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8:5~7절
이스라엘은 하나의 국가로 출발했습니다. 초대왕은 사울왕이고, 두 번째 왕은 다윗입니다. 세 번째 왕은 솔로몬입니다. 네 번째 왕은 르호보암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처럼 말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은 여로보암입니다. 북이스라엘은 2백년동안 지속되었습니다. 9번의 쿠데타로 왕조가 바뀌었고, 19명의 왕이 나라를 통치했지만 금송아지를 섬기는 길에서 떠나지 못했다는 것이 북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금송아지를 섬겼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는 했지만, 향락과 풍요와 다산을 추구했다는 겁니다. 반반의 역사였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북이스라엘을 위해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길 바랐습니다. 북이스라엘 활동했던 선지자는 엘리야, 엘리사, 요나, 아모스, 호세아입니다. 우리가 이름을 자주 들을 정도로 능력이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끝내 듣지 않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끝내 말씀을 듣지 않는 북이스라엘을 위해 앗수르라는 강대국이라는 막대기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앗수르라는 막대기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이야기가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도 호세아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의 이름도 호세아입니다.
북이스라엘은 721년에 앗수르에게 망했는데, 호세아왕 9년입니다. 남유다는 히스기야왕이 된지 6년째 되는 해입니다.
호세아왕은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쳐왔습니다. 조공을 바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애굽왕 소에게 사신을 보내서 협력을 약속합니다. 이런 움직임이 앗스르왕에게 알려지자, 살만에셀은 북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대군을 이끌고 살만에셀은 북이스라엘의 대부분 성을 정복하고, 수도인 사마리아성만 남겨놓고 723년에 죽었습니다. 그의 후계자인 사르곤2세가 사마리아성을 계속해서 포위하여 721년에 점령했습니다. 3년동안 에워싸자 먹을 것이 떨어져 싸울 여력을 상실한 사마리아성은 무너지고, 북이스라엘 영원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2. 망한 이유
그들이 왜 망했을까요? 그들은 망하면 안되는 나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 이렇게 잘 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모델국가입니다. 그런데 망했습니다.
17:7~23절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15, 23절인데-언약을 버리고 말씀을 버린 결과라는 겁니다. 언약은 모세와 맺은 시내산언약입니다. 약속을 지키라고 했지만 그것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그들이 멸망한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힘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꾸 사람의 힘을 의지하고, 우상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이는 하나님 형상인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이 힘의 원천인 것처럼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남유다 히스기야왕도 북이스라엘이 왜 멸망했을까을 생각하면서 내린 결론이 18:12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첫 번째 수단은 눈이고, 두번째 수단이 귀입니다. 그 귀로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인식하게 되고, 그 인식에 따라 판단력을 갖게 되고, 그 판단력에 의해 삶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항상 부정적인 것을 듣는 사람은 매사에 나쁜 일이나 나쁜 사건을 말합니다. 항상 긍정적인 것을 듣는 사람은 매사에 좋은 일이나 좋은 사건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하와가 뱀이 말하는 것을 듣기 이전에는 선악과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겠는가? 수없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그 시점에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기도 하게 느껴졌을까? 뱀으로 둔갑한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았더니 이전에 보았을 때와 다르게 보았고 다르게 보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주로 듣고 있는가? 하와가 가까이에 있던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는 것이 달라졌고 마침내 따 먹었습니다. 아담은 가까이에 있는 하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는 것이 달라졌고 같이 먹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안식의 장소인 에덴동산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고, 자신들의 죽음을 초래했고 땅이 저주를 받는 등 피조세계에 고통과 신음이 들어왔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는 말을 듣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요즘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친구들의 무슨 말을 듣습니까? 부모의 말, 선생님의 말을 듣습니까? 유혹하는 친구의 말을 듣습니까? 부모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의 말을 듣길 바랍니다. 비록 부모의 말에 순종하려면 힘이 들고, 학생 여러분들의 생각으로는 부당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 말을 버리지 말길 바랍니다. 또 말씀을 듣기 바랍니다. 제가 학생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부모의 말도 듣지 않는데 어떻게 보이지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백성은 듣지 않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망했다입니다.
2)앗수르 혼합정책
앗수르는 인종혼합정책을 펼쳤습니다. 인종을 섞어서 민족성을 말살시키는 정책이었습니다. 17:24절을 볼까요. 이들이 북이스라엘에서 살게 하고 북이스라엘사람들은 앗수르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흩어져 살게 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북이스라엘로 이주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사자가 나와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앗수르 왕에게 이스라엘 땅의 신을 섬기지 않아서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며 이 땅의 신을 섬길 수 있도록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보내달고 합니다. 그래서 앗수르왕이 포로로 사로잡아온 제사장을 북이스라엘로 보냅니다. 그들이 백성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28절입니다.
29절~32절을 보면 그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30,31절에 그들이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3절, 41절을 볼까요. 이것이 포스터모던이즘입니다. 혼합입니다. 다원주의입니다. 너도 진리가 있고, 나도 진리가 있고, 너에게도 구원이 있고, 나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회입니다.
학생들 양다리 걸치기를 좋아하죠. 공부도 하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게임도 하면서 양다리를 걸칩니다. 그러면 힘듭니다. 이것이 포스터모던이즘입니다. 그 결과는 대학입학이라는 작은 시험에서 평가될 겁니다.
