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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완성)

왕 노릇

by ysong 2021. 5. 15.

요한계시록 20:1~10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 말씀을 지루하지 않습니까?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근원을, 뿌리를, 근본적인 것을 살피기 때문입니다.

저도 많은 의심과 고민을 했는데요, 성경 말씀의 원리에 적용하면 딱 떨어집니다.

진진하게 말씀을 대하고, 그 말씀이 이끄시는 삶아보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이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내용은 3~4가지 정도입니다.

144000, 666에 대한 해석이고요, ,,대 심판 시리즈를 시간순서로 볼 것인가, 반복적 강화로 볼 것인가, 천년왕국을 실제적인 왕국으로 볼 것인가, 상징적인 의미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원래 천년왕국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천년이라는 단어가 6번 등장하는데요, 천년 동안, 천년이 차도록 표현하고 있는데, 학자들이 천년왕국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뿐입니다.

 

현재 천년왕국에 대한 학설을 정리하고, 그리스도와 왕 노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나누고자 합니다.

 

천년 동안 일어나는 확실한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3-천년 동안 사탄이 결박당하여 만국을 미혹하지 못합니다.

4~6-처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합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대표적인 3가지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 천년왕국 논쟁의 핵심은 현재 역사가 끝이나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기 전에 지상에서 천년왕국이라는 불리는 황금시대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 황금시대가 있다면 예수님의 재림 후에 있는냐,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느냐에 구분됩니다. 전천년설과 후천년설로 구분됩니다.

전천년설-예수님 재림 후 천년왕국이 시작됩니다.

19, 20장을 역사적 순서로 보는 견해입니다.

예수님 재림-지상에서 천년왕국-예수님과 더불어 왕 노릇하며 통치한다는 말씀을 본문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는 전천년설을 배웠습니다.

 

후천년설-천년이 차면 예수님이 재림하게 됩니다. 역사를 낙관적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기간의 숫자로 이해할 것인가? 상징으로 볼 것인가?

아마겟돈 전쟁(16:16)=곡과 마곡의 전쟁(8)을 같은 전쟁으로 볼 것인가? 다른 전쟁으로 볼 것인가?

전천년설과 무천년설로 구분됩니다. 무천년설=시작된 천년주의입니다.

제가 볼 때 무천년설이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과 어울립니다.

그리고 세상의 사건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려는 이단에도 빠지지 않는데 도움을 줍니다.

 

무천년설-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에서 재림까지의 천체기간을 천년왕국으로 봅니다.

천년을 상징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마치 십리도 못가서 발명 난다는 것과 표현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최근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많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신자와 할 때 신자와 불신자가 모두 부활합니다.

신자의 몸은 부활하여 영혼과 결합하여 천국의 즐거움에 영원토록 참여할 것입니다. 불신자는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과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천년의 시작-용이 잡히는 때, 3:15-발꿈치 상하게 함=십자가의 죽음, 예수님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치명타를 준다는 말씀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으로 승패가 끝장났습니다.

미세한 세력은 허락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탄은 교회를 미혹, 겁박합니다.

그러나 승패를 뒤집지 못합니다.

1~3절을 천년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1- 무저갱-아비소스, 악한 영들의 감옥입니다.

우주공간의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어떤 상태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임

2-용을 잡아서, 결박, 던져놓고, 닫아서, 인봉합니다.

더 이상은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 옛 뱀이라는 상징의 실체는 마귀이며 사탄입니다.

3-마지막 때에 잠깐 놓임을 받습니다.

임박한 마지막 때 세상을 미혹하고 유혹하고 겁박하여 타락시킵니다.

 

4~6-이 기간을 천년왕국으로 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예수님과 더불어 왕 노릇을 합니다.

왕 노릇은 순교를 당하거나 신앙을 지킨 영혼들은 예수님과 더불어 왕노릇하고 있으며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왕 같은 제사장으로 교회는 왕 노릇을 합니다.

7~10-예수님의 재림의 사건으로 봅니다.

19장의 어린양의 혼인잔치, 백마를 타고 오신 예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백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시는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완벽한 이론은 없습니다.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마치 세례와 침례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맥상으로 보면, 논리의 순서상으로 보면 전천년설이, 역사의 순서가 아닌 팝업창을 몇 개 띄운 것으로, 4차원적으로, 묵시문학으로 기술했다는 관점에서 보면 무천년설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와 기록되지 않은 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자가 있고,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불 못에 사는 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부활이란 영적인 부활입니다.

신자들이 거듭날 때의 중생의 사건으로 봅니다.

성도들에게만 참여합니다.

죽은 자가 새생명을 얻는 사건입니다.

둘째부활은 육체적인 부활입니다.

신자와 불신자 모두가 참여하여 최총심판을 받게 됩니다.

신자는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 불신자는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둘째 사망이 다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첫째 사망은 육체적인 죽음입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이 땅에 살다가 죽는 죽음을 말합니다.

둘째 사망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불신자에게만 해당됩니다. 영원힌 죽음입니다.

예루살렘서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열벌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적용) 사탄은 완전히 결박당했지만 여전히 남아서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왕 노릇은 세상의 왕과는 다릅니다.

힘과 군림과 폭력의 왕 노릇이 아닙니다.

사랑과 섬김의 왕 노릇입니다.

 

진정한 왕은 무엇을 잘해야 할까요?

용서를 잘하는 왕이 가장 존경을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용서하시는 일을 멈출까요?

왕으로 가장 많이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몇 번이나 용서합니까?

베드로가 생각한 용서의 한계는 7번입니다.

당시 랍비들의 생각한 용서의 한계는 3번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번까지라고 했습니다.

무한한 용서를 강조했습니다.

 

인생의 완성은 용서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용서하게 됩니다.

 

용서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최고의 용서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사는 성도의 왕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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