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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믿음의 경로

by ysong 2022. 5. 25.

로마서 10:10~17

인터넷기사에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70기도 빙자 1억 가로채라는 기사가 봤습니다.

기사내용은 경기도의 한 기도원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사람'이라고 소문을 퍼뜨린 다음 대신 기도를 해주겠다며 A씨에게 접근해 111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기소된 이모(73·)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지난 20125A씨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신다. 몸이 약한 당신의 아들을 위해 기도했으니 헌금을 보내 달라. 헌금 액수는 하나님이 정해주셨다"라며 570만원을 송금받는 등 20134월까지 모두 6회에 걸쳐 돈을 뜯어낸 혐의로 기소됐다.”는 내용입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예언 기도를 한다는 분이나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귀가 솔깃하지 않습니까? 우리들도 강도는 다르지만 환상을 본다, 꿈을 꾼다, 음성을 직접 듣는다고 말하는 분들을 만나보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을 다르게 보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이 점점 발전하다 보면 누구나 A씨처럼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1억원을 뜯기 A씨와 같이 자식의 질병을 위해 갈급한 분을 기도원에서 만났다고 가정해 봐요. “제가 그 분에게 말씀을 읽고, 말씀을 통해 깨닫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자식의 병을 고쳐주시면 고쳐주시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안고쳐주면 안고쳐주는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사실을 말씀을 통해 깨닫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면 그분은 아마도 저 목사는 영성도 없고, 믿음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영적인 체험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들은 가슴에 와 닿는 종교를 원합니다, 머리보다 가슴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자칫하면 미혹을 받아 영혼과 육체를 망가뜨리게 됩니다.

 

남양주성실교회는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경로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고,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아가길 바립니다.

믿음의 경로에 대해 9,10,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9절에는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10절에서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 하는 것을, 17절에는 듣는 것을 각각 강조하고 있습니다.

 

9, 10, 17절에 흩어진 말씀을 종합하여 정리해 보면, 들어서 이해하고-마음으로 믿고-입으로 시인하는 순서로 요약됩니다. 즉 신체로 표현하면 귀-마음-입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경로

첫 번째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17절입니다. 듣는 다는 것은 understand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기독교는 논리적인 설명을 듣고 이해하여 믿는 종교입니다. 반면 불교는 수도를 하다가 비논리적인 것을 깨닫는 종교입니다. 석가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일로 염화미소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석가가 연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자, 제자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가섭만은 빙그레 웃었다. 이에 스승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포하였다.” 이심전심으로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쳤는데, 간혹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백성들을 다 보낸 후 따로 한적한 곳에서, 또는 집에서 다시 설명해 주는 모습을 봅니다. 또 제자들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두 군데를 볼까요. 마태복음 13:36, 요한복음 6:59, 66, 68.

 

예수님은 축귀, 치유, 오병이어 기적의 본질은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가르치기 위한 수단에 불과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건 후에 분명히 예수님은 이유와 목적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진리를 아는 경로를 신비적인 방법, 비논리적인 방법으로 깨닫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로 전하는 바울의 전도하는 방식을 미련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평범하게 말씀 전파를 통해 진리가 선포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 동안 전도하면서 두란노서원에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일 5시간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2년으로 계산하면 매주 시간씩 57년 동안 가르치는 시간과 맘먹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셔야 했는가를 이해하게 되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understand에서 시작됩니다. 논리적인 설명을 듣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출발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지적인 요소입니다.

 

들음은 하나님의 명확한 구원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그의 주되심과 부활에 관한 메시지입니다(8.9).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은 현대과학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이 방법으로 여러분들이 말씀을 읽고 이해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두 번째 경로는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10절 상반절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루고, 의는 구원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입니다. 마음에서 우리나오는 뜨거운 감정으로 믿는 것입니다. 감정이 없이 어떻게 사랑하고 감정이 없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귀로 들어서 이해한 말씀을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사람의 마음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네가지 땅에 떨어지는 씨를 비유를 통해 천국의 비밀을 마태복음 1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옥토는 복음을 듣는 마음을 비유됩니다. 이어지는 가라지 비유에도 원수가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13:25)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마귀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머리에 넣은 것이 아니라 마음에 넣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선생되신 예수님을 미워하도록, 예수님께 분노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을 읽어보면 마음이라는 단어가 190정도 나옵니다.

