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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이야기 사무엘하(1)

by ysong 2020. 10. 16.

삼하 7:9~12

사무엘상하는 원래 한 권의 책입니다. 사무엘상 2, 사무엘하 22장에 기록된 한나의 기도와 다윗의 노래는 마치 앞뒤 겉장처럼 본문을 감싸고 있습니다.

두 노래의 주제는 높은 자를 낮추시는, 높은자는 엘리와 사울, 낮은 자를 높이시는, 낮은자는 사무엘과 다윗, 절대주권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서 전체에 흐르는 주제입니다.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인물을 알면 많은 신앙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엘리와 사울, 사무엘과 다윗은 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그러나 4명의 삶은 각각 달랐습니다.

4명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도 어느 누구의 유형에 닮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꼭 닮아가야 하는 인물은 다윗인데, 그것도 사무엘상 16장부터 사무엘하 10장까지에 기록된 다윗의 모습입니다. 사무엘하 11장부터는 다윗도 엄청난 가족 간의 불화와 시련을 겪게 됩니다.

 

사무엘하는 다윗의 치적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뚜렷이 갈라집니다. 1~10장까지는 점점 강성해가는 다윗을 볼 수 있다면, 11장부터 시련과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는 다윗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목장에서 양을 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골리앗을 죽인 이후, 정치에 뛰어들은 다윗은 쫓겨 다니고, 망명생활을 하고, 생명의 위협을 겪고, 자식이 먼저 죽고, 배반하는 험악한 세월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신앙의 길에서 떠나지 않은 다윗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향한 노래로 인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끝이 좋아야 하는데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주심으로 끝이 아름답게 끝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신앙적인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오랜 정치적인 정적인 사울이 전쟁에서 죽자, 사람들은 다윗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오랫동안 괴롭힌 인물이라는 것은 이스라엘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 나라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표면적인 정치적인 관계를 이용하여 출세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과도기의 상황, 정권교체기, 다윗은 사람의 속과 겉을 보면서 바르게 판단했습니다.

 

먼저 아말렉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기브어 전투 현장에 있게 되었는데, 부상당한 사울을 만나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울이 고통이 심하니까 자기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을 해서 죽였다는 겁니다. 사울을 죽였다는 증거로 왕관과 팔 고리를 내밀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거짓말하고 있는지를 압니다. 사무엘상 31장에서 사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모릅니다.

 

아말렉 청년은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이 사울과 정적관계에 있었으니까, 사울을 죽였다고 하면 다윗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포상금을 주던지, 한 자리 내어 줄지 모르겠다는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이 대통령선거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자기가 지지하는 대통령후보가 당선되면 한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80여 자리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말렉 청년의 계획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다윗의 태도는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1:11절에 자기 옷을 찢으며, 슬퍼하며, 울며, 금식했습니다. 의외의 반응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반응입니다. 아마도 아말렉 청년은 당황했을 겁니다.

 

이어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인 아말렉 청년을 죽입니다.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그 청년이 말씀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리사욕에 휩쓸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이익에 매여, 개인적인 감정에 얽매여 있지 있었다면, 이런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겁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이용하려는 악한 사람에게 넘어가고 말았을 겁니다. 다윗은 말씀의 원칙에 따라 사람을 보는 안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사울이 죽자 다윗이 유다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같은 지파사람인 어떤 사람이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다윗에게 환심을 얻고 싶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경계해야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참고하라고 하면서 길르앗 야베스(므낫세 지파는 이스라엘 땅과 요단동편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의 시신을 수습해서 장사를 치러줬다는 이야기입니다.(2:4절)

 

사울왕의 시신과 왕자들의 시신이 머리도 없는 채 벳산 성벽에 달려 있었습니다. 요단강 동편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밤새도록 달려와서 시신을 수습하고, 장사를 지내고, 7일 동안 금식을 했습니다. 그것은 사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사울왕이 등극 초기에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성령이 충만해진 사울이 같은 동족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서 구해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말한 어떤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의 행동이 기분이 나쁘다는 겁니다. 다윗을 따르지 않고 아직도 사울에게 정을 쏟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의 사람이지 다윗의 사람이 아니니까 경계해야 한다고 귀띔해 주고 있습니다. 인재를 등용할 일이 있으면 그 지역의 사람은 안된다는 겁니다.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전령을 보내어 잘 했다고 칭찬을 하면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 것이라고 축복까지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다윗에게 말한 어떤 사람처럼 시기해서 고자질하듯이 참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 차원 놓은 수준이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이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특히 역사서를 읽을 때, 이런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성경적으로 행동을 했는지, 사람의 말을 어떻게 듣고 판단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를 하나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4장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사울의 아들 중에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살아있었던 이스보셋이 있었는데 사울을 이어 유다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지파를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다스리는 곳은 남 유다이입니다. 이스라엘에는 군 지휘관 두 명이 있는데, 사울과 같은 지파 사람입니다. 먼 친척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이 배신했습니다. 그들은 침상에 있는 이스보셋을 살해하고 목을 베어 다윗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마치 중국 무협소설에 나오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중국의 무협소설은 그들을 받아주고 상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많은 생각을 했겠죠. 아마도 그들은 쓰러져가는 이스보셋을 따르기보다는 점점 강성해지는 다윗을 따르는 길이 시대를 앞서가는 행동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나라가 넘어가기 전에 다윗을 위해 공을 세워서, 한 자리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겠죠.

 

이들에 대한 다윗의 태도입니다. 4:10~12절입니다.

왕과 같은 높은 위치에 오르면 그 자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다윗의 이야기를 들으면, 다윗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다윗처럼 사람을 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 가면을 쓰고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을 속이고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이야기, 걱정해 주는 것처럼 말하고, 위해주는 이야기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들으면 친구와 같습니다. 이때 사람들을 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말씀에 따라 사람들의 중심을 꿰뚫어 봤습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쫓지 않았습니다. 신용을 중시했습니다. 듣기 좋은 말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는 신앙의 안목을 갖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사람을 보는 신앙의 안목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런 안목은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는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1절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대답을 기다리는 신앙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의 이익에 끌려 실수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생각나게 하고, 바른 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다윗처럼 기도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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