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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복입니다

by ysong 2023. 11. 29.

시편 1:1~6

영적인 거장들은 시편을 엄청나게 높게 평가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영혼의 거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칼빈은 영혼의 해부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영혼의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는 의미로 표현했습니다.

 

시편은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서와 함께 시가서로 분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명령을 실천하고 우리가 믿음과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체험 속에서 우러나온 기쁨과 감사와 탄식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5권 시집입니다.

1~41, 42~72, 73~89, 90~106, 107~150

1-창세기, 2-출애굽기(구원), 3-레위기(율법), 4-민수기(광야)-5-신명기(미래)

저자도 많습니다.

탄식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을 마칩니다.

3편의 탄식으로 시작해서~45편 다윗의 찬송시로 마치게 됩니다.

탄식이 찬양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73편을 쓴 다윗과 아삽(12), 고라(11), 솔로몬(2), 모세(1), 에단(1), 작가미상

분류를 하면 탄원시가 1/3로 가장 많습니다.

찬양시, 감사시, 토라시, 시온시 등등으로 붙류됩니다.

쓰여진 기간은 모세부터 아삽까지 1천 동안 쓰여진 시입니다.

 

1~2편은 시편 전체를 여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편에 26번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아쉬레이는 영적이고 물질적인 모든 복을 포괄하는 특별한 복을 받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복 있는 사람이지 복을 받은 사람이나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일까요?

창세기 1:27~28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아담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복 없는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망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자기들이 앉으므로 복을 상실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12:2절이 너는 복이 될 지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갈대아우르에서 불려진 사람입니다.

머무는 장소가 달라진 사람입니다.

마음이 낮은 곳에 향한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시면서 첫번째 내용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8복의 사람은 낮은 곳을 향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시편을 많이 인용했는데, 시편의 복 있는 사람을 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1:3, 14:13, 16:15, 19:9, 20:6, 22:7, 22:14절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위치, 장소, 관계, 마음,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관계를 명확히 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은 합니다.

따르다=걷다=할라크=삶의방식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과 관계를 끊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삶의 방식,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1~3절 의인들의 삶의 방식과 그 결과

4~5-악인들의 삶의 방식과 그 결과

6-의인과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이 의인과 악인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잣대로 작용

 

3가지를 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말 것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 것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 것

이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의미하는 동작 동사가 따르다, 서다, 앉다입니다.

이들과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r, 본받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3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현실에서는 악이 철에 따라 열매는 맺는 것처럼 보이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처럼 번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악들의 결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바람에 휘날리는 겨는 악인들의 운명을 보여 줍니다.

안전된 터를 잡지 못하고 바람에 흩날리며 부유하는 모습이 악인들이 겪게 될 운명입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절로 맺습니다.

물을 충분히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품종의 나무라도 바싹 마른 황무지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지만 죽은 듯 보이는 나무라도 물가에 심겨 물이 공급되면 살아나고 가지에 잎사귀가 돋아나며 열매를 맺게 됩니다.

 

6절에 의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면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면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은 이 확신 때문입니다.

 

 

 

 

 

 

 

 

 

 

 

 

 

 

 

 

 

 

 

 

 

 

 

 

 

 

 

 

 

 

 

시편 2:1~12

11절에 복 있다로 시작해서 복이 있다로 마칩니다.

복 있는 사람이 신앙의 인생길에 여러 가지 탄식과 기쁨, 감사를 만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시편 1편은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합니다.

2편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구분합니다.

의인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을 부음을 받은 왕입니다.

구약 시대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습니다.

신양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소개합니다.

그 의인은 여호와께 피하는 자입니다.

 

악인은 이방나라, 민족, 세상의 군왕들, 관원들이 악인입니다.

3절에 우리가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왕을 공격하기 위해 하나가 됩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은 분노하고, 음모를 꾸미고, 저항하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름부은 택한 백성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꾸미는 이유가 있습니다.

군왕들은 자신이 왕이 되어야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세운 질서를 깨뜨려야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통치하고 계신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갖고 있습니다.

