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교회
  •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시편

여호와의 소리

by ysong 2024. 3. 10.

시편 29:1~11

다윗이 자연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노래한 시입니다.

자연현상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빗소리, 천둥, 지진과 같은 온갖 자연의 소리를 여호와의 소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7번을 반복한 여호와의 소리가 하늘과 바다, 땅과 광야에 미친다고 노래합니다.

높이가 40m, 둘레가 10m에 이르는 레바논의 백향목이 아무리 단단하고 웅장해도 여호와의 통치와 영광 앞에서는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고 노래합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유의 왕이시며, 그런 하나님을 인정하고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1~2절은 천사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초청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까요?

그것은 여호가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3~9절은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사실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포함해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10~11절은 가장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자연을 능력 있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십니다.

평강을 주신다는 것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에게도 힘을 주시고, 내가 다스리는 나라에 평강을 주신다는 것을 노래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무엇인가?

다윗은 자연현상(우레, 번개, 폭우)을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들리자 1~2절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보여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신이 인간이 만나는 방법으로 두 가지 방법을 말합니다.

-계시-신이 인간에게 찾아옴

-사색-명상을 통해서 신에게 찾아감

 

자연계시-우렛소리 천둥, 지진, 우주의 질서, 조화, 아름다움

3-다스리스는 분입니다.

5~6-벼락을 쳐서 교만을 꺾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8-지진을 조정하시는 창조주를 본 것입니다.

10-노아 홍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초자연계시

하나님이 뜻을 가지고 자연현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홍해의 사건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었을 때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대상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병이어,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사건 등이 이에 속합니다.

자연현상을 이용해서 초월적으로 역사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계시해 줍니다.

 

일반계시-역사 속에서 나타난 계시입니다.

악이 멸망하고 의인이 잘됩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심판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특별계시-하나님이 직접 선지자를 보내서 말로서 전달한 사건입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자신이 오신 사건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직접 오셔서 가르쳐 주신 것이 성육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11-가장 하고 싶은 말입니다.

자연을 능력 있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십니다.

평강을 주신다는 것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에게도 힘을 주시고, 내가 다스리는 나라에 평강을 주신다.

 

성경이 특별계시인데, 옛날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에게 특별계시와 같은 것은 기도응답입니다.

나와의 관계에서 특별히 만나는 방법은 기도했을 때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시편 30:1~12

오늘 말씀은 저에게 큰 위로와 확신을 주었습니다.

특히 1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슬픔이 변하게 하셔서 기쁨의 춤을 추게 하시는 분입니다.

30편과 31, 32편은 모두 질병과 관련이 있습니다.

심각한 질병에 걸려 검진을 받고 올려 드리는 감사와 찬양입니다.

 

다윗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시편이 좋은 점은 저자의 신앙을 보고,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시입니다.

지난 후에 기억하고 쓴 감사의 시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과 어려움에 회복된 후에 쓴 감사의 시입니다.

성전 낙성가로 불리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 봉헌, 스룹바벨 성전 봉헌, 마카비 혁명을 성공하고 수전절을 지키면서 성전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봉헌식 때 불렀던 노래입니다.

 

성전이 어떤 곳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예배하는 곳입니다.

예배란 무엇인가?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힘으로 빠져 올 수 없는 곳에서 끌어내셨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내가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알 때 참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용서받은 것, 구원받은 것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부상과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순간이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조금 담겨 있는 질병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6절은 어떤 상황에서 질병으로부터 회복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6절에서 다윗은 교만, 자기 확신 가운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안전할 때에 나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편안함과 잘됨이 계속될 것이라는 획신입니다.

7절에 주님께서 자신을 흔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거부하고 있음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의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거부하다, 거절하다, 자신의 은총을 거둬들이다는 의미하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교만과 자기 확신으로만 보기 어렵지만 몸과 마음으로 잘 관리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앙적으로도 많이 해이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려운 고통이 찾아오면,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적인 고통입니다.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요?

시인은 기도했습니다.

2절에서 자신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말합니다.

8절에서도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자비를 간구했다고 말합니다.

10절에서도 여호와께 자신의 기도를 듣고 자신을 사망의 무덤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9-뻔뻔함을 볼 수 있습니다.

