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17~23
복음(기쁜소식)이 왜 필요한가?
복음이 복음인 까닭이 있어야 합니다.
1:17~18절에서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복음인 까닭은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고, 심판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18~32절에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를 봤습니다.
인류역사에 보여준 죽음과 살인,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사회를 봐라, 하나님이 내버려두신 상태가 만들어낸 인류역사를 봐라, 그곳에서 의인을 찾을 수 있는지를 봐라,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신을 만들어 절하고 섬기는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는 성적인 타락, 도덕적인 타락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류는 죄인이고, 그들은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대상이다라고 마침표를 찍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는 무능하고, 전적으로 부패해서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죄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사망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역사 속에 펼쳐져 있습니다. 진지하게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그래도 선하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 남을 판단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라며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을 판단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죄가 없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의인은 13절의 말씀인데, 여기에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2:1~16절에 등장하는 인간의 유형도 죄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을 판단하면서 스스로 의인으로 착각하면서 나 정도는 그래도 선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도 진노의 대상이기에 구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복음인 까닭은 자신이 치료가 절실한 환자라는 사실, 사망에 이르는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부패했고, 무능력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기에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 진노에서, 심판에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복음에 들어 있습니다.
그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셔서 이루셔서 그 길을 내셨습니다.
죄의 처절함, 죄가 만들어 내는 사망의 처절함을 고스란히 안고 죽으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죄가 없으신 분인 예수님이 탕감이 불가능한 인간의 죄의 빚을 갚고, 택하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사건입니다.
구원은 세탁이고, 회개는 빨래입니다.
검은 옷을 예수님의 보혈로 세탁을 했는데 하얀옷이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매주 더러워진 옷을 빨래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죄인인 세 번째 인간유형입니다.
2:17~3:8절에 기록된 인간유형입니다. 바로 유대인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유대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7~80년 간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뒤부터 유대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말은 칭찬과 찬송이라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특별히 부르신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민족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런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받은 유대인은 선민의식이 강합니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이라는 자긍심이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우월감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은 지옥의 때감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특별하게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셨고, 할례를 행하게 했고,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각종 절기들을 주셨습니다.
이런 특혜를 받은 유대인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유대인도 심판의 대상이고, 진노의 대상이며,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왜 유대인도 진노의 대상이 되었는가?
17~19절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선한 것을 분간하고,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설명되는 사람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죄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의인처럼 보임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그들에게 주워진 특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8절에서 그들을 표면적 유대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인 종교인입니다.
유대인은 사명을 잊은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반사되어 어두운 곳을 비쳐야 합니다.
거울을 반사되는 사람에게 비치면 그는 눈이 부셔서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시람의 눈에 비쳤습니다. 빛을 보지 못하도록 막는 일만 했습니다.
유대인은 교만했습니다.
1)실로사건-언약궤를 빼앗기는 사건
이스라엘백성과 블레셋이 전쟁
1차 패해-4천명 사망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가지고 옴(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2차 패해-3만명, 언약궤를 빼앗기고 두 제사장이 죽음
언약궤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 언약궤에 임재하신 하나님도 자신들의 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했습니다.
2) 예레미야 9:23~24절은 유대인의 긍지, 특권의식, 독선을 꼬집고 있습니다.
3) 성전청소사건(요 2:13~22절)
성전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 죄의 소굴로 만들고 있으면서 제사만 드리는 성전만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냐, 알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정답을 알고 있다고, 성경적인 답변을 한다고 해서 예외인가? 아닙니다.
후배목사가 일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설교 잘하는 목사는 많은데,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목사가 없다고 하다라고요.
성경적인 답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목사들이 많다는 겁니다.
성경 지식을 전한다고 의인이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바리새인들도 성경을 가르쳤고, 이단들도 성경을 가르쳤지만 죄인입니다.
말씀에 따라 살아가면서 잘못되었을 때 회개하는 것이 바로 의인입니다.
유대인은 겉과 속이 다른 죄를 범했습니다.(20~24절)
그들의 죄를 한마디로 말하면 종교적인 위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선은 겉으로만 착한 척하고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입으로는 거룩한 말을 늘어놓지만 행동은 거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쁜 줄 알면서 뻔히 알면서 죄를 범하는 죄,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목사님들 때문에 하나님이 얼마나 욕을 먹는지 모릅니다.
유대인은 종교적인 형식주의 빠진 죄를 범했습니다.(25~29절)
1) 예배만능주의 빠진 이들, 몸은 있는데 영혼은 다른 곳에 가 있는 이들
2) 봉사제일주의-봉사를 강요하는 교회, 마치 구원의 척도로 사용하고 있음
3) 신비주의-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 것처럼 착각에 빠지도록 함.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진노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요?
1) 빌립보서 2:12절을 볼까요?
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까? 2:5~11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정신, 복종하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2) 마음의 할례를 받자
할례는 유대인이라는 표시이고, 선민이라는 특권의식을 심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가치관의 변화=세계관의 변화=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과 동행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섬기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라.
성도다운 인격과 삶이 없이 그리스도의 신자 됨과 교회의 직분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직분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된 인격과 삶임을 깨닫고 선을 행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가르침의 성경적 근거를 들어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10:16) 하신 말씀과 예레미야 선지자로 말씀하신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렘 4:4절)고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 앞에서 강퍅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지 말라 경고합니다.
그 이유는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형식적 신앙생활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인류는 스스로 진노의 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스스로 죄인이 아니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죄인이 아니가 때문에 인류를 죄인으로 단정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고, 왜 죽었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로운 청년의 죽음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속아서 살고 있습니다. 하와가 속았고, 모든 인류가 속았습니다. 맴에게 속은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선을 분별하려고 했습니다. 인류는 지금도 속고 있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속이고 있습니다. 속아서 착각에 빠졌습니다. 죄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1장에서 3장까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악된 존재임을 폭로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유대인들이나, 택하지 않으신 이방인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죄 가운데서 먹고 마시는 존재들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로마서3장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원수지간이 됩니다.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이 원수지간이었으니, 어찌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기쁜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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