진정한 왕이 누구인가에 대한 선포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하늘에 좌정하신 하나님=왕입니다.

왕은 자신을 대적하는 열방과 만족들을 향해 가소로운 듯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웃으시다, 조롱하다, 떨게 하다에서 확인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절대권력자들을 어떻게 보시는가?

먼저 하나님이 비웃고 계십니다.(4)

그들을 안타까워하는 비웃음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5)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십니다.

메시아를 세우셨습니다.(6)

시온 산에 세운 왕은 다윗입니다.

시온 산에 세운 진정한 왕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거룩한 구원자를 세우십니다.

골고다에 세우셨습니다.

누가 왕인가를 밝혀 주셨습니다.

 

시온에 세운 왕은 무엇을 하는가?

왕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7)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낳았으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13:33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일으키셨습니다.

너도 살 것이다.

너의 아픔과 눈물도 다시 태어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것이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7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그분이 아버지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열방을 유업을 줄 것입니다.(8)

하나님이 통치하십니다.(9)

악인을 철장으로 깨뜨릴 것입니다.

8~9-하나님의 전능,

주고, 대항하는 자는 깨뜨린다.

 

이 진리를 아는 복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혜와 교훈은 무엇일까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합니다.(11)

여호와께 입맞추라=예배하라(12)

경의를 표하는 뜻이기도 하고, 그의 말에 복종하는 뜻이기고 합니다.

여호와께 피합니다.(12)

 

대관식 때 불렀습니다.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너도 왕이다, 왕이 등극하듯이 당당하게 살아라고 말씀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3:1~8

탄원시입니다.

신앙인의 인생길은 탄원으로 시작하여 찬양으로 반드시 마칩니다.

찬양으로 가는 여정도 단계가 있습니다.

시편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굵직하게 보면 시편 37편의 단계입니다.

불평의 단계입니다. 1, 7, 8절입니다.

 

73편의 단계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 질문하는 단계입니다.

하박국도 그랬고, 예레미야도 질문을 합니다.

성소에 들어가 해답을 얻었습니다.

저도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92편의 단계입니다.

1~6절은 아침마다 밤마다 묵상하고 있습니다.

7절은 악인들이 흥왕합니다.

상황은 똑같았지만 주야로 묵상하니 실족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악인들을 묵상했는데, 이젠 하나님만 묵상하니까 현실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입니다.(10~15)

의인이 번성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종착점은 무엇일까요?

149편의 단계입니다.

2장의 이방나라들, 민족들, 군왕들, 관원들이 어떻게 될까요?

찬양과 기도로 나타날 결과입니다.

7~8절에 그들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뭇나라들, 민족들, 왕들, 귀인들은 사슬로 결박하고 철고랑이로 결박합니다.

 

150편에 찬양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만 찬양합니다.

 

탄원시에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입니다.

신뢰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입니다.

배신을 당했는데, 잊히지 않는 분이 있을 겁니다.

같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배신의 밤을 지내신 분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겉으로 드러난 일은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실은 다윗이 지은 죄의 징계입니다.

사무엘하 12:11~12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절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다윗의 고난이 가장 심각할 때입니다.

사울왕에게 쫓겨날 때는 의로운 고난이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힘들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고난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내 죄로 인한 고난이 대부분입니다.

다윗이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무서운 징계를 당합니다.

가장 큰 위기를 겪습니다.

 

1절에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힘이 빠지니까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가를 알게 됩니다.

반란의 현실에 적이 많아지는 이유입니다.

적군으로 바뀐 사람이 한순간에 돌아서서 비난의 소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충신이 오늘은 역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다 압살롬의 편에 섰던 것입니다.

알고보니까 다 적군이었습니다.1-많다는 것은 내 죄가 많다는 것입니다.

충신이 돌아서는 것이 내 죄 때문이 아닌가요?

 

더 힘든 것은 2절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존재이구먼, 다윗 별거아니구먼, 조롱하고 조소하는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시므이와 같은 자가 노골적으로 비난합니다.

