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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구원은 영적인 소경이 눈을 뜨는 사건

by ysong 2021. 2. 8.

로마서 3:21~26절

약도는 바른 길, 편한 길을 알려줍니다.

잘못된 길로 갔을 때 다시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알려줍니다. 약도는 좋은 것입니다.

바로 율법은 약도입니다. 눈을 뜬 사람에게 유용한 것입니다. 율법은 짐이 아닙니다.

율법은 억지로 지켜야 하는 올무도 아닙니다. 율법은 특권입니다.

눈을 뜬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인류는 영적인 소경입니다. 모든 것이 차단된 상태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고, 그들이 만든 사회는 부패했고, 절망만이 있을 뿐인데, 영적인 소경이어서, 보이는 게 없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율법으로, 이방인은 양심의 법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영적인 소경이 눈을 뜨는 과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율법은 공로 행위의 상징입니다.

모든 종교는 구원을 추구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행위, 고행, 깨달음을 강조합니다.

적선(회교권에서는 부자들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 선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과 율법(종교적인 규칙인데 이 모든 것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다고 생각) 도구원의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8;10~14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집으로 돌아간 두 사람 중에 누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세리입니다.

 

율법, 수행(묵언수행, 면벽수행, 고행)을 통해 신과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내면을 비우거나, 외형적으로 쌓는 방법을 통해 신과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방법으로 안된다고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23절에 모두가 영적인 소경이어서, 영적으로 죽은 시체이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와는 다르게 하나님에게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상태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그 방법은, 길은~~~

1. 구약에서 예언한 역사성이 있는 것이지 지금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21)

2. 예수님이 성취하신 의입니다.(22-24절과 연결해야 함)

22-예수님이 성취하셨다는 것

믿음을 통해서, 믿는 자에게 적용된다는 것

차별이 없다는 것

 

다른 길이라는 것이 이런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24절에서 조금 더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취했는데 속량으로 성취했다는 것인데, 속량은 값을 지불하여 해방시킨다는 뜻입니다. 죄의 값을, 소경의 값을 예수님 자신이 지불하셨습니다. 그 값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누구에게요? 하나님에게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값없이 은혜를 주신 분입니다.

에덴동산에 추방되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

아브라함과 언약에서 쪼갠 고깃사이로 혼자 지나가시는 하나님

노아와 언약을 맺으면서 무지개를 보이신 하나님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이 실제입니다.

믿는 자에게 값없이 은혜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24절은 22절을 한번더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림(22-24절과 연결해서 읽음)

1) 차별이 없음, 구약시대에는 차별이 있음, 하지만 많은 숫자가 구원받지 못함, 하박국이 선인이 악인에게 약탈당하는 것이 마땅하지 안다고 하나님께 질문, 하나님이 대답은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대답합니다. 하박국은 나도 의인이 아닌가는 생각에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만큼 의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취한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난한 자나 부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새 언약을 시작하셨습니다.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2) 은혜입니다

은혜는 선물입니다. 너무나 값진 갓이어서 댓가로 살 수 없습니다. 값없이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줍니다. 전가된 의입니다.

왜 예수님인가?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살면서 제일 기분 좋았던 순간은 언제였나? 성경이 말하는 최고의 순간은 죄인이 예수 만나 신자되는 순간입니다. 죽었었는데 생명으로, 출생의 기쁨, 다시 태어남, 해방과 자유, 억압에서 자유로, 어둠에서 빛으로, 소경에서 정성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입니다. 타락으로 파괴도고 뒤틀린, 헝클어진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됩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이 예수님의 속량으로, 화목제물로 성취되었습니다.

4. 하나님이 고민하셔서 선택한 방법(25-26)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의는 공의와 의입니다. 공의는 심판과 관계된 개념(,), 의는 올바름과 관계된 개념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봐 주면 하나님의 공의(공평하고 정의로움에 위배)에 어긋나게 됩니다.

 

하나님 자신도 의로움이 증명되고, 죄인인 우리도 의로운 걸로 인정받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공의와 사랑의 완성입니다. 공의-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냈고, 사랑-믿는 자를 의롭게 하심을 성취한 사건입니다.

 

본문은 의인이 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칭의의 근원은 하나님의 은혜, 방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적용은 십자가의 보혈 공로를 믿는 믿음을 통해 값없이 주어졌습니다.

 

죄사함의 효과는? 십자가 죽음의 효력은? 하루, 한달, 일년? 아니 한번으로 영원히, 한 영원한 제사입니다. 성경은 온 몸이 깨끗해졌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당신은 죄인이었습니다. 2.지금 당신은 죄인이 아닙니다. 3.당신은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당신은 성도입니다. 4.연약함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5.당신은 용서의 은혜를 압니다. 6.당신은 은혜를 악용하여 더 많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7.당신이 용서를 이용해 주님을 이용해 먹는다면 당신은 아직 주님을 모르는 잡니다.

 

21절부터 26절은 정말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탄식해야 하고, 감격해야 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대목입니다.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열렸습니다. 그 전환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은 이처럼 엄청나며 천지가 개벽하는 사건이고,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린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구원이 문이 활짝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숫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이후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지만 여전히 구원으로 가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값없이 받은 은혜의 길로 가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왕의 초대에 거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각종 핑계를 대면서 잔치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구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모른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전1:18~19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내일이 없는 사람은 오늘만 삽니다. 막산다. 게임도 하고, 놀고, 먹고 삽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삽니다. 그러나 내일은 있습니다. 내일이 있는 사람은 준비합니다. 시험공부를 하는 것은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최선을 사는 것은 내일을 위해서입니다. 인생은 오늘과 내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삶을 이별하는 사람에게도 내일이 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내일의 완성입니다.

 

의로움이, 십자가의 사건이 복음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의인이 된다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구원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복음에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 감격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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