살려주시면 진리를 선포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병상은 기도의 자리입니다.

의학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끌어내사, 고치셔서, 살려내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11~12절에서 다시 반복합니다.

12절은 11절의 결과입니다.

탄식과 춤, 베옷과 기쁨의 옷이 각각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질병에서 회복되어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상황에서 건짐을 받으니 어찌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감사와 찬양을 혼자만 할 수 있겠습니까?

 

4~5절에 자신의 신앙공동체 동료들에게 여호와께 노래하며 감사하라고 요청합니다.

개인적인 찬양에서 공동체로 확대합니다.

감사는 개인을 넘어갑니다.

감사는 찬양으로 터져나옵니다.

감사와 찬양은 같은 개념입니다.

 

이렇게 찬양과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5절에 담겨 있습니다.

진노와 은총, 잠깐과 평생, 저녁과 아침, 슬픔과 기쁨이 각각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에게 임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은 장구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슬픈 가운데 놓여 있을지라도 독 슬픔이 바꾸어 기쁨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고 구원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원수, 질병, 죽음은 누구나 인생에서 만나는 적입니다.

어둠으로 시작되지만 기쁨으로 은총으로 기쁨을 맞이합니다.

징계는 짧고 은혜는 깁니다.

 

 

 

 

 

시편 31:1~15

질병은 다양하고, 원인도 다양합니다.

30편의 6~7절에서 교만으로 인해 겪게된 육체적인 질병을 다루고 있습니다.

31편은 9~13절에 원수들의 비방과 조롱으로 인해 겪게된 정신적인 고통을 다루고 있습니다.

32편은 3~4절에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겪게된 영적인 고통을 다루고 있습니다.

각종 질병과 고통에 대한 신앙적인 해석에 큰 교훈을 줍니다.

 

31편은 마틴 루터가 좋아한 시로 알려졌습니다.

정신적인 질병은 고통으로 표현합니다.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 다윗은 사울왕의 조롱과 주변 사람들의 비난으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이 대놓고 나쁘게 말함, 어디에 하소연하겠습니까?

다윗은 모든 하소연을 하나님께 쏟아놓았습니다.

 

다윗은 겪은 고통의 원인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상처가 되었습니다.

9절에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습니다.

10절에 죄악들 때문에, 뼈가 쇠하였습니다.

11절에 대적 때문에,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소문을 들은 이웃이 모욕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나를 피하기도 합니다.

18절에 악인들의 거짓 입술로 비방과 경멸의 말들로 다윗을 공격했습니다.

 

이에 따라 겪은 정신적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12절에 깨진 그릇처럼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신앙이 좋은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드러내는 것입니다.

깨진 그릇과 같다는 것입니다.

버려진 존재와 같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사방에서 자기를 치기 위한 음모가 진행됩니다.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꾀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적자들의 혀와 입술을 통해 쏟아내는 비방과 조롱과 악담으로 겪은 정신적인 고통의 순간에 다윗은 하나님께 피하게 됩니다.

고통이 하나님께 피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1~4절입니다.

바위이시며, 산성이신 하나님께 피하게 합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산성으로 비유합니다.

산성으로 피하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피해서 인도하시도 지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4절입니다.

자기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내 하나님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고통이 주는 선물이 있습니다.

5절에 내 영을 부탁하게 됩니다.

믿음의 완성입니다.

6절에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세상의 질서와 반대로 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질서가 뒤집힌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가정이 세상과 다른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겨주는 원리입니다.

19절에 여호와가 준비하신 은혜가 얼마나 큰가에 대한 감격하게 됩니다.

베푸신 은혜가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7절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21절에 여호와를 찬송하게 됩니다.

 

육체적인 질병이나 정신적인 질병이나 모든 감사로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합니다.

 

고통에서 떠나 살 수 있는가요?

하나님을 잘 믿는데 고통을 당하는 분들 봅니다.

고통을 통과하면서 깨달은 것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고통 때문에 손해 보지 않았고, 고통이 주는 특별한 보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시편 321~11

어거스틴이 좋아했던 시입니다.

32편은 다윗이 영적인 질병으로 얼마나 고통 속에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 고통에서 어떻게 검진받아 복 있는 사람이 된 지를 보여줍니다.