그때 다윗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므이를 죽이겠다는 장군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했으니까 욕하는 거지 내버려두라고 말합니다.

높은 곳으로 인도하신 분이 낮은 곳으로도 인도하시는 것까지 신뢰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허락하신 이유가 있겠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3~6절은 그런 상황에서도 단단히 붙잡고 있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방패, 영광, 머리를 들어 올리는 자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의 경험입니다.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입니다.

비난을 지켜주시는 방패이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영광입니다.

머리를 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머리를 들어주시면 앞이 보입니다.

앞이 보이면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개를 들게 하시는 분입니다.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 소망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으시면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 10:28~29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6-엄청난 사람이 진을 쳐도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사환에게 가르쳐 준 믿음입니다.

믿음은 선포입니다.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겁먹어서 꼬리 내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7~8-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사람의 말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탄식이 구원의 노래로 바뀌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시편 4:1~8

시편 3편과 4편은 닮았다고 해서 쌍둥이 시라고 부릅니다.

3편은 5절의 말씀에 누워 자고 깨어 일어나서라고 해서 아침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4편은 8절에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라고 해서 저녁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시인은 아침과 저녁에 누가 붙들고 있으며, 누가 안전하게 지켜주시는가를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방패 되시고, 영광이시며, 머리를 들게 하신 하나님을 부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곤란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3편의 일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내 생명이 보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날은 없습니다.

여전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전하게 지켜주시어 편안과 은혜의 저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4편은 우리의 저녁 기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알려 줍니다.

나를 안전하게 하시는 이는 여호와입니다.

 

1절은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1절에 내 의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릅니다.

시편 전체에서 이곳에 한 번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당한 일을 겪었는데,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만 나의 의를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내가 처한 위기 상황을 공명정대하게 판단해 주십니다.

 

자기는 의롭다고 합니다.

자기는 경건하다고 합니다.(3)

세상에 선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 때 하나님이 여기 있자나라고 말해 달라고 합니다.(6)

하나님은 공명정대하십니다.

우리를 선악간에 판단하시며 의의 삶에는 상을 주시고 불의한 삶에는 심판을 행하십니다.

단지 우리의 시간과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기다려줄 뿐입니다.

위기를 만나면 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명정대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위기와 시련을 통과할 때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해 주셨습니다.

곤란을 당할 때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곤란 중에 너그럽게 했습니다.

좁은 곳에 갇힌 것 같은데 넓은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창공을 날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내 길과 다른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망해도 잘되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기에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기도 응답의 근거입니다.

내 편이 되시는 의의 하나님입니다.

 

아직 의의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들을 향해 권면합니다.

여기서 인생들은 힘 있는 유력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은 영광을 욕되게 합니다.

세상들은 어떤가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의 몸으로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헛된 일을 좋아합니다.

세상의 본질은 어둠이고 거짓입니다.

 

그들을 향한 말이 4절입니다.

인생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갖고 죄 짓지 말며 잠잠하라고 권고합니다.

인생들이 저녁에 무엇을 하는지 알려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미가 2:1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경건한 사람은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하합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가난한 심령입니다.

마음이 갈라졌으면 의의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주의 얼굴을 들어 나에게 비춰주십니다.

그의 빛이 내면에서 솟아나는 기쁨입니다.

 

7~8절은 하나님의 빛이 비친 열매입니다.

생존의 기쁨, 수확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입니다.

평안과 안식의 기쁨입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없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기에 8절의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되니까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를 안전케 하시는 분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괴로운 날이 지났지만 하루를 마감하는 것입니다.

하루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세상은 의롭지 않습니다.

불의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 계신 것 같으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시편 5:1~12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고난이 없다면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고난이라는 선물을 주신 이유입니다.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이 깊은 고난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관해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1~3절은 기도의 형태와 시간을 알려 줍니다.

다윗이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의~단어가 8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과 나와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간절한 표현입니다.

그 간절함으로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나의 말, 나의 심정,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나의 말의 기도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는 기도입니다.

