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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일설교

세 종류의 사람

by ysong 2020. 11. 6.

고린도전서 2:14~3:2

성경은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신령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세 종류로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기준처럼 능력, , 권력, 학력, 어디서 사는 것일까요?

세상은 이것으로 사람들을 구분합니다.

또 유익한 사람과 무익한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즉 나에게 유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구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냐?에 따라 구분한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구분 기준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십자가의 도일까요?

십자가만이 사람을 온전히 변화시킬 수 있고, 새생명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든 세상의 것은 헛되고 헛되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구분에 따라 육에 속한 사람은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령의 일=십자가의 도=복음을 미련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가롯유다가 3백데나리온 옥함을 깨어 예수님의 발을 씻은 것은 낭비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행위를 자신의 장례준비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수님은 십자가의 도에 참여한 사건, 거룩한 낭비로 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관점이 틀리기 때문이고,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에 속한 사람은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일에 대해서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처리는 내버려두는 것입니다.(로마서 1:24~32)

계속해서 육에 일을 하도록 합니다.(갈아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한 순간적이고 무질서합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우선 도는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지만 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고 젖을 먹으면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신앙의 초보의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은 진정한 회개(죄인인 것을 알고, 슬퍼하는 것, 의지적으로 돌이킴)를 경험허지 못한 상태입니다.

신앙(알고, 사랑하고, 순종)의 단계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예수와 자신을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들의 생활은 교회 내에서 시기와 분쟁하곤 합니다.

충분히 조화를 이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투게 됩니다. 

다양한 영적인 칼라를 인정했는데 자기만 옳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신앙은 죽은 것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누가복음 24:1)과 같습니다.

마치 죽은 예수님을 위해 향품을 준비한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같은 사람입니다. 

수고하고 힘쓴 것이 쓸모없게 된 사람입니다. 

 

어쩌면 함과 같은 사람입니다.

노아의 실수를 자세히 보고 흠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창세기 9:18~23)

단점을 들추어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생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면 바른 것과 그른 것이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교단과 목회자들을 비판하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대안은 없습니다.

그렇게 비판을 하면 자기 스스로는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학생을 통해 일하지 않습니다.

 

신령한 자입니다.

당연히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고전 13:11=장성한 사람=2:15=모든 것을 판단=본질판단=사물을 볼 때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을, 사람을 바르게 판단의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이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 겟사마네 동산 기도, 아버지의 뜻대로, 죽기까지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샘과 야벳과 같은 사람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입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처신을 하는 사람입니다. 

정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지만 시행착오가 많은 겪으면서, 시기와 분쟁의 현장에 뛰어 들어가서 화목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타인에 대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성숙의 척도가 됩니다.

상대방을 지적하기 전에 나를 먼저 봅시다.

상대방을 위해 내가 먼저 움직여 섬깁시다.

신앙의 진보가 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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