 

다윗은 십계명의 5, 6, 7, 10번째 계명을 범했습니다.

밧세바 사건을 통해 살인, 간음, 도둑질, 이웃의 것을 탐한 죄를 지었습니다.

약자에게 행사해서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습니다.

16개월 동안 숨기면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이 정도면 다른 왕에 비하면 큰 죄가 아니리며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옵니다.

잠을 자지 못하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합니다.

일상의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죄책감에 눌려 살게 됩니다.

그가 입을 열지 않을 때, 죄를 고백하지 않을 때 어떤 심정인지를 3~4절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비참한 상태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입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통 가운데 소진됐는가를 보여줍니다.

온몸에서 진이 빠지고 종일 신음할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죄가 장악한 상태는 종일 신음하고 뼈가 쇠하게 됩니다.

죄의 합리화, 죄를 숨기는 것은 인생의 그늘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갖고 있는데, 태연하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4-어떻게 입을 열 수 있게 되었는가?

하나님이 누리시기 때문입니다.

죄의 실체가 밖으로 자복하기 전까지는 실제로 하나님이 짓눌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짓눌렀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5-자복하니까 드러내니 사함을 받았습니다.

고백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과를 안합니다.

공직자들이 사과를 안하니까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죄를 고백해서 사함을 받는 자가 1~2절에 복 있는 사람입니다.

허물, , 마음의 간사함, 정죄는 죄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허물=반역=알면서 범하는 것입니다.

의도적인 죄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함, 가려짐, 없고,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복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누리는 진정한 복입니다.

부차적인 복에 취해 진정한 복을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6절 이후는 간증하면서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용서를 구할 기회가 주어질 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죄를 숨기지 않고, 영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처럼 영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약은 없습니다.

죄책으로 인한 고통에서 검진받게 됩니다.

 

7~8-하나님이 보호하시고, 훈계하심에 따라 살라고 교훈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새로운 길을 걷게 됩니다.

 

9절은 하나님의 훈계에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자유를 가지고 행할 것을 교훈합니다.

자발적인 자유의 정신으로 여호와 앞에 자신의 죄를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과 노새는 입에 물린 재갈에 의해서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악인과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악입니다.

하나님의 신뢰하지 않는 모든 삶의 태도가 악입니다.

 

11절에 의인들아=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죄 사함을 받은 자입니다.

 

허물이 있는데, 죄가 있는데 사함을 받고 가려짐을 받은 자입니다.

허물과 죄에 사로잡히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잡습니다.

죄를 마음에 숨겨 놓고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경건한 자는 죄를 짓고 태연한 척 살지 못합니다.

사죄의 확신이 은혜입니다.

 

용서를 받는 것과 용서하는 것 중에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까요?

용서받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하는 사람이 됩니다.

영적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시편 33:1~22

찬양시입니다.

찬양에 관한 내용입니다.

누가, 무엇을 찬양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어쩌면 30편의 육체적인 질병, 31편의 정신적인 고통, 32편의 영적인 질병에서 벗어난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드리는 주체인 우리가 누구인가?

1절에 주체가 나옵니다.

의인들, 정직한 자입니다.

32편과 연결된 시로 보기도 합니다.

32:9~11절과 연결하여 보면, 의인은 허물에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입니다.

의인들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입니다.

 

찬양은 무엇인가?

찬양 자체가 노래가 아닙니다.

음악이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단하시군요, 선하시군요, 자비하시군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찬양은 마땅한 일입니다.

1~3절에 다섯 개의 동사들이 모두 명령형으로 사용됩니다.

즐거워하라, 감사하라, 찬송하라, 노래하라, 아름답게 연주하라고 명령형입니다.

 

명령형을 쓰고 있습니다.

선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인된 자들의 정체성입니다.

찬송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먹뛰 성도들도 있습니다.

구원해 주셨는데, 은혜도 아는데,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는 성도를 말합니다.

찬송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반응으로 드리는 것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의인은 여호와를 즐거워합니다.

여호와가 주는 것을 즐거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을 원하는 것입니다.

각종 악기를 사용하여 찬양합니다.