나의 심정 기도는 가슴에 담아 놓고 신음하는 기도입니다.

한나처럼 하는 기도입니다.

마음에 담긴 제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통성기도입니다.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을 때 부르짖는 기도를 합니다.

 

보통 이렇게 기도할 때는 죽을 병에 걸리거나, 당장 이뤄질 일을 위해서나, 사업이나, 다급한 문제가 있을 경우입니다.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부르짖으면서 기도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기도한 내용은 무엇일까요?

2절의 의 왕,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내가 왕의 노릇을 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8절로 이어집니다..

주의 의로~~~, 의를 위해 기도합니다.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소서.

나는 의롭지 않습니다.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일을 하게 하옵소서.

거룩하게 살지 못했지만 내 인생이 끝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는 자인가?

 

다윗은 언제 이렇게 기도했나요?

아침에 기도했습니다.

아침은 하루를 시작하는 첫 출발입니다.

아침의 기도는 하루를 주님께 드리기 위해 준비입니다.

부르신 곳에서 예배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예배자로 살겠습니다.

 

다윗은 7절에서 예배자로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성전에 들어가 예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것이고 고백합니다.

경외감으로 하나님을, 사람을 대해겠습니다.

오직 나는~~나 한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대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의롭게 살고 싶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존경하면 관계가 개선됩니다.

주님이 먼저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면 관계가 개선됩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4~6절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때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외면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만한 자, 행악자, 거짓말하는 자,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 속이는 자를 싫어합니다.

이들은 다윗의 원수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다윗의 주변에 원수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에 대한 표현 9~10절입니다.

안에 생명이 없으면 목구멍이 열린 무덤입니다.

그들의 죄악은 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첨은 나를 위한 말이고, 충고는 상대방을 위한 말입니다.

거짓말과 아첨뿐입니다.

속이 더러운 사람입니다.

로마서 3 :11~18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일반적인 세상에 대한 묘사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 나가는 시간이 아침입니다.

함정을 파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다윗은 아침 시간에 영적인 무장을 했습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인가?

11~12절은 기도의 응답입니다.

주께 피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피할 곳이 되는 것이 복입니다.

피난처는 평상시 확인해 두어야 합니다.

아무 문제가 없을 때 나의 피난처를 찾는 것이 복입니다.

 

복을 아무개나 부어주지 않습니다.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가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잘되는 길이 있는데, 그것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호하시고, 은혜로 호위해 주십니다.

그 보호 아래 있는 자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시편 6:1~10

시편 7편의 참회시가 있는데, 시편 6편은 참회시로 분류합니다.

참회시는 63238, 51, 102, 130, 143편입니다.

시편 6편은 38편과 비슷합니다.

시편 38편의 4, 18절을 보면 죄를 범한 것을 시인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6편은 죄라는 단어가 없고 회개가 없습니다.

죄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생각나지 않습니다.

6편은 참회시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다른 참회시와 차이가 있습니다.

아마도 의인이 겪는 고통으로 보기도 합니다.

마치 욥이 겪는 고통과 같은 고난으로 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신앙생활을 잘하시는데 고통을 당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다윗이 그런 고통의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편 6편은 질병으로 인해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질병으로 고통의 밤을 보내시고 계신 분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6편 세 개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3-애절한 탄식

4~7-구원을 호소하는 기도

8~10-응답의 확신

 

다윗이 질병이 걸린 지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1절에 주의 분노, 책망, 주의 진노, 질책 등의 단어를 볼 때,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징계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를 향해 분노하고 진노하셔서 하나님이 떠난 것 같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큰 병을 앓게 되었고 무서운 밤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의 어느 때까지입니까란 말씀을 볼 때 질병에 걸린 지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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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하나님의 진노라고 생각했습니다.

질병이 하나님의 진노라는 구약적인 사고방식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다윗도 죄를 모르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것이 아닌데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범했지?

하나님이 고쳐주시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죄를 선명하게 알았다면 죄를 고백했을 텐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중한 죄를 범했나를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병이 들어서 지쳐갑니다.

