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6~22절
16절-성전이 아버지집이란?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출 25:8절)이며, 하나님 통치의 보좌(출 29:42절)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백성들을 다스리시며 통치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와 용서, 은혜를 받는 곳(출 19:5~6절)이며, 우리 몸이 성전(고전 6:19~20절)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거하시기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청소를 해야 합니다.
17절- 제자들이 시편 69:8~9절을 기억한 말씀입니다.
채찍질 하는 모습을 보고 시편에 기록한 말씀이 완성된 것입니다.
시편 69:8절-내가는 다윗을 가리키며, 오실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9절-그 일이 여기서 실현되고 있구나.
성전을 사랑하는 열심이 목숨이 위험한 줄 알면서 행동에 옮기신 것입니다. 박해를 뛰어넘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18절-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
이런 일을 한 표적(이적)을 보여줘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보낸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여 봐라는 것입니다.
19절- 성전을 헐라 3일 안에 일으키는 표적을 보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건임을 알고 있습니다.
기존 성전제도를 허시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성전 제도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서 찬양하고 은혜를 받는 곳으로 회복시키겟다는 것입니다.
격식을 차려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 모세에게 준 율법인데, 이젠 새로운 방식으로 예배 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헐라는 것입니다.
‘3일 만에 일으키겠다’는 것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연결시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로운 성전을 일으키는 필요한 과정이 있는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새롭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겠다는 뜻입니다.
20절- 46년 동안 지어지고 있는데, 말도 안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건축 광인 헤롯대왕이 짓고 있는 성전으로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지어준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 건축하도록 헌금하도록 하고 정말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유대인-아직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교회를 나오지만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영적 맹인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대화가 비켜지나갑니다. 목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21절-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푸는 중요한 열쇄 중 하나입니다.
참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영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두 성전
- 보이는 성전은 죄를 용서하시고 편안으로 주는 줄 알지만 종교생활에 불과합니다.
- 보이지 않는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예수님 만나고, 교제하고, 말씀을 들어서 내 영이 새롭게 변화 될 때 종교생활로 시작해서 생명을 얻는 믿음까지 나아가는 참성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가서 참 성전 되신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된 예수님으로 들어간 사람은 사마리아 여인, 베데스다연못의 38년 환자 등등이 있습니다.
22절- 제자들도 나중에 총체적으로 이해했습니다.
한 박자 늦은 이해를 했습니다.
성취된 이후에야 아~~그 말씀이 이 말씀이었구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기다리셔서 까막눈 제자들을 새로운 공동체로 묶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사람 안에서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보통 이렇게 움직입니다.
성령이 들어와서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 - 말씀이 거하게 함(함께 더불어 삶, 집을 짓고 삼)-떠나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게 함-시험이 찾아오면 말씀이 움직이기 시작함-필요한 말씀이 생각남(말, 혈기, 시험 등등)-마음을 잡아주고, 기질상 넘어갈 수 없는 것을 넘어가도록 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전만 보는 종교생활 하는 자는 말씀을 들으면 '말씀이 좋구나'라고 반응은 하지만 삶에 적용이 안됩니다.
최근 말씀에 부딪쳐서 반응하고 돌이키고 회개하고, 용서하신 일이 있다면, 당신은 현재 은혜 생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간혹 이전에는 신앙생활 했지만 현재는 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음에 두꺼운 껍질이생겨서 말씀에 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항상 움직이고, 항상 주님께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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