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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완성)

생명나무 가득한 새 예루살렘

by ysong 2021. 7. 3.

요한계시록 22:1~5

오늘 본문이 천국에 대한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천국에 대한 많은 설명을 하면 할수록 문제가 생깁니다.

바울은 삼층천에 갔다 왔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기록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예수님도 거할 집이 많다는 표현으로 천국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본 천국이나, 천국을 갔다 왔다는 주장은 우리가 가려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에 대한 새 예루살렘과 생명나무 가득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미지가 주는 행복감과 풍성함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고 있는가가 아닐까요?

 

21:9~22:5장은 천국에 대한 설명입니다.

천국에 대한 설명인데 새 예루살렘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음(2)=어린양의 아내 보임((9)=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2, 10)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의 신부인 성도들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라고 해석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성곽이 어떻게 생겼을까요.(12~14)

12개의 기초석 위에 성곽이 세워졌는데, 각각의 기초석에 12사도의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동서남북에 각각 3개씩 12개의 문이 있습니다.

문은 진주로 되어 있고, 진주문에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는 신구약을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배웠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성도=하나님의 백성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2) 새 예루살렘은 장소로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크기도 엄청납니다.(16)

가로, 세로, 높이가 만 이천 스다디온인 정육면체입니다.

만 이천 스다디온은 2400km으로 계산합니다.

서울과 부산의 6배입니다.

이는 장소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정육면체는 지성소입니다.

지성소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1년 한 번 들어가는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곳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초월과 내재의 경계가 없어집니다.

 

3) 새 예루살렘은 보석으로 가득합니다.(19~20)

많은 분들이 천국이 실제 보석으로 가득한 곳이며, 천국의 길은 황금길 일거리고 말을 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성도가 영광스러운 보석 같은 존재들로 빚어진 영광스러운 존재로 완성됨을 강조하려는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보석 같은 어린양의 신부로 보고 있습니다.

 

4장에 보좌 위에 앉으신 이의 모습이 벽옥 같고 홍보석 같고 녹보석 같다고 했는데, 12기초석의 보석 중에 벽옥, 홍보석, 녹보석이 나입니다. 4장의 하나님의 보석과 21장의 기초석의 보석과 같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있음을 말하는 의도적 표현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화려합니다.

이는 세상의 왕궁과 비교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교회는 초라했는데 왕궁과 신전은 화려했습니다.

교회는 하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상인 진정한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을 보석으로 묘사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 있게 여기는 금은보석이 새 예루살렘에는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로 여겼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가짜 화려함에 취해있습니다.

그 가짜 화려함은 새 예루살렘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물질이 아닌 사랑과 은혜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새 예루살렘에서 유효하고 단단해 지고 견고해집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23~24)

영광의 핵심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4) 새 예루살렘에는 두 가지가 없습니다.

성전이 없습니다.(22)

해와 달이 없습니다.(23)

성전은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이 만나는 곳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소통하기 때문입니다.

성전과 해와 달의 자체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중간 매개체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밤이 없습니다.(25)

악이 가능성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22:3절 다시 저주 받을 일이 없습니다.

악을 상징하는 어둠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맑은 생명수가 흘러나와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달마다 열두 가지의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의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합니다.

 

생명나무는 어디에 처음 등장합니까?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가 동산 중앙에 있습니다.(창세기 2:9)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천사들이 생명나무를 타 먹지 못하도록 지켰습니다.

창세기 3:22절에 생명나무는 영생하는 나무입니다.

이 생명나무가 성경을 마무리 하면서 요한계시록 22:2절에 나옵니다.

처음에 먹도록 허락한 이 생명나무를 먹게 됩니다.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수가 가득합니다.

창세기 2:10절에 에덴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네 개의 강을 이루어 흐립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에스겔 47:1절에 에스겔에게 보여준 환상입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는 환상입니다.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이 많습니다(47:7)

 

이 생명수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요한복음 7:38~39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예수님께 나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생수는 성령입니디.

새 예루살렘은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며 누리며 사는 삶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왕노릇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왕 노릇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젠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들이 삼위 하나님과 더불어 다스리는 왕 노릇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 예루살렘에 대한 설명을 정리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처소를 마련하려 간다고 했던 그 새 예루살렘입니다.

우리들이 영원히 살아갈 새 예루살렘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성도이며 한편으로는 보석으로 가득하고 생명수와 생명나무가 풍성한 장소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곳은 회복과 충만함이 가득합니다.

 

적용) 천국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우리는 천국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이 살아갑니다.

기껏해야 장례식이 되면 천국을 생각합니다.

 

경기도 용미리와 벽제 등의 납골당에 "고인에게 쓰는 편지"라는 노트를 걸어 놓고, 방문객들이 쓰고 간 글을 추려 모은 책이었습니다. 제목이 눈물의 편지입니다.

 

아내가 썼습니다.

"당신에 대한 미움 같은 건 이제는 다 없어졌어요.

당신 미워했던 것 하나님 앞에 모두 다 속죄하며 살아갈 것이예요.

당신이 떠나기 전 2개월, 내가 당신에게 했던 모진 말들 때문에

내 마음은 병이 들었어요.

그러나 나는 마음 속 깊이 당신을 사랑했어요."

천국에서 당신 볼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아이들만 다 결혼시키면 당신 곁으로 가고싶네요."

 

어느 남편이 썼습니다.

"여보, 요즘 들어 동우는 엄마를 더 찾는구려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라서 그런가 보오.

선미는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편인데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은

마음 속에 묻어두는 것 같아.

여보, 당신의 존재 의미가 이렇게 큰 줄은 미처 몰랐어."

 

딸이 썼습니다.

"아빠, 내가 정말로 아빠에게 하고싶은 말이 뭔줄 알아?

아빠를 정말 사랑한다는 말이예요.

그래서 더 미안해요.

한번도 이런말 하지 못하고 그렇게 보내드려서 너무 미안해요.

아빠, 가끔 집에 와. 한번만 아빠 품에 딱 안겨보고 싶어요."

 

사람들은 헤어진 후에야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천국을 땅겨서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픔이 남지 않도록 살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생각한다면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고 살아가겠습니까?

천국이 오늘의 삶에서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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