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27~28절
28절은 기독교교리에 있어서 구원의 중요한 핵심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한문으로 이신칭의라고 부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이 사실이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이-으로써의 뜻입니다(부사). 신-믿음이고, 칭-부르다, 일컫는다, 의-옳은 의, 의자는 양양자와 나아자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내 위에 양이 있는 형태입니다. 제사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어떤 사실을 믿어야 하느냐?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여자에게 나시고(인간으로 오셨고) 율법아래(율법을 다지키시고) 속량(인류의 죄값을 그의 피로 갚으시고), 아들명문(자녀삼아 주신 것을 믿어지는 자들에게는 이미 하늘법정에서 하나님이 “이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최종판결을 내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살아나서 보니까, 의인이 되어서 보니까 “내가 살기까지 이런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고백하는 겁니다. 산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성경은 믿음 때문에 구원얻는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믿음 때문에 구원받는다면 “하나님 내 믿음 여기 있나이다”하고 자랑거리로 들고 나가려고 합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믿음에 의해서,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말씀합니다.
27절에 믿음의 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법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행위의 법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가?
자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단지 자기가 죄인임을 자각하는 사람입니다.
죄인의 위치에 서서 예수님 앞에 부르짖고 기대해야 합니다.
믿음의 법으로 살기 위해서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명을 받기 위해서 그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죄인의 자리입니다. 마치 의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병든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가복음 2:17 “성한 사람이게는 의원이 소용 업고 병든 자라야 의원이 소용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죄인 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회개라는 위치에 서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누가 믿음의 법으로 사는 사람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눅 18;10~14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교회에 나오는데, 세리의 마음으로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나오는 자가 얼마나 될까요?
목사는 설교하기 위해 나오고, 장로는 기도하기 위해 나오고, 권사와 집사는 봉사하기 위해 나오고, 학생들은 친구 만나러 나오고, 성공한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기 나오고, 뭔가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이 정도면 잘 했으면 선물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죄인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합니다. 구원의 감격 속에서 오늘도 주님 앞으로 나옵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세리와 같은 심정으로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이 집으로 돌아간 두 사람 중에 누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세리입니다.
구약에서 믿음의 법으로 사는 사람(4:1~8절)이 있습니다.
1) 순종한 인생을 산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력이 좋아서, 잘생겨서, 말씀을 잘 들어서, 믿음 있는 신앙의 부모 덕분에 의롭게 되지 않았습니다.
창 12: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아멘으로 대답했습니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음의 법으로 사는 사람은 아멘과 순종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갈마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가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법으로 사는 사람은 회개하는 사람인데 다윗입니다.
시편 32편 1~11
나는 1~2절처럼 복 있는 자인데, 3~4절처럼 고통 속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5절처럼 죄악을 사하기를 기도합니다. 경건한 자의 기도입니다.
홍수도 피해가고-6절
하나님은 은신처, 보호자, 구원자이고--7절
갈 길을 보이시고, 훈련시키는 분--8절
그렇니까 고집 부리지 말라--9절
즐거워하라--11절
죄, 허물을 사함받고 가리움을 받는 자입니다. 구원은 세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세탁하는 겁니다. 회개는 빨래입니다. 예배를 통해 회개하는 겁니다. 회개하는 자가 은혜입니다.
반면 행위의 법으로 사는 사람은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규칙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름의 순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행위로 살다가 실망해서 낙심하게 됩니다. 낙심자도 행위의 법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문제로, 목회자의 문제로, 성도들끼리 다툼으로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을 가리켜 낙심자라고 말합니다.
낙심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교회를 떠났지만, 늘 교회를 다가지 않는 것에 대해 꺼림직한 마음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하나님께 혼날텐데, 빨리 신앙을 회복해야겠는데, 걱정과 근심 속에 살아가는 낙심자입니다. 이런 분들은 시간이 문제이지 다시 교회로 돌아옵니다. 영적으로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문제, 개인의 문제로, 상대방의 문제로 교회를 떠났는데, 잘 살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사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잠시 낙심되기는 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고난이 없는 것은 고난이 찾아오기 전에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유혹이 1단계이고 고난은 2단계입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먼저 받았습니다. 유혹을 이기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고난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사단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을 확률아 높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고난 중에 즐거워하는 겁니다. 내가 바른 길을, 거룩한 길, 의의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도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의 삶에는 반드시 고난이라는 것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법으로 산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구원받아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통치자입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구원은 의, 진리, 거룩함을 회복합니다.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의 형상은 광의의 형상-도덕성, 사회성, 창조성// 협의의 형상 -의, 진리, 거룩인데 타락 후 기능하지 못함-회복됨, 정상이 됨, 교제할 수 있게 됨,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사랑하게 되는 사람입니다.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예수님과 동행이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은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느 누구로부터 대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서운하기도 속상하기도 합니다. 그런 그때 예수님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디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대접받기를 원하거든 먼저 대접하라”는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마음을 새로 가담듭습니다.
어떤 분은 생생정보통에서 얻는 지식을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정보와 동행하는 분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하면 그는 그 사람과 동행하는 겁니다.
말씀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에는 지적인요소, 정적인요소, 의지적요소가 있습니다. 지적인 요소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정적인 요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의지적인 요소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생각해봐요. 예수님은 창조에 참여했고, 창세전부터 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우리들은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창조주자 피조물을 사랑해서 친히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믿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진짜이고 믿어지는 분들은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전율을 느끼는 사실인가를, 이 엄청난 사실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깊고 위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여자의 몸으로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들은 만달란트의 빚진자처럼 살아가지 않습니까? 어느 왕에게는 만달란트 빚진자였는데,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모든 빛을 탕감해 줬습니다. 1조원에 상당하는 빛을 탕감받은 자인데, 백데리온을 빛진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아닙니까? 1천만원의 빛을 받으려고 멱살을 잡고 때리고 겁주는 자는 아닙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생명을 얻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믿음으로 믿어서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구원을 나는 값없이 받았습니다. 구원의 길은 바로 관계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 아버지에게 찾아와서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습니다. 그 자격을 하찮게 여기지 마시고,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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