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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왜 쿠데타가 일어나는가?(2)

by ysong 2021. 2. 13.

남유다에도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예후가 병문안을 온 아하시야를 죽이면서 아달랴의 쿠데타는 시작되었습니다.

 

아달랴는 음행과 속임수의 여왕인 이세벨의 딸입니다. 그 딸은 어머니를 능가했습니다. 아달랴의 남편은 여호람입니다. 여호사밧은 장자 여호람에게 왕위를 계승시키고 나머지 여섯 아들들에게 각각 은금 보화를 많이 주어서 견고한 성에 가서 잘살게 해 주었는데, 여호람이 왕이 된 후 형제들을 모두 다 살해하였습니다.(대하 21:4) 아마도 아달랴가 충동질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또 여호람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유다를 침략하여 여호람의 아들들을 죽였습니다. 겨우 막내인 아하시야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막내인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아달랴는 아들 아하시야가 병문을 가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행동을 하신 줄 아십니까?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11:1절입니다. 손자들을 모두 멸절했습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치밀하게 부하를 기르며 준비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나 속적속결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달랴의 쿠데타는 잘못된 교제가 얼마나 큰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여호사밧은 정직하고 반듯한 왕입니다. 그런데 가장 타락한 아합왕가 사돈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달랴는 천하의 악독한 며느리를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며느리의 충동질로 자식들이 죽고, 장자인 여호람도 왕이 된지 8년만에 죽게 됩니다. 게다가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혼인 제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경우,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결국 아달랴는 땅 위에서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파괴하는 사탄의 역군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달랴의 쿠데타는 하나님의 뜻을 파괴하는 사탄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달랴의 쿠데타은 예후의 쿠데타와 다릅니다. 악이 선을 무너뜨리는 쿠데타입니다. 아달랴의 쿠데타로 다윗의 후손이 끊길 수 있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아달랴의 시집간 딸이 조카 요아스를 숨깁니다. 고모인 여호세바인데 그의 남편은 제사장인 여호야다입니다. 1살 된 핏덩어리는 성전에 6년 동안 숨겨서 키웠습니다. 요아스가 7살 때 여호야다가 아달랴를 죽이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다시 왕권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시 다윗의 왕권을 회복시킨 이유는 사무엘하 7장에 기록된 다윗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북에서 일어난 두 쿠데타를 봤습니다. 예후의 쿠데타는 하나님이 준비시킨 것이었고, 아달랴의 쿠데타는 인간의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쿠데타의 결과도 달랐습니다. 예후의 쿠데타는 4대까지 이어지는 왕권이 보장되었고, 아달랴의 쿠데타는 죽음으로 결과를 맺었습니다.

 

결론

어느 나라이든, 어느 단체이든, 어느 조직이든 예후와 아달랴와 같은 쿠데타가 있습니다. 이런 일을 만나면 기독교인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권세를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을 묻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1절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세는 기독교인을 박해한 네로황제입니다.

 

권세에 복종하라고 하면서 어느 차원에서 복종해야 하는지를 로마서 13: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심에 따라서 각 개인들이 결정하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위에 사람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벧전 2:18~19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관용적인 상사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상사에게까지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53~54에서 예수님이 겟세마네동산에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열두군단(6000*12) 되는 천사를 보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성경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쿠데타가 아닌 갖은 수모와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사랑으로 참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초대교회성도들도 로마의 10대 박해에 맞서서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사랑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 방법으로 거대한 로마를 복음으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고난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후가 의협심으로 일으킨 쿠데타에도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쿠데타는 하나님이 어렵게 세워준 나라로서 목적을 잃어버린 결과라는 점입니다. 다윗은 기름을 부었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고, 여호사밧-여호람-아하시야까지 이어지면서 악한 것과 계속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아달랴의 쿠데타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왕국이나 남왕국이나 전혀 하나님의 뜻이 통하지 않는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목적인 출애굽기 19:5~6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세계가 다 하나님 것인데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나라들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남왕국이나 북왕국은 쿠데타를 일으키며, 권력투쟁을 일삼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부르심 입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알리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나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된 나라를 알리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끼리 죽이고 죽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죽이는 쿠데타가 아닌 사랑의 쿠데타를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미움의 쿠데타가 아닌 덮어줌의 쿠데타를 일으키시길 바랍니다. 용서의 쿠데타를 일으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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