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6~21절
욥기를 보면 욥이 고난을 받게 됩니다.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바, 나이 어린 엘리후까지 욥을 설득합니다.
그들의 충고는 “당신이 죄를 범한 것이 있을 것이나까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언변은 설득력이 있고, 이치에 맞고, 틀린 말이 없습니다.
그른데 그들의 말에 욥이 회개했습니까? 욥은 정당성만 주장했을 뿐입니다.
욥이 언제 회개했습니까? 욥이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에 회개를 하게 됩니다.
설교자의 아무리 설득력이 있고, 논리가 뛰어나더라도 회개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설교자의 설교가 약간의 유익을 줄 수는 있지만 회개시키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가든, 예수님이 찾아오시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자아가 바위에 계란이 깨지듯이 깨져야 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조금 알게 되니까, 저도 은혜를 구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16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아들을 보낼 만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7~11절은 아들을 보내심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한지를 보여줍니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인간의 죄성으로 저질러지는 수많은 사건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16절은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성경을 줄이고 줄이면 나오는 엑기스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예수님 자신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토=예수님 안으로 믿는다, into=동작, 진행, 역동성
믿어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메일 매일 예수 안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을 때, 관계 안으로 계속 들어가야 합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지만 영은 날마다 새로워야 합니다.
거듭남의 비밀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요한복음은 ‘믿는 다’는 단어가 98번 나옵니다.
마태, 마가, 누가은 34번 나옵니다.
간혹 성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믿음의 내용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요한은 ‘믿는 다’는 단어를 명사로 쓰지 않고 동사로 쓰고 있습니다.
믿음은 영적 소유물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물처럼 흘러가는 것, 생명처럼 자라라는 것이 믿음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그 믿음이 필요하고, 지금은 다른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초신자의 믿음, 중간의 믿음, 죽음에 임박했을 때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땅에 속한 사람으로서 하늘에 속한 진리를 연습하며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연습하다가 그 나라로 부르심을 받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땅에 살면서 땅의 방식에 익숙하지만 하늘의 방식을 익히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는 사람이 되어,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이 서툴지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자꾸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내어주셨구나를 묵상하면서 십자가의 깊은 사랑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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