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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완성)

소명이 빠진 모세의 행동

by ysong 2022. 1. 21.

출애굽기 2:11~25

장년은 토목공사로 고역을 당하고, 남자 아이들은 나일 강에 던져야 하는 처벌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위 지파의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생명을 낳았습니다. 이 표현에 믿음이 살렸다고 봅니다.

나일강은 죽음의 강입니다.

죽음의 물 위에 창조의 역사가 도도히 흘러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삼키려는 물 위에 도도히 흘러가는 것입니다.

죽이려는 원수의 딸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되어 죽게 되었는데, 바로의 딸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기가 가장 안전한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 자리가 애굽을 근본적으로 뒤집고 나올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로의 턱 밑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지만 우연과 운명을 가장하여 세상 한 복판에서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숨기도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것을 즐기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히브리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 사람이 동족인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봤습니다.

자기 히브리민족이란 정체성을 갖고 애굽 사람을 쳐서 죽입니다.

다음 날에는 동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말렸습니다.

동족인 모세를 거부합니다.

모세를 바로에게도 탈로 났다는 생각에 도망갑니다.

 

모세는 어떻게 이런 정체성을 갖게 되었을까요?

유모로 모세를 돌본 어머니 요게벳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동족을 구할 뿐만 아니라 동족끼리 싸울 때 말렸던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 하나님이 민족을 구원하는 사명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자기 백성들이 존경하고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는 사회 정의와 민족의 영웅이 되어서 정치적인 독립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폭력으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지도자들은 세상에 즐비하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관심은 예배하는 백성으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민족 공동체로 예배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새로운 백성을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1장부터 시작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 민족이 바로의 밑에서 살아가는 동안 죄와 악의 속성이 뼈 속 깊숙이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뼈 속에서 빠져나와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에게 이런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모세조차도 애굽 사람과 똑같은 리더십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폭력과 증오로 자기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식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도모하면서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부터 새롭게 빚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민족의 거울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지도자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내면의 해방, 영의 해방, 정신의 해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분명한 정체성과 사명을 깨달았지만 하나님을 만난 만남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제가 목사가 된 것도 소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이 있는데, 내적 소명은 내적 확신,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 확인되는 확신입니다. 그런데 모세에게는 이런 소명이 흔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심이 빠졌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과 만남이 이뤄집니다.

진정한 소명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으로 만든 후에 쓰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를 따라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왜 도망가게 하셨을까요?

꿈이 꺾인 후에 40년입니다.

개인에게 있어서 추락한 인생을 수습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한 세월입니다.

난감, 황당함이 수습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살기에 넉넉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인의 양떼를 치고 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면서 나름대로 기쁨과 만족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자녀를 낳아 게스솜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신세 한탄의 생이 치유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나름 하나님과 동행의 삶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애굽에 살고 히브리민족의 탄식이 상달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근거로 이들을 살피려고 합니까?

24절에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의 탄식을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 나아갈 때 언약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새언약을 맺은 백성입니다.

아버지라고 강조해서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이 자녀이기 때문에 들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른 정체성입니다.

모세가 이제 하나님을 만남을 통해 진정한 소명을 깨닫게 됩니다.

광야 40년은 그를 진정한 소명자로 빚으시는 세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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