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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분열의 원인과 결과(3)

by ysong 2020. 12. 17.

여로보암의 죄=여로보암의 길 
여로보암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로몬이 부역을 감독하는 사람으로 세웠습니다. 어느날 아히야선지자가 여로보암을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찢어 10조각을 줬습니다.

행동예언을 통해 10지파를 맡기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조건을 덧붙였습니다.

11:38~39절입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이스라엘을 올바르게 세우기 위한 회초리로 삼았던 겁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어리석은 행동을 했습니다.

11:40절입니다. 둘밖에 모르는 사실인데 솔로몬이 알아챘다는 겁니다.

그러하다면 여로보암이 왕이 되기 위해 인간적인 노력을 했다고 봅니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애굽으로 정치적인 망명을 떠납니다. 
어느날 백성들이 르호보암을 왕을 세우기 위해 세겜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 여로보암을 데리고 옵니다. 이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시간입니다.

르호보암이 자신들의 요구를 듣지 않자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데 어느 누구도 이탈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 북이스라엘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사용하기 위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최대한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욕심은 죄를 낳습니다. 
이런 욕심과 불안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를 낳습니다. 그의 죄에 대해서는 12:26~3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6절에 ‘스스로 이르기를’이라는 말에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적인 계획을 수행합니다. 
1) 12:28-금송아지를 제작했습니다. 이것을 남쪽인 벧엘과 북쪽인 단에 두고 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금송아지가 하나님인데 출애굽을 이룬 신이라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신데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애굽의 신인 아피스(금송아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이스라엘의 신과 교묘하게 혼합해서 만들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제전은 뛰고 놀고 먹고 마시고 하는 종교행사입니다. 이에 대해 백성들이 아무 반항도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금송아지가 복을 주는 신이라고 하니까 무지한 백성들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2:30절입니다. 
2) 제사장을 아무나 인명했습니다. 12:31절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백성들을 거룩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룩하지 못한 사람을 세워서 제사를 드리도록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3) 12:32~33절입니다. 절기를 지키기다 보면 우리는 원래 하나이고 한 형제인데 왜 갈라질 필요가 있는 않는가를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데 여로보암은 그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절기를 비슷하게, 자기 마음대로 바꿨습니다. 원래는 7월 15일이 절기인데 8월15일로 비슷하게 바꿉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은 애굽의 종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절기조차 이익을 위해 악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북이스라엘은 19명의 왕이 200여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9번이나 왕조가 바뀌는 혼란을 거듭했습니다. 신하가 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역성혁명이 이어졌습니다. 그들 모두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4) 여로보암의 가장 큰 죄는 회개의 기회를 놓쳤다는 겁니다. 13장의 이야기입니다. 유다출신인 하나님의 사람이 북이스라엘에 왔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있는 여로보암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언을 합니다. 다윗의 자손 중에 요시여이라는 사람이 태어나서 너를 위해 분향하는 제사장을 태워서 제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예언은 305년 후에 성취됩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통해 성취됩니다. 
이 말을 들은 여로보암이 손을 뻗어서 ‘저 놈 잡아라’고 외치는데 손아 굳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보암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서 손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도록 부탁을 합니다. 
여로보암이 두 번째 신앙적인 체험을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아히야선지의 말이 성취된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어야 하지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달려와야 합니다. 보통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이름없는 선지자에게 고맙다고 선물을 주겠다는 겁니다. 이런 대접을 요구받았을 때 보여준 선지자의 태도입니다. 13:8~9절입니다. 이런 선지자가 벧엘에 있는 늙은 선지자의 시험에 넘어가 결국 죽게 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목사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만인제사장으로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준다고 봅니다. 
여로보암은 또다시 찾아온 회개의 기회를 상실합니다. 14장의 내용입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중에 아비야라는 아들이 병들었습니다. 곧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로보암이 아내를 시켜 아히야선지자를 찾아가도록 합니다. 혹시 알아보면 안되니까 평범한 여인으로 변장을 해서 찾아가도록 했습니다. 이때 아히야선지자는 늙고 눈은 멀었습니다. 
하나님이 실황을 중계하듯 알려줍니다. 14:6~12절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여러번의 기회를 묵살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회초리로 사용했는데,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사단의 노릇을 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도록 만든 죄악을 범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열왕기를 읽으면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는 ‘여로보암 길’입니다. 모든 왕들을, 백성들을 죄악의 길로 걷도록 만든 사람이 되었습니다. 
4. 선지자의 역할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모든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처참합니다. 이 나라가 모든 열방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나라의 샘플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세상의 것만 쫓아간 결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하도록 시킵니다. 
남북이 갈라지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아히야선지자를 비롯하여 두 명의 무명선지자를 보내십니다. 비록 징계를 받아 갈라서게 되었지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하지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형식과 화려한 외형에 취해서 성전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성전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열왕기를 통해 알아야 합니다. 그 열왕의 이야기가 지금도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 사회의 한 사람으로 두시고,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신 이유를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숙해 가는 신자의 당연한 생활 태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여로보암과 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주신 많은 확실한 은혜의 증거가 있지만 잊어버립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보장해 주신 것이다.”하는 것을 잊어버리고서 무슨 일이 있으면 다시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 하는 믿음에서 떠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서 떠나, 자기 계획으로 자기를 방어하고 보존하려는 여로보암과 같은 행동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로보암의 같은 심리를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방법대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것들을 제 마음대로 변경해 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으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말씀을 처음 지켰으면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무명의 선지자가 처음에는 북이스라엘에서는 물도 떡도 먹지 않겠다고 했지만 중간 시험에 넘어가는 것을 봅니다. 끝까지 지키지 못해 넘어지는 모습입니다. 중간에 말씀을 바꾸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13장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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