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22~30절
십자가의 방식과 사랑의 방식과 믿음의 방식은 같은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과 세례요한의 사역이 중첩된 시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갈등과 마찰과 오해의 시기가 있을 수 있다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8개월 정도 사역이 겹칩니다.
충분히 갈등할 수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갈등하지 않는 이유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제대로 본 영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유원절의 어린양으로 분명하고 확고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푼 곳은 애논입니다. 애논은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9키로로 떨어진 광야입니다. 그것에는 샘이 많습니다. 세례요한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푼 이유가 뭘까요?
물이 많기 때문에 세례를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으로 보면 물이 없으면 세례를 행할 수 없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 없어도 세례를 주니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물이 필요하면 물을 만들어서라도 세례를 주실 수 있는 창조주이십니다. 물이 없다면 성령의 세례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세례요한과 존재의 차이점입니다.
이 차이점에서 교훈하는 점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필요한 조건과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거나 하다가도 중단합니다. 인간적인 조건이 끊어지면 할 수 없는 것처럼 계산을 했는데, 없는 중에 물을 만드시는 주님을 찾아야겠구나 깨닫게 됩니다. 마치 음식점이 멀리 떨어져도 맛있으면 찾아오는 것처럼 교회에 주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과 나와 같이 계시면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과 요한의 제자 간에 있었던 정결예식에 관한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물로 세례를 주는 것에 관한 변론입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드리는 동물제사만을 예식으로 주장했습니다.
반면 세례요한은 동물이 아닌 물로 예식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질문하는 것이 “당신의 선생은 무슨 권위로 세례를 주냐”, “예수의 세례와 차이가 뭐냐”고 묻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예수님 쪽으로 갔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신의 스승과 예수의 관계는 어떤 관계냐?에 관한 논쟁입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옥에 갇힌 세례요한을 찾아왔습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에 대한 세례요한의 답변은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일이다.
우리를 떠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더 나아가 28절에서 세례요한은 너희들도 나에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너희들도 예수님을 증언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쟁자가 잘되면 어떤 마음이 편한가요?
상대방을 높여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됩니다.
마음과 감정은 불편하지 않습니까?
공평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경우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에 불편하고 속상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서로 질투, 경쟁하게 됩니다.
왜요? 예수님이 일이 일어지는 것을 기쁘하면서도 예수님의 일이 가능하면 나를 통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일이 다른 사람으로 크게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주인이 되어서 예수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섬기는 것입니다. 나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소원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이 주인이 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열망도 없습니다.
29~30절은 기쁨의 근원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음에 따라 기쁨과 쇠함이 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신부들이 신랑에게 가는것이 아쉬운 일인가?
기쁨이 충만하다는 이 고백은 어마어마한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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