노래와 음악과 악기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표현할 때 음악과 노래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담긴 기도인데 곡조에 담아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신앙의 본질입니다.

찬양을 위한 수단인 음악과 노래는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피아노가 술집에서 쓰는 악기였고, 드럼이나 전자기타를 사탄의 악기라고 했습니다.

불경하게 생각했습니다.

요즘 자연스럽게 예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본질적인 요소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조금 넓게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 찬양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3절에 새 노래는 바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을 배우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새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눈을 뜨고 외치는 노래입니다.

이런 새 노래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찬양의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4~9-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입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여호와입니다.

찬양의 시작은 창세기부터입니다.

말씀은 정직합니다.

참되고 정확합니다.

6절의 말씀처럼 세상을 창조, 9절의 말씀처럼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말씀 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10~12-하나님의 계획, 뜻입니다.

자신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세상을 다스립니다.

10-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면 세상의 계획을 폐하십니다.

 

13~19-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굽어살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힘은 스스로 구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만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늘 돌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올해는 찬양으로 시작했으니, 찬양으로 마칠 것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시편 34:1~22

가장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시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미친 척을 해야만 했던 사건입니다.

삼상 21:12~15절의 상황입니다.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절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절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절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두려움은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하필이면 자기 죽인 골리앗의 고향인 가드로 망명합니다.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입니다.

목숨보다 체면을 우선으로 하는 시대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미친 척을 해야 하는 최악의 순간입니다.

목숨의 촌각을 다투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순간적인 응답으로 살아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최악의 경우,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검진받은 후 신앙의 국물로 우려낸 시입니다.

비참한 일을 겪은 후에 찬양하면서 살겠다는 결심이 담겨 있습니다.

1~2절에 찬양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 다짐을 엿 볼 수 있습니다.

항상이라는 단어에 그의 의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치스러운 상황을 포함하여 항상 찬양하겠다고 결단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기도응답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4, 6절입니다.

비참한 상태에서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여호와께서 듣고 응답하셨습다는 것을 영적인 공동체와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신앙은 응답을 경험하는 것과 응답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응답 받은 것을 지인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는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도움을 간증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의 공유로 그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삶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8-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고, 여호와께 피하고

9-여호와를 두려워 하고

10-여호와를 구하고

13~14-선을 행하라

다윗은 젊은이들에게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여호와의 가르침, 그의 말씀애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삶의 결과입니다.

16-악인들은 심판하기고

17-의인들이 부르짖을 때 그들을 환난에서 구원하시고

18-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건지심을 받습니다.

 

두려움 넘어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너무 커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자기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입니다.

절망까지도 나를 복주기 위한 것임을 알게 합니다.

나에게 겸손을 배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시편 351~28

나와 다투는자와 다투소서

저주의 시입니다.

다른 시와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1) 대적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과 무리들을 지칭하는 표현들입니다.

대적은 사울 왕과 사울 왕을 따르는 무리입니다.

1-나와 다투는 자, 나와 싸우는 자

3-나를 쫓는 자

4-내 생명을 찾는 자,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

7-까닭없이 나를 잡으려는 생명을 해하는 자

11-불의한 증인들

15-불량배

16-조롱하는 자

17-멸망자, 사자들

19-부당하게 나의 원수된 자,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

26-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 나를 향하여 스스로 뽐내는 자들

 

다윗의 대적들은 전쟁에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다윗의 대적들은 법정에서 위증자들입니다.

다윗이 힘든 이유가 있습니다.

대적들이 처음에는 좋은 관계였습니다.

다윗은 대적에 선을 행했습니다.

13-병들었을 때 모친상을 당한 것처럼 기도해 주었습니다.

14-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한 같이 대했습니다.

15-그러나 그들은 다윗에게 악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었습니다.

 

2) 과격하고 경건하지 않은 저주의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4-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8-더 심하게 저주하고 있습니다.

멸망에 빠지게 하소서,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26-저주의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끝까지 저주하고 있습니다.

전환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표현에 불편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경건한 책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면 절대로 경건하지 않습니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대로 드러내 보입니다.

신앙인은 경건한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착하고 신실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야곱은 속이는 자입니다.

 

과격한 표현 속에 담긴 다윗의 영성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을까요?