고통스러우니까 살이 빠졌습니다.

근심하면 살이 빠지는데 수척해졌습니다.

뼈가 떨립니다.

뼈는 힘을 상징합니다.

힘이 다 빠져서 온몸이 떨립니다.

쇠약할 대로 쇠약진 해졌습니다.

영혼도, 마음도 떨립니다.

영육이 지쳐있습니다.

지속되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고통 가운데 다윗은 여호와를 부릅니다.

여호와여~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고쳐주소서.

여호와를 불렀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여호와를 부르는 것이 믿음으로 고난을 해석하는 증표입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현실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분노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고난을 해석하면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견디다 보면 상황을 바뀌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고통의 밤을 보내면 찾아오는 감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멀리 떠나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4절에 여호와여 돌아오서서!

다윗은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구해주세요.

자비로 구해주세요.

 

5절은 다윗이 떼를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죽으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제가 죽으면 주를 기억하지 못할 것 아닙니까?

 

다윗은 죽음의 문턱과 가까운 질병에 걸려 있고, 8절과 10절에 등장하는 대적자, 악한 자, 원수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적, 행악자, 원수는 누구일까요?

다윗이 하나님께 징계받는다고 본 사람입니다.

이들은 죄를 끌어다가 다윗의 질병을 해석했습니다.

환자의 처지에서 보면 원수 같은 사람입니다.

 

6절은 이 시에서 가장 슬픈 장면입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웁니다.

요를 적실만큼 눈물을 흘립니다.

버림받은 것 같은 고독의 밤을 보내는 자의 눈물입니다. .

잠이 안오니 눈물만 흘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근심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밤마다 울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선 것 같습니다.

 

이는 욥이 지새운 밤과 비슷합니다.

30:17~20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의인의 고통을 당한 욥의 고백입니다.

그 긴 밤, 혼자서 지새우는 다윗의 심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밤을 만나지 않길 바랍니다.

 

다윗은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근심과 눈물로 보낸 밤으로 인해 눈이 쇠하게 되었습니다.

눈은 건강의 창문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눈이 흐리지 않았는데, 건강했는데 하나님이 데리고 간 것입니다.

다윗은 영혼과 육체가 쇠할 대로 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늘 반전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다윗의 반전이 있습니다.

8절에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의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구나.

기도의 확신이 오면 회복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확신은 악을 행하는 자는 떠나라고 선포하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는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9절에 기도 확신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갑니다.

받으셨으며, 받으시리라.

기도 확신이 왔는데,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들으심과 확신이 왔습니다.

회복에 대한 소망을 붙잡습니다.

 

그랬더니 기도의 결과 나타났습니다.

10절입니다. .

적들이 순식간에 갑자기 물러갑니다.

적들이 수치를 당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갑자기=홀연히=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내면의 확신은 상황이 바뀌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갑자기 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애타는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진실한 기도를 드리면 응답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이런 반응을 합니다.

갑자기 됐네,

 

 

 

 

 

 

 

 

 

 

 

 

 

 

 

 

 

 

 

 

 

 

 

 

 

 

 

시편 7:1~17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오해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실 때 어떻게 했습니까?

억울함을 누구에게, 어떻게 하소연합니까?

보통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오해받으면 변명하거나 분노합니다.

혹은 자신의 속상함을 사람에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법정으로까지 가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런 억울한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표제어로 다윗의 억울함을 조금 진작할 수 있습니다.

시편 7편에는 표제어가 2가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식가욘입니다.

식가욘이라는 단어는 시편 전체에서 여기 탁 한번 나옵니다.

식가욘에 대한 해석도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구성지게 부르는 노래, 토로하듯 강하고 빠르게 부르는 노래, 큰 소리로 부르짖는 노래, 방황하다, 비틀거리다 등등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아무튼 구성지게 토로하듯 부르는 노래입니다.

 

베냐민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다윗을 비난합니다.

시므이라는 베냐민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말이 안 되는 말로 모함했습니다.

