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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by ysong 2022. 5. 25.

로마서 11:1~5

9~11장은 바울이 골육친척이 하나님을 떠난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거부하여 비극적인 처지에 처하게 된 이스라엘의 상태를 역설하면서 1) 하나님이 신실하지 못했거나 불의한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9:6-말씀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온 예수 그리스도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9:32-걸림돌과 거치는 돌을 시온에 둔다). 하나님의 끈질긴 구애를 이스라엘이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10:21-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을 하나님 탓이나, 환경의 탓이나, 사람을 탓이 아니라 그들의 교만과 불순종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다시 거론하면서 11장에서 두 개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 1절 상반절(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버리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버림받은 민족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버림받은 것은 부분적인 뿐이라는 사실을 2~10절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11절 상반절(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넘어져서 완전히 패망하였느냐?)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끝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사실상 이미 이스라엘의 범죄는 예상치 않은 복들을 가져왔습니다. 바울은 12~32절에서 이 사실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역사적인 섭리는 더욱더 많은 복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면서 하나님이 남겨 놓은 자가 누구이며 택함받지 못한 나머지의 사람은 어떤 성격의 특징을 가졌는지 보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계속하여 어려움을 겪고,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다고 느낄 때 우리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그렇지 않고서 이런 일을 오랫동안 계속해서 당하게 될까?

우리들은 하나님이 버리셨냐?”는 질문을 보고 이스라엘이 믿음없는 소리와 의심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입장이어라면 비슷하게 의심했을 겁니다. 그들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은 BC 621, BC남유다는 586년에 나라를 빼앗기고 지금은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습니다. 600년 이상 나라없는 서러움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정도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정도가 아닌데도 의심하는데요.

 

어린 때 혹시나 부부 싸움을 하면 나를 버리고 떠나지는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한다고 해서 나를 버릴까 염려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말로 언쟁을 하기는 해도 이혼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쌓이고, 모든 일을 종합적으로 생각할 정도로 성숙하게 되면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전체를 종합해서 보니까 1-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시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 첫 번째 증거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절대로 버리지 않은 증거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람의 후손이요, 베냐민 지파인 유대인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말로 표현하면 저는 유교집안에서 자라서 제사를 드렸고, 뿌리 깊은 불교의 전통에 자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양종교라고 하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셨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는 교회에 봉사를 하면서 불의를 경험하고 신앙을 잃었습니다. 저는 타락하는 교회를 보고 실망이 컸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에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를 버리지 않은 까닭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렸다면 자기처럼 유대교에 열심이고, 유대교의 전통을 지키려는 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기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증거(2~4)-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7천명(왕상 18), 남은 자를 남겨두신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죽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아합왕의 아내인 이세벨이라는 왕비가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합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광야로 달아나 거기서 자기 운명을 슬퍼합니다. 3절을 읽어볼까요? 하나님 나만 남았는데, 나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차라리 여기서 죽여주십시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4절입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7천명을 남겨놓았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7천명을 남겨놓았다. 그들은 숨어서 지내기 때문에 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힘이 없어서 보이지만 내가 7천명을 남겨놓았다. “너 혼자 아니다.”

 

바울보다 신약을 가진 우리들은 세 번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계시의 점진성입니다. 바울이 순교한 한 후 30여년 후에 기록된 요한계시록 11장에 기록된 마지막 때에 나타날 두 증인의 이야기도 바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는 증거로 보입니다.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요, 어느 목사님이 대학에서 통계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을 알고 계시는데, 그 통계학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통계학교수님이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만들어 봤다고 합니다. 현재 상태로(이미지 실추되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기타 등등) 한국교회가 지속되면 2045년에 한국교회는 문을 닫는 것으로 예측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공계적인 예측은 아니지만 충격은 사실입니다.

 

이 상태로 지속되면 2045년에 한국교회가 문을 닫을 것이지만 그와 같이 가정을 비롯하여 많은 공동체가 무너지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곳은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공동체를 회복하는 힘이 있는데, 교회가 무너지면 공동체도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이젠 점점 혼자 사는 가정으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성애가 확산되면서 가정 공동체 해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통계상 지표가 나왔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들은 오늘 바울과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한국교회를 버리셨습니까?” 이런 질문에 하나님은 바울에게 대답했던 것과 동일하게 아니다. 남은 자를 남겨 놓았다고 하실 겁니다. 이 시대에 남은 자가 누구일까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현재 가장 큰 위기는 대형교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찾아왔다고 봅니다. 대형교회가 무너지면 한국교회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의 구조는 한국의 기업의 구도와 비슷한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대기업 중심이다. 만약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지는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필란드의 경제학자가 노키아사건을 이야기하면서 한국경제를 걱정하는 내용의 칼럼을 봤습니다.

