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1~9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줬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술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의존적이지 않는 궁극적인 실체에 대한 이름입니다.
모세에게 가르쳐준 이름은 이스라엘백성이 출애굽사건을 경험하고 부를 새 이름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구원사건을 경험하고 부를 새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관계측면에서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계속해서 핑계를 댑니다.
계속되는 모세의 핑계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모세를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시길 바랍니다.
모세가 핑계를 대면서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가 뭘까요?
-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평온했던 일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때 왕자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했고, 백성의 편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과 작별하고 험난한 인생을 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젊다면 도전하겠지만 이젠 화려함을 쫓을 나이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이젠 작은 것에도 만족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사명에 따른다고 해도 자신은 적절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1절을 보면 백성들이 자신을 신뢰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잊힌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과 관계가 단절된 외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4:1절은 하나님이 3:18절에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고 하신 말씀에 위배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믿을 줄 모르지만 하나님이 저를 보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겁니다.
모세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40년 전에 아픔이 사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런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 2가지 기적을 보여주고 1가지 기적을 약속합니다.
뱀과 지팡이, 손이 나병의 기적을 보이면서 이스라엘백성에게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보냈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으면 나일강의 물을 떠나가 땅에 부으면 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믿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모세는 핑계를 댑니다.
나는 말이 어눌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12절에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시겠다고 합니다.
이젠 더 이상 피할 것이 없으니까 모세가 13절에 말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감당할 사람이 아닙니다.
보낼만한 사람을 찾아서 보내십시오.
모세가 겸손한 사람이어서 이렇게 말을 했을까요?
겸손은 능력이 있는데 자신을 낮출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모세는 겸손하기 보다는 진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 일이 어떤 희생과 대가를 요구하는지,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정확히 감지하고 있습니다. 왕자로 살아봤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입니다.
노예로 자유인으로 구해낸다는 것은 자기 같은 양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는 영웅이 되고 싶지도 않고 능력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14절에 화를 내십니다.
15~16절-선지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무엇을 봤기 때문에 모세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을까요?
40년 전에는 아니라고 했던 하나님이 지금은 된다고 했을까요?
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정확히 나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 엎드릴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40년 전의 모세는 할 수 있다고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해서 일을 처리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았을 때 빠질 수 있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명료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한계를 명료하게 알고 있는 모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일의 중요성에 비해 자기의 약한 부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쓰시기 합당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죄성, 약점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해지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를 붙여줍니다.
아론을 붙여줍니다.
지파이입니다.
평범한 지팡이입니다.
지팡이는 자기의 일부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 지팡이가 나중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됩니다.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됩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면 대책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승패가 달려있습니다.
감당할만한 능력으로 반응하지만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할 것이라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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