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6~17절
우리들의 입장에서 본 믿음이란?
왜 나에게 주려는 거지? 이상한 분은 아닌가? 무슨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가? 나를 이용하기 위해 미끼가 아닌가?
이런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의심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선물을 주시는 분을 믿을 수 있는가? 선물을 주시는 분은 어떤 분인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 것은 의심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 채워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의심이 점점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의심이 커졌나, 믿음이 커졌나? 요만큼 믿음이 생겼네, 그것이 겨자씨의 믿음이다.
아브라함도 갈마를 알지 못하고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작은 믿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런저런 사건과 시련을 겪으면서 점점 의심에서 이해로 나아갔습니다.
로마서 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는데, 들음은 이해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억지 믿음만 나오게 됩니다. 믿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바른 신앙의 첩경이다.
신적인 존재가 인간과 교제를 할 때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요?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천사가 나타나고 교제를 한다면 훨씬 영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로 했고, 말을 기록하여 읽는 영적이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지만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합니다.
인생은 의심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채워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신뢰하는 과정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을 간직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믿음은 신뢰관계입니다.
찬송가 28장 2절 “주의 크신 도움 받아 이 때까지 왔으니 이와 같이 천국에도 이르기를 바라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에 빠진 우리를 예수 구원하시려고 보혈 흘려 주셨네”입니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이 앞으로 인생도 지켜주신다는 신뢰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이가 돈이 필요할 때 그의 부모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그의 부모가 평소에 자기의 생활을 늘 지지하고 사랑하며 무엇을 줄 능력이 있는 분으로 아는 까닭입니다.
“아버지 돈 만원이 필요하니, 나에게 돈 만원을 주십시오?” 할 때 아버지가 “그래 알았어, 지금 바쁘니까 이것을 끝내고 조금 있다가 줄게 알았지?” 그 아이는 돈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 안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일 그 아이가 평소에 아버지를 신회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믿으며 자기가 구할 때마다 늘 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자기가 갖고 있는 과거의 일을 통해 아버지는 나중에 꼭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주실는지 안 주실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가 봐야 괜히 괴롭기만 하고 또 나중에 오라고 하셨지만 가 봐야 필요없어 필요 없어 하고 안간다면 받지 못하는 겁니다. 믿지 않으니까 그러한 것입니다.
믿음은 투기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13: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발견하고, 숨겨진 것인데 발견하고 기뻐합니다. 다음은 결단합니다. 모든 재산을 다 팔았습니다. 이건 투기가 아닙니다. 확신입니다. 믿음은 확신이지 투기가 아닙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구역 성경에서 [에무나]의 진의는 진실과 성실과 정직과 충성이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른 헬라어로 번역할 때에 [피스티스]로 번역하였고 피스티스 역시 신뢰와 함께 진실과 성실 충성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었습니다.
영어로 번역할 때로 언제나 faith, faithfulness 로 번역하였고, 이 말도 역시 신뢰와 진실 성실 정직 충성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믿음, 믿는다 등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이는 추상 명사형과 동사로 번역하면 believe나 belief 와 같은 의미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언어라는 것이 참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해진 믿음이란 말 속에는 진실과 성실과 정직과 충성과 같은 의미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자라나야 합니다.
지적인 요소-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합니다.
정적인 요소-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의지적 요소-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알고, 사랑하고, 순종해서 신앙이 자라나야 합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그러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 말은 당시에 예루살렘의 포위하고 사람들을 잡아가는 바벨론 사람들을 두려워 하던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바벨론 사람들의 마음은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머지 않아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나 반대로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진정으로 의인이 있다면 그 의인은 틀림없이 믿음(에무나)로 말마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만약 바벨론이 멸망하는 이유가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여 멸망당하는 것이라면 멸망하지 않을 사람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정직한 의인은 결코 멸하지 않고 살리라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좌절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평하지 않고, 고난 중에 당당하고, 감옥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사막에서, 도망자의 신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가난했는데 범사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목에 칼로 들어옵니다.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기에 충성하고, 하나님과 관계가 긴밀하기에 어떤 위험에서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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