진짜 악인이라면 이런 글을 하나님께 쓰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복수하고 폭력을 행했을 겁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행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표현했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약함과 분노를 표현했을 뿐입니다.

 

-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가장 억울하고 슬픈 일을 꺼낸 겁니다.

하나님께 먼저 나가서 표현할 정도로 가깝다는 겁니다.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쏟아 놓을 수 있는 관계입니다.

 

방패가 되시며, 피난처이며, 법정에서 변호해 주는 분에게 쏟아 놓았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정의로 판결해 주시는 분에게 쏟아 놓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으면 갚고 싶어집니다.

능력이 없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다윗은 능력이 있었지만 갚지 않습니다.

 

 

 

 

 

 

 

 

 

 

 

 

 

 

 

 

 

시편 36 1~12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기 때문에 주의 날개 아래에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자하심의 혜택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큰신가?

누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혜택을 누리는가?

 

여호와 종 다윗의 시입니다.

시의 성격과 상황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다는 의미입니다.

노예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모델국가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잊으면 실수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종이라는 표현을 통해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더불어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끄는 자라는 겸손한 자세

 

1~4-악인의 특징

5~9-하나님의 성품

10~12-종합해서 간구하는 내용

 

악인의 특징

1-직접적으로 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삽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없는 분으로 취급합니다.

자기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3: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2, 4절에 스스로란 말처럼 악인은 스스로 잘났다고 착각합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의 죄악은 드러나지 않고, 미움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악인은 죄를 잘 숨깁니다.

악인은 잘 속이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3-악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죄악과 속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침상에서 죄악을 생각합니다.

미가 2:1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유다의 지도자들이 지은 죄악의 모습입니다.

죄에 대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입니다.

악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악에 대해 거부감이 없습니다.

악인을 종합하면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은밀하게 죄를 짓습니다. 죄를 잘 숨기고, 사람들을 속입니다.

내일 죄를 생각하고 죄를 짓는 자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5~9절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합니다.

5~6-하나님의 성품이 크고 깊고 넓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크고 깊습니다.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고 아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7-하나님의 크고 넓은 인자하심이 있기에 사람들이 주의 날개 아래에 피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피하는가보다 어디로 피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8-주의 날개 아래 있는 자의 풍성함을 누립니다.

9-생명의 근원을 노래합니다.

 

10~12-악인으로부터 보호받기를 기도하는데, 기도의 대상에 대한 순서가 바뀝니다.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악인의 행위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없으면 우리가 악인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37:1~40

35편은 악인들에 대한 묘사로 가득합니다. 불의한 증인들, 불량배, 조롱하는 자, 멸망자, 사자들 등등.

36편은 악인들의 본성을 묘사합니다.

그들을 대적하여 악인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37편은 악한 때 어떻게 사나?

하나님이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악한 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원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원리는 1, 8, 9-불평과 시기를 그쳐라.

그들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평으로 생명을 사람을 세우지 못합니다.

불평도 습관입니다.

특히 교만한 사람이 불평을 많이 합니다.

직장에서 불평이 많은 사람은 중간에 그만둡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책임지는 자리까지 갑니다.

 

두 번째 원리는 3-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도덕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윤리와 도덕은 체면입니다.

자기 의로움을 근거로 하지 않습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4-하나님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기로 결정한 사람입니다.

기뻐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기로 결정한 사람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5-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라

맡기면 걱정하지 않습니다.

여행할 때 짐을 맡깁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원리는 7-침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이기에 침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고 변명이 많은 시대에 침묵이 능력입니다.

 

다섯 번째 원리는 9, 11, 22, 29, 34, 마태복음 5:5-온유하라

북미대륙에서 늑대는 사라지고 사슴만 남았다고 합니다.

강하고 잔인한 늑대는 사라지고 약한 사슴만 남았다고 합니다.

의인들의 자손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10-악인들은 잠시 동안 득세할 수 있습니다.

2절의 표현처럼 풀과 같기 때문입니다.

9절의 표현처럼 끊어질 것입니다.

10절의 표현처럼 멸망할 것입니다.

악인들은 15-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를 미워하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만 불편합니다.

행복의 원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의인은 16-가난하지만 마음이 편합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환경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라고 합니다.

