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1~16
후반부는 나사로의 죽음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을 말씀으로 정복함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후반부의 결론을 예표 하는 사건으로 부활을 예고합니다.
11장과 20장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1) 미리와 마르다의 비통함----막달라 마리아의 애통
2)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심(39절)----초자연적으로 돌이 옮겨짐(1절)
3) 나사로가 나오다(43절 수동태)---살아나시다(9절-능동태)
4) 수족을 배로 동인체 나옴(다시 죽을 것임)----벗은체 나타남(영화된 몸으로 부활 상징)
5) 도마의 고백(16절)----도마의 위대한 고백(20:28절)
두 부활의 사건은 유사점을 갖고 있습니다.
다가올 부활의 사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사는 곳을 기록했을까?
베다니라는 이미지가 어떤가요? 소돔과 고모라의 이지는 어떤가요?
사랑과 심판을 상징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3절, 5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장소가 빛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베다니(베다니라는 동네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가난하고 소외된 마을)입니다.
그 곳에는 불가촉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동네입니다.
"벧-아니" 즉 베다니 , "슬픔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이 슬픔이 변하여 사랑이 가득한 곳으로 바뀝니다.
2절-마리아를 소개합니다.
향유를 주께 부은 여인으로 소개합니다.
시기적으로 뒤의 사건이지만 사도요한에게 향유 사건은 마리아의 이미지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한 마리아로 기억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요?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아니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지 둘 중에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길 바랍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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