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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하나님(완성)

사라의 죽음

by ysong 2021. 4. 19.

창세기 23:1~20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사건이 있은 후 20여년이 흐른 시점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의 일행은 그랄에서 헤브론으로 옮겨 자리를 잡고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라의 죽음으로 인해 장지를 마련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중요한 일을 할 때의 마음 상태와 대외적인 태도가 어떤가를, 사라가 장사 지낸 막벨라 굴의 의미를 깨닫고자 합니다.

 

127세에 돌아갔는데, 이삭이 37살 되었을 때입니다.

사라는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아이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기적적인 방법으로 자식을 얻었습니다.

후처와 갈등도 겪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많이 슬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매장할 곳이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묘는 동굴을 파서 가족묘를 만들었습니다.

평소에 막벨라 굴을 눈 여겨봤을 것입니다.

 

거래의 과정에서 드러난 아브라함의 신앙적인 인격

10절 성문에 들어가 앉았다는 것은 공식적인 행사가 이뤄지는 곳입니다.

7~15-그냥 가지시오, 그럴 수는 없어요, 가격을 말씀해 주세요, 얼마만 받겠소,,당시의 흥정 방식입니다. 공짜로 받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거래의 예법입니다.

12-아브라함의 겸손한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존경을 받고, 그의 세력에 대해서 다 인정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일어나서 그 사람들 앞에 절을 한 것입니다.

14~15-그냥 드리겠다고 합니다. 400세겔이라고 말하면서 거저 가라고 합니다.

16- 흥정을 하지 않고 400세겔을 줍니다.

다윗이 아르나 타작마당을 사는데 성전 터를 사기 위해 50세겔을 줍니다.

예레미야는 사촌의 아나돗 땅은 17세겔 삽니다.

오모리 왕이 사마리성을 구입하는데 6천 세겔을 줍니다.

계산하면 40세겔 정도의 가격이라고 합니다.

거저 받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덮어놓고 혜택을 입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값을 정당하게 주고 사는 태도를 보얐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팔게 하려고 수단을 쓰지 않았습니다.

진정을 가지고 가서 겸손히 청하였고, 겸손과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교훈을 배우게 되는 것은 안 믿는 사람에게 부담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항상 부드럽고 아름다워서 서로 호감이 가게 해야 합니다.

대화를 할 때에도 쓸 말들을 아주 겸손하게 쓰면서 예를 바로 갖추었습니다.

17~18-밭과 굴과 모든 나무까지 주었습니다.

19~20-가나안 땅이 아브라함의 땅이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이 공식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하나 이뤄짐을 봅니다.

 

아브라함의 정체성

나그네이며 이방인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작은 도성을 이룰 만한 충분한 세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땅을 소유하지 않고 나그네로 우거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정체성입니다.

가나안 땅은 자손들에게 약속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서 왕국을 건설하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인생관에 따라 이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분명히 하고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나그네의 생활로 느꼈던 것입니다.

 

나그네이지만 신용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신용이 있어야 땅을 파는 것입니다.

헷족속은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헷 족속 전체가 아브라함이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 좋다고 해야만 사고팔 수가 있습니다. 헷 족속 전체로부터 허락을 얻는 것입니다. 20절에서는 헷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6- 헷 족속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의 삶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랄에서도 하나님을 드러낸 삶을 살았고, 헤브론에서도 동일하게 생활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평소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라의 죽음의 의미

유일하게 여자의 죽은 나이를 밝힙니다.

한 개인의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역사의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단 한 평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미래에 주실 것이라고 믿었는데, 드디어 몇 평의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매장지를 얻었다는 것 이상으로 온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사인입니다.

 

마치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손바닥만 한 구름이 큰 비가 된 것과 같습니다.

사라의 죽음은 하나님의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끝아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죽음과 같은 고통이 있지만 약속을 믿고 사람에게는 또 다른 축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축복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절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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