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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버럭 요나(1)

by ysong 2021. 2. 23.

열왕기 하 14:23~27절

행복한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습니까? 성경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싶으십니까? 가급적 넓은 눈으로 성경을 보는 안목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제대로 알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 주일 설교를 통해 창세기부터 한권 한권을 살펴보는 것은 작고 편협한 하나님이 아니라 우대하시고 선하고 거룩하고 다정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도 이런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본문으로 열왕기하 14장을 본문으로 읽었지만 오늘은 요나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무슨 이유로 요나서를 다룰까 생각이 들 겁니다.

열왕기를 보면서 요나서를 다루는 것은 성경을 통전적인 안목으로 볼 때 가능합니다.

요나가 이 시대에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그동안 주로 북이스라엘의 왕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오모리왕조(오모리-예후아합-아하시야-여호람)를 다루면서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무엇을 했는지를 봤습니다. 많은 기적과 이적을 보여주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끝내 돌이키지 않는 교만한 오모리왕조, 특히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을 봤습니다. 이들을 처단한 예후왕조가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예후의 행동이 맘에 들어서 5대에 걸쳐 왕권을 보장해 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으면 됩니다. 그래서 예후왕조가 100여년 지속됩니다. 당시 엘리사가 선지자로 활동을 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도 죽고 예후왕조에서 여로보암2세가 통치하던 시대에 북이스라엘서는 가장 잘 살게 되었습니다.

주변국가에 빼앗겼던 땅도 다시 차지할 정도로 정치, 외교, 군사에서 탁월한 국가가 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큰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선지자로 세워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을 키워보신 분들은 말로 해도 안되고, 때려도 안될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 겁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됩니다.

 

요나는 누구인가?

요나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는 열왕기하142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로보암2세의 초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했습니다.

 

요나서 1: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여기에서 요나가 가드헤벨의 아밋대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드헤벨이라는 지명은 갈릴리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불러서 특별한 사명을 줬습니다.

요나 1:2절입이다.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니느웨 백성에게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니느웨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세계를 제패하던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오늘로 하면 미국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가진 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웃 족속들을 괴롭히던 자들이 니느웨 백성들이었습니다.

얼마나 악했는지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까지 상달되었다는 것입니다.

 

150여년 후에 활동한 나훔 선지자가 다시 타락한 니느웨가 얼마나 악했는지를 나훔서 31~4절에서 이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하는 병거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같은 창, 죽임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했습니다.

 

니느웨성을 피의 성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니느웨는 그야말로 악의 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포악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니느웨는 당시 요나가 살고 있던 갈릴리에서부터 수천키로미터 떨어져 있는 도시였습니다.

걸어서 가면 족히 3달 이상 걸리는 먼 거리에 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 먼 거리에 있는 니느웨까지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하나님이 요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를 보십시오.

요나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뭡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니느웨로 가려 하지 않고 다시스로 가려 했습니다.

다시스는 지금의 스페인 서남부의 지브랄타 해안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아주 번화하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볼 때, 니느웨와는 정반대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니느웨는 동쪽에 있었고, 다시스는 서쪽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나는 동쪽으로 가야했는데 서쪽으로 갔던 것입니다.

 

요나가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까?

요나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나서 41~3절에서 요나 자신이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요나는 니느웨백성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걱정은 오히려 내가 복음을 전했을 때, 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어떡하나?’ 이것이 걱정되었습니다.

 

저런 놈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안 돼. 저렇게 나쁜 짓을 한 놈들이 회개하면,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 용서하실 텐데, 그러면 안되지, 저렇게 그냥 살다가 죽게 내버려두자!” 이것이 요나의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요나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민족우월주의에 빠져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여러분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까?

그 소식을 들으면 영원히 살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요나의 심정은 이와 같습니다.

 

그래도 선지자는 달라야 하는데 요나 선지자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뛰어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 가족만 구원받고, 내 가족만 복 받고, 내 가족만 쓰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굳어진 신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요나가 그런 선지자였습니다.

내 민족만 회개하고, 내 민족만 복을 받으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민족주의자입니다.

 

하나님이 노예의 신분에 있는 이스라엘사람들을 불러낸 목적과 사명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선지자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아마도 요나 선지자는 엘리사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엘리사는 요나보다 한 세대 앞선 사람이기 때문에 충분히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요나 선지자는 엘리사가 운영했던 선지자학교의 출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 선지자는 배타주의적인 신앙을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무엇을 위해 믿게 되었는지를 모르면 요나와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요나서입니다.

요나 선지자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실 요나는 형편없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고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 꼴통, 버럭 요나라고 불러도 무방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말씀을 듣지 않아서 가뜩이나 속이 타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심부름꾼, 하나님의 대언자, 하나님의 입술의 역할을 담당하는 선지자까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타는 심정이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요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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