 

'노키아'하면 '핀란드'라고 할 정도는 2007년까지는 노키아는 핀란드 경제의 상징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1998년 세계 1위의 휴대전화 회사로 등극한 이래 2007년까지 핀란드 경제 성장의 4분의 1을 떠맡았던 '국민기업'이었다고 합니다. 노키아의 몰락하여 국가적인 충격을 받았고 국민 전체가 힘든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필란드가 정책을 변하는 기회가 되었는데 작은 노키아를 수백개 만들자는 것었다고 합니다. 핀란드 정부나 국민은 노키아를 살리려는 노력보다는 이 기회를 핀란드의 '스타트업(startup·창업)' 중흥기로 삼고자 했다.

 

핀란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위주로만 한국 경제가 계속 발전할 수는 없다. 이제는 삼성전자 없는 한국 경제의 살길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 핀란드가 노키아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창업) 활성화와 대학 교육 혁신으로 위기를 기회를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부터 '스타트업(창업)'활성화와 대대적인 대학교육 혁신에 본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1차 적용>

한국교회를 하나님이 버리셨나?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한국교회를 살리는 방법은 건전한 개척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의 기초위에 세워지는 교회인데 가정과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교회입니다. 가장 평범한 우리교회가 건전한 교회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종교적으로 가장 타락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합왕의 시대에도, 예수님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바울의 시대에도, 가톨릭이 타락하여 종교적인 암흑시대에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남겨 두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남은 자를 남겨두셨는데, 누구일까요? 우리교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하나님이 강권적인 은혜로 남겨 놓는 교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교회로 남겨 놓여 지기를 소망합니다.

 

2. 누가 버림을 받지 않고 남녀 놓임을 받게 됩니까? 5절입니다. 바울시대에도 남은 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특징은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5) 남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7절에 두 종류의 사람-은혜로 택함을 받은 사람과 완악하게 되어 택함을 받지 못한 나머지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은혜로 택하심을 받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택하심을 받지 못한 그들의 특징을 2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혼미한 심령을 가진 자입니다. (8)

바울은 완악해짐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를 두 개의 구약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9:4절이하와 이사야 29:10절을 혼합 것입니다.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혼미한 심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두워 보지 못하는 눈을 줬다는 것입니다.

 

2)밥상만 관심에만 관심이 있는 잡니다.(9~10)

두 번째 인용(9)-시편6922~23절에서 온 것으로 의로운 사람이 핍박을 당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밥상-집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식당이 없는 시대에 수확물을 누리는 자리입니다. 좀더 좋은 밥상을 누리기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밥상이 기쁨이 변해서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음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밥상이라는 안전과 번영과 친교의 상징인데 그것이 올무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예수님이 하신 말씀

24:36~39-38절의 행동만 하기 때문에 은혜를 모름,,,세상의 것만 추구하는 삶은 올무, , 장애물, 죗값을 치르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특징

1) 1:28~30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았기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시골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사는 처녀가 어떻게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겠습니까? 당시 로마에는 똑똑하고, 교양 있고, 예쁘고 가문 좋은 처녀들이 많습니까? 아니 예루살렘에도 율법에 따라 교훈과 훈계로 자란 처녀들이 많이 있습니까?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시골에 사는 마리아가 은혜를 받은 자가 될지를 말입니다.

 

2) 6:8~9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가 노아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의인으로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유일하게 살려주셨습니다.

3) 우리들은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우리는 고집이 세고 자기밖에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감격하고 감사하는 것이 은혜 받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왜 저 사람을 완악하게 하셨는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나 같은 사람을 믿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송해서 몸들 바를 모르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요,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g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감격이 있습니까? 이 감격이 있으면 세상이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감격이 있으면 병상에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할렐루야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이런 감격이 샘솟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감격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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