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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by ysong 2020. 10. 29.

요한복음 8:1~11절

1) 성전에 오기 전에 하던 일과 머물러 있었던 장소가 중요합니다.

2~3절은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사건을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음행 중에 잡혀 온 자를 세우고 있습니다. 

 

왜 다를까요?

예수님은 은혜의 곳으로, 바래새인들은 돌을 드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7:53절과 8:1절에서 영적인 안목을 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집으로 돌아갔고, 예수님은 감란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집에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올모에 빠뜨려 잡아 죽일까를 고심했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미 이들의 차이는 전날에 갈라져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생활이 참 중요합니다.

시험을 대비하여 늘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기도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것은 시험에 들지 않게’(26:41) 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무장된 자에게는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은혜로 이기게 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시험을 걸기 전, 우선 기도를 멈추게 만듭니다.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시험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2) 사람마다 절망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들었던 돌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절대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주님 앞에 끌고 와서 말했습니다.

율법에 따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 겁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속셈은 전혀 엉뚱한 데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대위명문을 내세우지만 속은 이기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간음죄는 율법에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동일하게 처벌받게 되어 있습니다.

22:23~24절, 20:10절에 밝히고 있지만 이들은 여자만 예수님 앞으로 끌고 온 것입니다.

연인보다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살려두라고 하면 율법을 어긴 것으로, 돌로 치라고 하면 로마법을 어긴 것으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6-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십계명을 쓰셨을 것이라는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7-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여인뿐만 아니라 돌을 들은 사람들에게 은총을 부어주시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죽은 양심이 깨어나게 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으며, 돌을 놓게 돌아갔습니다. 

 

나는 돌을 들을 들을만한 자격이 있는가?

이 절망은 진실에 가장 가깝게 가 있는 상태입니다.

은혜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게 된 상태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여인이나 너희들이나 같다, 누구도 심판을 행할 의로운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죽음의 절망에 직면해 있습니다.

3절에 끌려온 여인은 가운데 세웠졌습니다. 

그 여인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무서운 죽음의 위협과 공포였습니다.

그 여인은 단순히 사람 가운데가 아니라 죽음의 절망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절망의 꺼풀들이 차례로 벗겨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완전히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실을 9절에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인을 에워싸고 있는 죽음의 절망 한가운데에는 주님께서 그 여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을 때 그에게 새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온통 죽음의 그늘뿐이었던 그 여인에게 주님만 남아 있습니다.

 

10~11-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는 판결을 내린 후 용서해 준다는 뜻이 아니라 판결조차 내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매우 강한 용서의 표현입니다.

예수님도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고 계십니다.

이는 이 여인이 죄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죄를 인정하시고 죄를 떠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모세의 율법에 매달려 살 것인가? 은혜와 진리로 살 것인가?

율법-정죄-벌을 줌-끝입니다.

은혜와 진리-정죄-용서함-2막의 인생을 시작입니다.

 

미움도 힘이다. 미워하는 힘으로 살 수 있습니다. 미움도 그 사랑의 인생을 좌지우지합니다.

벗어나는 방법은 용서하는 것이다.

문제는 원수가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만 잘못한게 아니어서 용서를 빌지 않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4:2서로 용납하고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죄인됨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입니다. 각자 절망에 부딪혀야 합니다. 그래야 정죄의 돌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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