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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완성)

늦어지는 은혜

by ysong 2022. 5. 25.

베드로후서 3:8~18

베드로사도는 예수님을 만나기전까지 어부였습니다.

당시 어부면 누구나 갈릴리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정부로부터 돈을 주고 어업권을 받은 어부들만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사도도 어업권을 받아서 물고기를 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사도는 먹고 살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오늘은 물고기를 몇 마리 잡았고, 가격은 얼마였다는 것을 말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내일은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를 소망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물고기와 관련된 말이었을 겁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고 달라진 것은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할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망도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이 땅에서 이룰 성취에 대한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는 소망이었습니다.

이 소망이 있었기에 베드로사도는 밖으로부터의 박해와 안으로부터의 공격에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망은 외부적인 고난과 내부적인 공격에 맞서면서 이뤄가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베드로사도가 말씀하신 궁극적인 소망을 갖길 바랍니다.

 

지난주 이단의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그들은 탐심이 가득하고 음란으로 거룩하지 못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베드로사도가 지적한 이후 2천년 동안 이단의 집단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조롱했던 이단들에 대해 주님의 늦은 이유에 대한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늦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어떤 자세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3장에서 발견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입니다.

성도들을 호칭하는 말입니다.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아” “사랑하는 여러분이라는 표현입니다.

1, 8, 14, 17절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사도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질문에 평생 간직하면서 실천했던 열매로 보입니다.

 

몇 주 전에 아들이 저에게 사랑합니다라고 했어요.

나도 사랑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생전에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가부장적인 분위기였다고 핑계를 대지만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베드로사도의 사랑하는 여러분이라는 표현에는 이런 뜻이 숨겨졌다고 보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열망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단에 넘어가는 것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분노했던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하고요, 사랑하기 때문에 걱정하고요, 사랑하기 때문에 아파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사랑을 배워서, 표현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들이 주님의 재림을 조롱했습니다.

3절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일부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은 거짓이고, 기독교라는 것도 만든 종교가 아닌가?

사도들이 예수님을 팔아서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사실성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사실에 대해 흔들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베드로사도는 재림이 늦은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시간 계산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시편 90:4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입니다.

하루만 참으면 천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틀만 참으면 이천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시간은 우리들에게만 해당됩니다.

사람은 시간을 시간으로 계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에게 시간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시간밖에 계신 분입니다.

땅의 시간과 하늘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너희의 시간이 아니라 내 시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신뢰해야 합니다.

초림과 재림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랑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흔들리는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의 시간표를 신뢰할 것을 권면합니다.

 

2) 더디게 느끼는 것 같이 늦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택함 받은 모든 백성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사랑의 시간입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원받기까지 하나님은 입장을 유보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께서 오래 참으신 열매입니다.

더딘 것이 아니라 참으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시간표입니다.

저도 주님의 오래 참으신 열매입니다.

고리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오래참고로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베드로사도는 15절에 동시대에 사역했던 바울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로 구원이 이뤄진다는 것을 깨달아 그렇게 편지를 써서 교회들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은 흔적이 없는데, 베드로사도가 바울이 쓴 편지를 보고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주님의 인내입니다.

주님이 오래 참으시니까 나도 오래 참아야 합니다.

주님의 인내하심에 눈을 뜨게 되면 주변 사람에게 인내하게 됩니다.

지금도 주님은 오래 참고 기다립니다.

우리들도 오램 참아 주께 돌아오는 구원을 볼 것입니다.

 

3) 더딘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다림이라는 것입니다.

다 돌이키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탕자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자세로 갖고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받아주실 자세를 갖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주님의 재림의 늦은 이유를 이렇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올 것인가?

도둑 같이 온다고 합니다.

때와 시간은 알지 못한다는 의미도 있고요, 재림은 예고 없이 온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말세의 징조가 나타난다고도 하고,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여고 없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도둑같이 온다는 것은 준비 안된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준비시키는데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갑자기가 됩니다.

준비된 사람은 갑자기가 아닙니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11절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힘써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관계에서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흔들리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 중심의 모든 관계를 맺는 삶을 가리킵니다.

말씀이 생각나는 삶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베드로사도는 말씀이 항상 생각나게 하고 싶어서 편지를 썼습니다.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이 생각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충만은 말씀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셔서 말씀이 생각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사모하고 권면합니다.

사모함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노력하는 분으로 보입니다.

15~16절을 보면 바울의 편지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자신의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를 보냈고, 수제자로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늦게 부름을 받은 바울의 편지를 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솔직합니다.

바울의 편지 중에서 여러 군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은 억지로 풀려고 하지 않았다고 것입니다.

사사로이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성경은 먹으라고 준 것이지 분석하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다가 모르면 넘어가세요, 그리고나서 다시 읽게 되면 깨닫게 되는 말씀이 많습니다.

반복해서 읽어보면 때가 되면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적용) 기다림에 지치지 말고 사랑의 시간표를 갖고 있자.

자녀가, 남편이, 아내가, 이웃이 변화를 기다립니다.

또 공의와 정의의 시대로 변하길 기다립니다.

주님이 오시길 기다립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아서 기반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하루아침에 올라오지 않을 때, 열심히 일했는데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 때, 좀처럼 변할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기다림이 어려움을 이길 힘은 무엇일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려줍니다.

믿기 때문에, 신뢰하기 때문에 기다려줍니다.

기다릴 수 있는 동력은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4~7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의 시작도 오래 참고이고, 사랑의 마지막도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해야 기다리다 지치지 않고 사랑의 시간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믿는 것입니다.

내 인생 가운데서 승리를 거두실 것이고, 역사에서 승리를 거두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며 신뢰에 대한 반응입니다.

저도 기다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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