사랑하는 감정이 없는데 어떻게 사귑니까? 미움의 감정이 있는데 입으로 사랑한다고 하면 그것은 가식입니다. 마음속에 의심이 있으면 온전하게 믿을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믿음 다는 것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감정으로 믿는 것입니다. 무엇을 마음으로 믿어야 됩니까? 9절입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마음에서 그래 맞아라고 하면서 믿는 것이 바로 마음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열왕기상 8:61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 마음이 한결같기 어렵습니다.

염소와 양의 비유를 아실 겁니다. 양은 오른쪽에 있는 의인을 상징하고 염소는 심판을 받을 악인을 상징합니다. 양은 늘 양이고, 염소는 늘 염소입니다.양이 염소가 되었다가 양으로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양-염소-이리-늑대-양을 오가면서 변화무쌍합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마뀌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시시때때로 지켜주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은혜가 있길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결단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안 됩니다. 공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간혹 보면 마음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고백하라고 하면 입을 열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로마서를 읽고 있는 사람들은 10절의 말씀에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로마는 도시의 주민들을 광장이나 시장으로 모아들이곤 했습니다. 그들은 황제의 흉상이나 동상을 만들어 그 앞에 작은 불을 피워 놓고는 주민들에게 그 불 위에 약간의 향을 뿌리면서 카이사는 주님이시다라는 두 단어를 외치도록 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는 우리는 카이사를 주님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시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사자굴에 던져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얼마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엔도 슈사쿠, 침묵,,“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라는 문제를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인물들의 내면 묘사를 통해 조용하지만 가슴 뜨겁게 그리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가서 일하라고 하니까 가겠다고 말하고 가지 아니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똑같이 말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싫다고 했지만 후에 뉘우치고 갔습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도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바뀔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들은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에 얼마나 고민하는 환경입니까? 기독교인이라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환경입니까? 그러나 끝임없이 작은 일에도 입으로 시인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기독교인데, 내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인데,,,”

 

들음은 이해하는 것으로 지적인 요소이고,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의지를 갖고 외부에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14, 15절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전하는 파발군의 발을 의미합니다. 파발군의 발은 먼지가 뒤덮이고, 냄새가 납니다. 고생스러운 발이지만 그가 전한 소식을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어려움을 감내해야 듣고-마음으로 믿고-입으로 시인하는 성도가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어느 평범한 젊은 새댁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어느 믿음의 뿌리가 깊은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집은 소문난 기독교가문이었습니다. 남편이 그녀를 시부모 앞에 소개시킬 때 불신자였습니다. 믿음 좋은 부모이어서 자신의 아들이 독실한 며느리를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소개시킨 며느리가 불신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실망이 컸습니다. 비록 실망이 컸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른 시부모님은 믿지 않는 너라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믿지 않는 며느리가 들어온다는 것이 얼마나 실망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나 내 아들이 믿음으로 선택한 이상, 우리들은 기도의 응답으로 생각한다. 우리 가족과 함께 살면서 신앙이 되길 바란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며느리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주일이 되어도 교회를 가지 않는다고 단 한번도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가자고 다그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친정부모님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2,3달 이렇게 생활하는데 며느리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날 귀가길에 동네교회에 특별새벽기도회를 알리는 플랜카드를 봤습니다. 이튿날 새벽, 자발적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당 문에 들어가는 순간에 애냐 왜 이제야 오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끝까지 믿어주었던 시부모님에게 신앙의 며느리가 되는 것으로 보답했습니다.

시부모님은 아들이 독실한 며느리를 얻기를 기도했지만 불신자의 며느리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며느리가 때가 되면 교회에 갈 것을 기다리면서 불신자의 며느리를 사랑했습니다. 그 가정을 통해 그 며느리를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시부모님이 끝까지 며느리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라고 생각합니다.

 

21절을 읽겠습니다. 종일 손을 벌리고 계십니다. 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이야기는 사실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언제든지 돌아오면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돌아와서 말을 듣고-마음으로 믿고-입으로 시인하는 일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결론

기독교의 믿음의 경로는 바보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입니다. 어쩌면 지루하고 힘이 없어 보이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듣고-마음으로 믿고-입으로 시인하여 세워진 믿음만이 흔들리지 않는 반석위에 세워진 믿음입니다.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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