과거보다 풍족해졌는데 다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면 마음의 소원을 이뤄주십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시편 38

표제어가 다윗의 기념하는 시입니다.

70편의 표제어와 비슷합니다.

기념하는 시인데 절망과 청원의 내용입니다.

기념의 시인데 한마디도 희망이 없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존재임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질병에 걸렸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 내릴 만큼의 고통이 수반하는 질병입니다.

이 질병은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질병이 죄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9장에 등장하는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사람이나 욥의 경우는 죄와 무관한 질병입니다.

그런데 어느 질병은 죄와 무관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질병이 걸렸을 경우는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질병으로 인해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우울과 불안에 내몰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표현하고 무엇을 청원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윗은 죄로 인해 징계받아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책망받고 있습니다.

1~3절의 주의 노하심, 주의 분노하심, 주의 화살, 주의 손, 주의 진노로 하나님이 징계하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8편 전체를 살펴보면 다윗이 특별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기 때문에 민감하게 징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1-책망과 징계를 당하고 있습니다.

2-징계에 대한 묘사입니다.

3-징계의 결과로 육신이 괴롭습니다.

5~10절을 보면 신체와 관련된 단어들 몸(6), 허리(7), (7), 심장(10), (10)이 징계로 인한 질병이 다윗의 몸 구석구석에 침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의 고통보다는 더 힘든 것은 마음의 고통입니다.

11절은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들, 친척들도 멀리 가버렸습니다.

욥의 호소와 비슷합니다.

가족들도 외면합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악한 자의 험담이 들립니다.

지구상에 홀로 남은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이런 고통을 당한 사람이 아는 특별한 체험입니다.

 

12절에 게다가 악한 자들은 올무를 놓고 있습니다.

다윗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먼저 13~14절입니다.

사람에게 반박하지 않습니다.

참아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이 하나님을 얼마나 바라볼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사람이 보이느냐, 문제가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때에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편 121:여기서 산에는 산당이 있었습니다.

우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산을 지으신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21-끝까지 붙잡고 있습니다.

하나님만큼은 멀리하지 마세요.

징계하지만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39 1~13

38편과 비슷한 주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질병에 걸렸다고 고백합니다.

38:1~3절에서 다윗은 주의 노하심, 주의 분노하심, 주의 화살, 주의 손, 주의 진노로 하나님이 징계하심을 표현했습니다.

39:10~11절에서는 징계를 받아 쇠망하고, 소멸하게 되어 인생이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38편에서는 징계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자세히 묘사했다면 39편에서 징계를 통해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8편과 39편은 과거에 병이 들어서 고통당한 것을 회고하면서 쓴 시입니다.

여두둔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여두둔은 사람 이름으로 소위 찬양대장입니다.

다윗 왕이 등용했던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으로 성전에서 찬양대와 악사로 봉사하던 3대 인도자(아삽, 헤만, 여두둔) 중 한 사람입니다.(역대상 25:1)

62, 77편이 같은 형식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다윗은 질병이 걸렸는데 죄 때문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다윗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1) 입을 닫았습니다.

39:1~2절과 38:13~14절과 같습니다.

혀를 조심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말로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잠히 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3절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다시 감정이 올라옵니다.

침묵하겠다는 결심이 도리어 내면의 고통과 걱정으로 몰아갑니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게 됩니다.

 

다윗은 우리오 다른 점입니다.

4절에 다윗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기도의 자리에서 자기의 참모습을 들여다봅니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보게 됩니다.

상황을 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한계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결국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다윗이 깨달은 것은 5~6절입니다.

잠언서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인생은 한 뼘의 날, 허사, 그림자, 헛된 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합니다.

재물이 누구 것이 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권력, 재물이 헛된 것입니다.

 

그런 후에 다윗은 시선이 하나님께 향합니다.

7절입니다.

소망은 주께 있습니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여~~이 호칭만큼 위대한 것이 없습니다.

고난에 들어가면 인생의 주인은 소유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망은 주께 있습니다.

 

11-권세도 하나님이 치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12절에 자신이 나그네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거류민입니다.

12-주와 함께 하는 나그네입니다.