이런 북이스라엘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칠 제사장, 교사가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남양주성실교회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망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모두 천국의 백성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여인의 비유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이 이 때부터입니다. 완전히 혼합해 버린 상태라는 겁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8년이 지나서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대군이 파죽지세로 남쪽을 향해서 내려왔습니다. 그때 앗수르 왕은 사르곤 2세의 아들 산헤립이었습니다. 산헤립의 대군을 이끌고 와서 라기스에 본부를 차려 놓고, 남쪽 46개의 성읍을 다 점령했습니다. 이젠 예루살렘성 하나만 남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히스기야왕이 라기스에 사신을 보내서 앗수르왕에게 잘못했다고 빌면서 조공을 바치겠다고합니다. 그랬더니 산헤립이 은 300달란트(1달란트 32키로, 1톤의 양), 금 30달란트를 바치라고 합니다.
18:14~16절을 읽으면서 설명
이렇게 은과 금을 바치니까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통째로 먹으려고 합니다.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이것은 이름이 아니라 관직의 이름, 무관사령과, 문관사령관)에게 대군을 이끌고 가서 히스기야를 치도록 했습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하나님을 조롱하고 항복하면 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18:33절, 35절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할 수 없다고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 조롱의 말을 듣고 히스기야의 태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19:1절입니다. 옷을 찢고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4~7절까지 읽으면서 설명.
대군을 이끌고 히스기야왕과 유다백성들을 조롱했던 랍사게가 앗수르왕이 머물고 있는 라기스로 물러갑니다. 왜냐하면 이집트에서 대군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이 들려서입니다. 산헤립도 이 소식을 듣고 라기스에서 립나로 이동합니다. 립나에서 산헤립과 랍사게가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산헤립이 사자를 시켜 항복하라는 서한을 써서 히스기야에게 보냅니다. 이 편지를 받고 히스기야가 한 행동이 19:14~19절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응답하십니다. 19:20절 이하입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앗수르의 대군이 진멸당합니다. 35절입니다. 앗수르왕은 돌아가지만 아들에게 살해를 당하고 앗수르는 오래가지 않아 바발론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히스이야왕이 병이 듭니다. 20:1 그랬더니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심방 가도록 시킵니다. 심방을 간 이사야가 당신은 곧 죽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랬더니 히스기야왕이 심하게 통곡합니다.
그랬더니 다시 하나님이 심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사야를 불러서 다시 삼방을 다시 가도록 합니다. 십오년을 더 살도록 하겠다는 소식을 전하라고요. 히스기야가 자신의 병을 낫게 하고 3일만에 성전에 올라갈 수 있다는 증표가 있느냐고 이사야에게 묻습니다.
그랬더니 해 그림자를 십도 앞으로 가는 것으로 보여줄까요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보여줄까요. 뒤로 물러가는 것이 어렵다면서 그것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15년을 연장받고 헵시바라는 왕비를 다시 만나서 아들을 낳았는데 천하의 못된 놈인 므낫세입니다. 결국 므낫세의 죄악으로 인해 유다가 멸망하게 됩니다. 또 이사야선지라를 톱으로 켜서 죽이는 악독한 짓을 저지릅니다.
히스야가 병이 걸렸다는 서식을 듣고 바벨론의 왕인 브로닥발라단이 사신을 보냅니다. 히스기야왕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듣고 위문하기 했다고 하지만 실은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친 유다와 손을 잡아 세계를 점령하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사신을 맞이한 히스기야왕이 너무 기쁜 나머지 군기고 모물창고를 다 보여줍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후에 바벨론이 유다의 보물을 탐나도록 했습니다.
이 사실을 듣고 예언을 합니다. 20: 17~19절입니다. 히스기야왕에 대한 이야기는 이사야 36~39장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정직하고 여호와와 함께 한 왕이었습니다. 18:5,7절입니다. 그런데 숫한 고난과 역경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이 아니라 고난이 오고 위기도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지하고 형통한 사람은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갔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신앙은 각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신앙이 다르고, 부부가 신앙이 다르고,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의 신앙도 다릅니다. 다 주님의 자녀들이지만 목사님들도 차이가 있고, 장로님들도 차이가 있고, 권사님들도 차이가 있고, 집사님들도 차이가 있고, 학생들도 다릅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차이를 겉으로 봐서는 차이를 분간할 수 없습니다. 똑같이 주여, 할렐루야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똑같이 기도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차이가 납니다. 정말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를 겪을 때 선택하는 방법에 따라 신앙의 차이가 납니다.
문제를 만나면 늘 두 길이 있습니다. 좁은길이냐 넓은 길이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좁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히스기야는 좁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 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우상을 섬겼던 북이스라엘은 망했고, 망할 위기에 처한 남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회복되는 것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기도
성도여러분. 히스기야왕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됩니다. 혼합하여 망하지 맙시다
문제를 만나면 신앙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좁은길이냐 넓은 길이냐입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대인관계에서, 손해 볼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의 이상한 소명 (0) | 2021.10.12 |
---|---|
하나님만 신뢰하라 (0) | 2021.08.28 |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 (0) | 2021.07.14 |
듣는 훈련 (0) | 2021.06.28 |
“너마저 타락하다니” (0) | 2021.06.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