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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완성)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 자

by ysong 2022. 5. 2.

베드로후서 1:1~11

지난주에 마친 베드로전서는 외부적인 핍박이 심할 때를 대비한 서신입니다.

고난의 시대를 어떻게 견디어 내어서 소망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권면이었습니다.

베드로사도의 서신에 위로를 받은 초대교회들은 밖으로부터 오는 공격을 잘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내부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내부의 분열로 무너지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부의 적은 영지주의와 가짜교사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불량품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조롱하면서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전서를 쓴 후 2~3년 후에 다시 붓을 들었습니다.

간교한 이단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교회의 분열과 파괴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즘도 진리전쟁입니다.

거짓목사, 거짓교사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광명천사의 얼굴로 다니기 때문에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이같은 진리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베드로사도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2~3절에서 앎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믿음이 성숙해져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진리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성경을 바르게 정확하게 알아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성화의 과정을 통해 성숙하는 것입니다.

 

1절은 짧은 인사말이지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한 단어에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단어는 기독교인들이 사용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명복은 죽어서 염라대왕에게 심판을 잘 받고 복을 누리길 바란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운명이 정해졌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팔자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말하는 단어조차도 달라지게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종으로 해석한 헬라어 둘로스는 노예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소유물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절대순종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자신은 주인 되신 예수님이 보낸 사도, 즉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에 입어서 얻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표현은 믿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자기의 의로 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 안에서 생성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의는 외부에서 옵니다.

외부에서 내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은 신념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보배로운 믿음=예수님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로부터 온 의입니다.

믿음은 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의로 말미암아, 그 사실로부터 오는 믿음입니다.

의가 부어짐으로 믿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앎으로부터 오는 믿음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인사말과 후서의 인사말의 차이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서에서는 흩어진 나그네, 택함을 받은 백성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후서는 믿음의 경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 위에 바르게 세우기 위함입니다.

 

베드로전서에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후서에서는 은혜와 평강이 어디서 비롯되지는 알려줍니다.

은혜와 평강은 우리 자신이나,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알 때 은혜와 평강이 흘러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끊어질 수 없는 관계 때문에 깊은 은혜와 평강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앎으로 주어진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 배웠습니다.

외부적인 조건과 환경으로 평강이 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롯 외부적인 조건과 환경에 조금은 영향을 받지만 근본적인 은혜와 평강을 헤칠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소한 일상이 행복해야 행복한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앎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내부적인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신비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능력은 생명과 경건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원하는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언제 쓸 수 있는가?

알 때 쓸 수 있습니다.

이미 지급해 주셨는데, 알 때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전적으로 인정한다, 잘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생명과 경건은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4)

세상의 썩어질 정욕을 피하는 것입니다.

정욕으로부터 도망 처라, 탈출하라는 것입니다.

금지된 욕망인 정욕입니다.

탈출해서 어디로 가는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신성한 성품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입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여는 교제를 말합니다.

15장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가 있습니다.

가지 끝에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의 본질인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생명의 교제를 나누면 열매를 맺습니다.

본질에 닮아가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그러므로믿음이 시작하게 됩니다.

덕은 그리스도의 덕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이 그리스도의 덕이 가장 너그럽게 풍성히 나타난 현장입니다.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지식 다음에 절제나 나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절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스포츠경기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장단점을 연구합니다.

강한 상대라면 그를 이기기 위한 더 열심히 운동하고 부족한 것을 채워갑니다.

당연히 삶에 절제가 따라오게 됩니다.

신앙의 순례길을 알면, 쉽게 풀려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절제가 따라오게 됩니다.

 

궁극적인 소망을 향해 견디는 싸움입니다.

참는 과정에 견디어 내면 형언할 수 없는 소망에 대한 지식을 알 때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소망이 분명한 자만이 인내를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경건에 이르게 됩니다.

경건은 하나님께 속한 도덕적 태도를 말합니다.

성도나 공동체가 갖는 향기, 스타일, 매력입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매력입니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고 지속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내면의 매력입니다.

삶에서 풍기는 향기입니다.

형제 우해=서로 서러 사랑하는 것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묶여지지 않으면 헛것입니다.

마지막에 무엇으로 확인할까요?

사랑의 덕목이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면 닮아가고 싶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음악의 황제로 불리는 베토벤을 닮고 싶어 하고, 피겨스케이트 선수는 김연아 선수를 닮아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7개의 덕목을 믿음 위에 세워가는 것입니다.

논리적인 순서가 중요합니다. 더하기입니다.

믿음위에 하나님의 성품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믿음 더하기 성품이 그 결과가 열매입니다.

8절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셨습니다.

구원, 믿음, 사랑은 같은 급의 키워드입니다.

 

8가지 덕목을 모르면 맹인이 되고 알게 되면 넉넉하게 됩니다.

9절에 이런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맹인과 같습니다.

10절에 혼자 두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항상 함께 하여 넘어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11절에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데 넉넉하게 됩니다.

 

적용) 은혜와 평강은 어디서 오는가?

조건과 환경이 바뀌면 잠시 평안이 찾아옵니다.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해결되면 잠시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다시 걱정거리가 생깁니다.

 

취업을 위해 노력했다가 취업을 했습니다.

걱정거리가 해결되어 잠시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근심과 걱정과 갈등이 찾아옵니다.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환경과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평강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집니다.

베드로사도는 앎으로 들어가라, 관계를 이야기 합니다.

관계없이 앎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관계가 회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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