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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누가 장자권을 갖는가?

by ysong 2025. 3. 2.

창세기 44:30~34

한 집안의 장손, 장남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시골에서는 장남만 공부시키고, 나머지 자녀를 희생시키기도 했습니다.

히브리의 문화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한 집안의 장남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여기서 따라오는 것이 장자권입니다.

장자권은 첫째 아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 뒤따라왔습니다.

장자는 집안의 통치권, 두 배의 유산, 제사장 직분을 이어받고, 아버지의 축복권을 이어받았습니다.

 

성경의 장자권은 태어난 순서대로만 정해졌을까요?

육신의 혈통으로 얻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족보를 보면 첫째 아들이 장자권을 얻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첫째 아들은 하갈로부터 낳은 이스마엘입니다.

육신의 형통으로 얻은 이스마엘은 장자권을 이어받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명목상 둘째 아들이지만 장자권을 이어 받았습니다.

성경은 육신의 아들과 약속의 아들로 구별합니다.

 

이삭의 첫째 아들은 에서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붉은 죽으로 장자권을 살 정도로 장자권에 집착한 둘째 아들인 야곱이 장자권을 이어받았습니다.

야곱이 창세기 48~49장에 기록된 자녀들을 위한 축복기도가 장자권을 사용한 증거입니다.

 

야곱의 12 아들 중 누가 장자권을 받았을까요?
조금 복잡합니다.

야곱의 첫째 아들은 루우벤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장자권을 이어 받은 자식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두 배 복을 받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이 12지파에 속하는 복을 받습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때 레위지파 자리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차지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장자권은 유다가 이어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역대상 5:1~2절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넷째인 유다의 이야기가 등장한 이유가 있습니다.

유다에게서 지도자가 나온다는 내용입니다.

마치 어린 왕 뒤에서 실제적인 섭정을 하는 그림과 비슷합니다.

요셉은 장자권을 이어 받지만, 실제 권력자, 통치자는 유다라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33:6~7절에도 그 사실을 알려줍니다.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의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의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가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르우벤 다음에 넷째인 유다가 나옵니다.

르우벤은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넷째인 유다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긍정적이고, 승리,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유다는 실질적인 리더요, 장자의 역할의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레위지파나 요셉의 지파에 따른 것이 아니라 유다 지파에서 나왔습니다.

마태복음 1:1~2절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았다고 하면서 실제적인 장자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3:33~34절입니다.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34 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

야곱의 장자권은 명분상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으로, 실권은 유다가 이어받았습니다.

 

넷째인 유다가 실제적인 장자의 명분을 이어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이 답을 주고 있습니다.

유다는 어떤 사람인가요?

처음 유다가 등장하는 장면은 요셉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창세기 37:26~27절입니다.

유다는 요셉을 살리기 위해 제안을 했지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마음에 가책을 느낀 유다는 집을 나옵니다.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사람의 딸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습니다.

, 오난 , 세라라는 자녀를 둡니다.

장자 엘을 위해 다말과 결혼을 시킵니다.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좋지 않은 행위를 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가문을 이어가도록 계대결혼 제도를 두었는데, 둘째 오난도 하나님이 보시기 좋지 않은 행위를 하여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셋째는 셀라를 동일하게 하면 죽을 것을 염려해서 유다는 야곱의 집으로 보내면서 다말에게 아이가 성장하면 대를 잇도록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유다가 이행하지 않자 다말이 변장하여 장인과 동침하여 자녀를 낳습니다.

유다는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유다의 변화된 모습은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유다가 야곱에게 베냐민을 데리고 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면서 한 말입니다.

창세기 43:8~9절입니다.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만약에 잘못되면 자신이 담보가 될 것입니다.

잘못되면 모든 죄를 자신이 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냐민을 담보로 잡아 두겠다고 말하는 요셉에게 한 말입니다.

44:33절입니다.

내가 종이 되겠습니다.

내가 대신 죄값을 치르겠습니다.

유다가 희생입니다.

영적으로 모든 형제의 으뜸은 공로의 보상이 아닙니다.

섬기고 희생하는 것의 결과입니다.

장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희생입니다.

유다는 12명의 아들 중 넷째이지만 실질적인 장자의 면모를 보이게 됩니다.

 

야곱의 축복의 기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어난 순서로 장자인 르우벤에 대해 49:3~4절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다는 49:8~12절까지 축복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유다는 실질적인 야곱의 장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명목상 장자인 요셉의 후손들은 어떻게 되었고, 유다의 후손들은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요?

장자의 복을 받은 요셉의 후손들은 큰 지파가 되었습니다.

장자의 복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교만하게 됩니다.

여호수아 17:14~18절입니다.

우리는 두 지파인데 한 번만 제비를 뽑습니까?

우리들에게 더 넓은 땅을 주세요.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자파이니까 더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수아가 큰 지파니까 싸워서 차지하라고 합니다.

요셉의 후손은 장자의 복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시편 78:9~11절입니다.

에브라임 자손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준행을 거절하며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

여호와깨서 행하신 일을 잊었습니다.

그들에게 보이신 기이한 일을 잊었습니다.

 

반면 유다 자파의 후손은 어떻게 했을까요?

여호수아 14:6~12절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입니다.

 

레위인 첩사건으로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 지파 간에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를 징계하는데 유다 지파를 사용하십니다.

사사시 20:18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유다 지파를 실질적인 장자로 인정하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가 갈라 집니다.

장자의 복을 받은 에브라임 지파는 편하고 누리는 것이 많아지면서 망가졌습니다.

반면 유다 지파의 후손들은 끊임없이 내려놓고 희생했습니다.

 

이 흐름은 성경 전체를 관통합니다.

첫째 아담이 아니라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혈통 이스라엘이 아니라 마지막 교회입니다.

세상의 이치와 관념을 뒤엎었습니다.

 

어른 노롯을 하는 행위가 장자권입니다.

자기 권리가 있지만 포기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

자기 권리가 침해를 받으면 따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제자는 많은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됩니다.

권리 표기는 장자의 모습입니다.

주님께 권리는 양도하면 옳은 방법으로 권리를 누리게 하십니다.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권리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장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자격 없이 우리에게 장자권을 주셨습니다.

한 집안의 장자의 권리와 특권을 가진 자녀가 있습니다.

저희 집안에서는 저의 바로 위 누나입니다.

형제들을 위해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한 집안의 장자권을 갖길 바랍니다.

희생과 섬김으로 주어진 장자권입니다.

그에 따른 하나님의 복은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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