사람의 혀가 그만큼 심각한 무기가 됩니다.

험담, 모함, 헐뜯는 사람이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구시는 누구인가?

성경에는 이런 이름이 없습니다.

사울왕일 가능성도 높다고 봅니다.

사울과의 관계 때문에 베냐민인 사울이라 표현하지 못하고, ‘베냐민인 구시라고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구시가 사울왕이라면, 이 시편의 배경은 다윗이 사울왕의 칼을 피하여 도망을 다닐 때, 특히 사무엘상 24장의 엔게디 황무지에 있을 때 또는 26장의 하길라산에 있을 때일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사울왕에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많이 쫓겨 다녔습니다.

 

다윗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죽음의 사지에 내몰렸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건져낼 자가 없습니다.

다윗을 모함하는 자는 사자와 같이 강합니다.

그뿐 아니라 14절에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악인입니다.

15절에는 웅덩이를 파서 함정에 빠뜨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강한 사람이 자신을 모함하고 억울하게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다윗이 택한 방법이 3~5절입니다.

무죄를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다 아시죠,

내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다 아시죠.

아무리 억울해도, 하나님 다 아시죠,

혹여나 나에게서 죄악이 있거든 맘대로 하십시오.

그런 일이 있었다면 5절처럼 취급해도 좋습니다.

확실한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이렇게 하소연한 이유가 있습니다.

8~10절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자신의 의를,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던 능력은 어디서 나올까요?

여호와 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핀 1~6편까지 시인이 하나님을 부른 호칭이 각각 다릅니다.

여호와여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7:1절에 여호와 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엘로힘으로 멀리 떨어진 분, 창조주, 전능하신 분, 높이 계신 분입니다.

여호와는 가까이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분, 언약을 맺는 분입니다.

나와 언약을 맺으신 분은 나의 능력자입니다.

다윗의 전적인 신뢰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피나처요 구원자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관이기 때문입니다.(8,11, 17)

하나님이 죄인을 진노 가운데서 심판하시고 의인을 세우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10)

 

누가 의인인가요?

하나님께 가까이 한 사람이 의인입니다.

하나님은 피하는 자를 받아주십니다.

그 분에게 맡겨 드리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마음까지도 그렇다고 누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행동으로 지킨다고 하지만 마음마저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죄를 짓고 있지만 겨우 말이라도 조심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까지 살피시는 분입니다.

마음마저 정직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15-겉은 양인데 속은 이리인 사람을 싫어합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말한 다윗은 앞으로 회개하면서 감사하면서 살겠다고 선언합니다.

기도하고 기도했더니 내 죄를 크게 보게 하시고 상대방의 죄가 작게 보입니다.

12~17-회개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칼을 가시고, 활을 당기시고, 치명적인 무기를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불화살은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악이 내 안에 배어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웅덩이를 함정과 같다는 것입니다.

외부를 향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17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다윗은 찬양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삶의 목표가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지금의 삶의 고통이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8:1~9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하늘의 별과 달을 보고, 인간을 보면서 쓴 시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물을 바르게 보고 노래한 시입니다.

 

누가 온 땅 아름답게 새겨진 주의 영광을 볼 수 있는가? (1, 2)

누가 지극히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가? (3. 4)

누가 인간에게 주신 영화와 존귀의 직책을 깨달을 수 있는가? (5~8)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성품을 보게 됩니다.

다양하면서 질서의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우리를 볼 때, 하나님이 보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만물을 돌보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도록 하셨습니다.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봅니다.

1, 9절에 주의 이름으로 앞뒤에 놓고 채워가고 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누구나 하늘, ,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을 합니다.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시인은 전혀 다른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보고, 우리 주라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아름답다는 얼마나 대단한지요,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주의 영광이 하늘 아래 어디나 다 있다는 것입니다.

온 땅에 이름을 두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현실의 다윗은 피할 곳이 없습니다.

사울 왕의 땅입니다.

