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15절
오병이어 기적 이후 예수님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4:22~23절에서는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슈퍼스타이신 예수님이 홀로 다시 산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날의 스텝과 같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워 가버나움으로 가도록 합니다.
떡과 물고기를 먹고 배부른 백성들을 해산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라면?
떠나지 말라, 2부에는 더 좋은 것을 주겠다며 붙잡아 두려고 할 것입니다.
텅 빈 들판이 주는 허무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성공 이후 또 다른 성공에 꿈을 꿉니다.
백성들이 임금 삼으려는 것을 은근히 바라게 됩니다.
대형교회가 성도들을 잡아두기 위해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련 없이 제자와 백성들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열광하는 백성들을 뒤로 하고 산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자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동안 예수님은 백성들을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한 복판에 오셔서-제자들을 택하여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시고-백성들의 삶의 한 복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사마리아 여인의 아픔에, 38년 된 병자의 고통에, 예루살렘에 갈 수 없는 갈릴리 백성에 머물러 있었음)-그러나 백성들이 임금을 삼으려고 하자 예수님은 백성들 뒤로 물러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어느 것에도 매여 있지 않으신 분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것에 묶여 있습니다.(사람, 경제, 자녀 등등)
자녀들에게 매이면서 사랑하니까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하면서 속상해 합니다.
교회에도 매여서 사랑하니까 조금만한 것이 섭섭해 합니다.
우리들도 자유롭게 주님 섬기며 살다가 바람처럼 하나님 앞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영혼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묶이지 않은 자유는 결심한다고 얻게 되는 것이 아니기에 늘 실패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는 어디서 왔을까요?
이 예수님의 자유는 요한복음이 보여주고 싶은 또 하나의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5:16~30절에서 빈복해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일하지 않는다. 하나님과 나는 하나다.(26절) 내 영이 하나님과 함께 주파수가 맞춰져 있다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리적인 결합이 아닌 화학적인 결합의 하나 됨입니다. 예수님의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사야 49:1절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로마서 8:30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습니다.
묶이는 것은 영의 문제입니다.
주님의 임재로 가득하면,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매이지 않게 됩니다.
죄로 인해, 세상이 심어준 염려와 근심으로 인해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되는데,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산으로 가신 것처럼 주님의 임재 안으로 가야 합니다.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들여다봐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잠잠히 머물러 있으면 묶인 것에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마음이 생김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있으면 하나님이 챙겨주시겠지,
하나님이 아버지인데 자녀인 나를 가만히 눠 두지 않지,
기독교인이 집착하는 이유는 하나님 이용해서 욕망을 이루려는 것인 경우입니다.
임금으로 모시기 전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셔야 했는데, 백성들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이용해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떡과 물고기를 나눠주면서 자신들이 먹이는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나누 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게 교만해졌습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서둘러 배를 때워 보내신 이유는 자신들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 기적 가운데 기적을 보여주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산으로 가신 예수님은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솎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대면의 시간을 갖고,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을 재확인 하고, 죄와 사망, 사탄에서 구원하려고 왔으며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재확인함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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