은 21~32절의 말씀입니다.
제사장을 돕는 레위인에게 십일조로 살게 하고 레위인도 십일조를 제사장으로 몫으로 돌립니다. 사사기를 보면 레위인의 생계를 위해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십일조는 레위인과 제사장의 생계로 사용되었고, 성막전체를 보존하는데 사용되었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생계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마23:23절을 보면 십일조에 대한 신앙적인 태도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바리새인들은 따로 수입의 십일조와 별도로 박하, 회향, 근채를 수확해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정의와 긍휼이라는 삶의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지나친 형식에 치우쳐 내용을 잃어버린 십일조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마음부터 드린다면 인생전체를 선물로 주셨는데 규정에 묶이겠냐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적용) 18장 5절과 20절의 관계를 깊이 묵상하면서 적용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하는 역할은 제사장과 레위인이 충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이 기업이 되고 분깃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절은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우리들의 삶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와 모습,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물음에 대답을 제시해 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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