갈 곳이 없지만 어디를 가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숨어 있는데, 광야에 있는데 주의 영광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존재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솜씨, 손길을 느껴야 합니다.

망가져 있기에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대적자, 원수, 보복자들입니다.

대적자들의 특징은 하나님 없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자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며, 내 능력이 출중해서 얻은 것이라고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대조된 인물인 어린아이는 엄마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힘없는 이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세우십니다.

그들의 순수한 노래로 대적자들을 잠잠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2절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15~16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절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아이들이 노래할 때 너희는 잠잠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대적자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3절에 내가 보오니~”

우주의 아름다움에서 주의 손가락을 봅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 있습니다.

주의 손가락을 보여야 달리 보입니다.

믿음의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역사의 주관자를 보아야 합니다.

달과 별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을 보셔야 합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면 자신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인간을 바라본 두 가지 시선이 나옵니다.

사람은 하나님, 우주 앞에 형편없습니다.

4~5절입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중심이 자신인 줄 알다가 영적인 눈이 열리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절망을 절감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나라는 인간이 무엇이기에 나를 이토록 여기신단 말인가.

 

사람이 무엇이기에, 인자가 무엇이기에

인간의 연약성에 대한 표현입니다.

인자는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늘에 펼쳐진 하나님의 솜씨 앞에 자기의 존재가 얼마나 먼지 같은 존재인가를 질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돌보시나이까?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마음을 써 주십니까?

방문합니까, 직접 찾아오십니까?

나라는 존재에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감사에 대한 표현입니다.

 

5절에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조금은 거의 같다는 뉘양스입니다.

거의 그 분 같네, 그분보다 조금 못하네.

그 사람은 아니지만 그분 못지않다는 것입니다.

못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칭찬입니다.

영광스러운 표현입니다.

5절이 중심에 들어 있습니다.

온 땅의 피조 세계를 경험하면서 먼지 같은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먼지 갖은 존재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존재로 세워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돌보시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6~8절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달은 사람은 사명을 알게 됩니다.

방향이 바뀝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게 됩니다.

돌봄을 합니다.

1~3절의 창조 내용은 하늘과 달과 별들입니다.

7~8절의내용은 땅에 있는 것들입니다.

가까이 있는 동물로부터 멀리 있는 동물 순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양과 염소-들짐승-새들-바다의 물고기-바닷길에 다닌 것들의 순서입니다.

돌봄을 가까운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합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노래합니다.

 

인간은 먼지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어린아이와 젖먹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인간을 하나님처럼 만드셔서 영화 존귀의 관을 씌우셨습니다.

 

이것을 보는 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요.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신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이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함을 노래합니다.

피조 세계를 보면서 내뱉었던 탄성은 우리의 탄성이 되어야 합니다.

길가에 핀 작은 꽃송이 하나를 보고도 영광의 노래를 부르시길 바랍니다.

 

 

 

 

 

 

 

 

시편 9:1~20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 , 달을 보면서 한 주간을 보냈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지으신 것과 대조적인 추한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늘 죄로 얼룩진 어리석은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한 주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9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겠노라는 결심으로 시작합니다.

그의 결심은 5가지 동사를 사용하면서 여호와를 찬양(감사)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합니다.

찬양(감사)의 내용은 주의 기인한 것들과 주의 이름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겠다고 합니다.

전심으로 감사하오며, 전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즐거워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십니다.

시인이 노래하고 감사한 하나님을 우리도 알고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7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3~4절이 첫 번째입니다.

원수들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송사를 변호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에 변호하시는 하나님을 감사합니다.

그 하나님은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의의 기준을 가지고 정직하게 판단해 주시옵소서.

판단을 하실 분은 한 분뿐입니다.

 

5~6-영원히 승리하시는 하나님을 감사합니다.

악인들의 그림은 동일합니다.

성공하고 번창하며 승리하는 듯하나,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공중에 나부끼는 겨와 같이 멸하고 말 것입니다.