혼자 나그네로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혼자이어서 불안하니까 쌓는 것입니다.

용서는 시선을 바꾸는 것입니다

악인이 아니라 연약함을 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시편 40:1~3

다윗의 인생에는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진 적이 많았습니다.

다윗이 빠진 기가 막힐 웅덩이란?

이 웅덩이의 특징은 예측하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왔는데 시기를 받아 사울왕에게 쫓기는 기가 막힐 웅덩이,

귀하게 키웠는데 압살롬, 가장 사랑하는 자식의 배신으로 찾아온 기가 막힐 웅덩이,

저녁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유혹에 넘어간 기가 막힐 웅덩이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예측하지 않는데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가 막힐 웅덩이는 어떤가요?

질병, 인간관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밀려오는 사건들입니다.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들입니다.

 

이 웅덩이는 모래나 진창으로 만들어진 웅덩이입니다.

스스로 빠져나오려고 하면 미끄러져 더 깊이 빠집니다.

밖에서 도움을 받지 않고는 탈출할 수 없는 웅덩이입니다.

 

다윗이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졌을 때 취한 신앙적인 행동에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다윗은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1절입니다.

부르짖음에는 감정이 실려 있는데, 모든 감정을 하나님께 쏟아부은 것입니다.

다윗은 기가 막힐 웅덩이를 만났을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가장 위급한 위기를 찾아온다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가장 위급한 위기의 상황입니다.

지금이 바로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할 때입니다.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다른 것에 빼앗겼던 우리들의 시선을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바짝 귀를 대고 듣고 계시는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2) 또 하나 필요한 것은 기다리고 기다렸더니입니다.

기도외예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이 신앙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기다림을 통해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기다림의 과정도 응답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하는 자입니다.

기다림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으로 이해하여 합니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상황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3) 새 노래를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3절입니다.

구원을 찬양하는 새 노래, 가사를 써서 올린 새 노래를 주셨습니다.

과거에서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가사로 쓴 새 노래를 주셨습니다.

새 노래는 과거이면서 미래의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나를 끌어 올리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석 위에 세워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더불어 평범한 삶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4) 자신의 죄성을 의식했습니다.

12, 17절입니다.

항상 죄성을 의식하면서 낮은 자세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겸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합니다.

17절의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것입니다.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입니다.

새 노래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비결입니다.

 

 

 

 

 

 

 

 

 

 

 

 

 

 

 

 

 

 

시편 41:1~13

첫 권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1권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복 있는 사람으로 마칩니다.

시편 1편은 악인들과 거리를 두며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된 자라고 노래합니다.

시편 2편은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편 41편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자들은 복되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마음, 즉 긍휼의 마음입니다.

율법을 묵상하거나 하나님께 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삶으로 실천하는 자가 더 복되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한 단면, 즉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것이 복된 자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적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훈합니다.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내는 것은 것은 더 중요합니다.

 

가난한 자는 누구인가요?

재물이 부족한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핍한 자, 연약한 자, 무기력한 자, 무력한 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가난한 자입니다.

움켜쥐고 있는 가난한 자가 보여야 합니다.

영혼의 가난한 것이 보여야 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다윗은 고난을 겪어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가 복을 받게 됩니까?

여호와께서 건지시고, 여호와께서 지켜 살게 하시고, 여호와깨서 병상에서 붙드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고 자가 복된 자입니다.

 

현실은 어떤가요?

3-, 4-범죄, 5-원수, 9-친구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9절에 묘사하는 인물은 압살롬 반란 때 등을 돌린 아히도벨입니다.

 

형통은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들의 손에 넘겨두지 않습니다.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건져주셨습니다.

 

4절과 10절은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고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를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겪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발견할 것이 무엇인가?

고난이 선물인데 고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10절에 그러하오나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그렇게 아니 하실지라도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어 모든 괴로움을 이기게 하십니다.

낙담하지 않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각 권의 마지막 시편은 찬양으로 마칩니다.

누가 찬양하는가?

12절에 온전한 자입니다.

성품이 바뀐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붙드셔야 인생이 바뀐 사람입니다.

온전케 된 그 사람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찬양으로 마치게 됩니다.

나를 온전하게 붙드시는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복입니다  (1) 2023.11.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