멸하다와 지워지다, 멸망하다와 기억할 수 없나이다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시인은 과거, 현재, 미래까지 승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7~8-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의 주권자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만민을 공평정대하게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시인은 놀라운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이한 일은 하나님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3~8)

 

9~10-피난처이신 하나님을 감사합니다.

압제를 당할 자의 피난처입니다.

주의 이름을 아는 자=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안식처입니다.

이 땅에는 안식처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11~12-기억하시는 하나님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피흘림을 당한 자를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듣고 계십니다.

 

13~14-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감사합니다.

시인은 일으키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예전에 일으키시는 주여, 지금도 일으켜 주옵소서.

그리하면 더 높이겠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간증하고 증거하겠습니다.

기도응답의 목적입니다.

 

15~16-공의의 하나님을 감사합니다.

심판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을 설명합니다.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는 것을 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로 죽습니다.

권력,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죽습니다.

심판자 하나님의 시각으로 국가, 열방, 개인을 봐야 합니다.

힉가욘-기억하고 생각하라, 잠시 멈추어 서서

 

기인한 일은 하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사실입니다.(9~16)

그 기이한 일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17~18-악인들은 결국 멸망한다.

궁핍한 자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대로 살려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궁핍한 자, 가난한 자를 모른 체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왕인데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늘 이들의 편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중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20- 4가지 선언을 합니다.

인생들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며, 심판을 받게 하시며, 두렵게 하시며, 인생인 줄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해 주옵소서.

원수들, 괴롭힌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옵소서.

그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이것을 진짜 믿는다면 인생 고민이 끝난 것 아닙니까?

믿으면 고민 갈등 끝입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운 심판자임을 확신하는가?

현실 속에서 공의로운 심판이 시행되고 있는가?

다윗은 공의로운 심판에 관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현실에서도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계시는가?

모든 열국을 의와 공으로 심판하심이 적용된다고 봅니다.

악인들은 결국 멸망합니다.

 

 

 

 

 

 

 

 

 

 

 

 

 

 

 

 

 

 

 

 

 

 

 

 

 

 

 

 

시편 10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시인의 탄식시입니다.

9편과 같은 알파벳으로 순서로 쓰였지만, 주제는 다릅니다.

9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 7가지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0편은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말씀을 읽어도 가슴이 냉랭할 때, 어려움이 계속될 때, 악인들은 잘 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숨어 계신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습니다.

 

악인들도 하나님의 부재를 생각합니다.

악인들은 4절의 말씀처럼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의인과 악인 하나님의 부재를 동일하게 느끼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과 달리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그것을 다시 깨닫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16절에서 하나님은 영원토록 왕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토록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자들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 밖으로 쫓겨나 영원히 하나님의 부재 속에 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 차이는 어찌하여에 갈라진다고 생각합니다.

10편에는 어찌하여가 3번 등장합니다.

1절과 13절입니다.

어찌하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 더 높여야 하는데,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라마는 간절하게 하나님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게 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2:1, 3:1, 10:1, 13, 22:1, 27:46(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우리와 함께 있어 달라는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

어찌하여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숨어 계십니다.

안 계실 것 같다는 것입니다.

어디 계십니까?

그 땅의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악인도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2~11절은 악인들의 특징과 속성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묘사된 악인들의 모습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악인들은 교만합니다. 2, 5절입니다.

악인들은 마음이 욕심과 탐심이 가득하여 자랑합니다. 3, 6. 11절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보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악인들은 입과 혀를 무기로 사용합니다. 4, 7절입니다.

그의 모든 생각 속에 하나님이 거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판단 기준이 자기일 때 빠지는 오류입니다.

악인들은 은밀한 곳에 앉아 있습니다. 8~10절입니다.

은밀한 곳에 앉아서 가난한 자를 삼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구원은 새로운 길이며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12-일어나소서, 손을 드옵소서,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 움직이시옵소서. 여호와께서 어떤 행동을 취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원수들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는 행동을 취해달라는 요청입니다.

13-악인은 감찰하지 않는다고 말함

14-하나님이 보십니다.

15-찾으소서

16-왕이십니다.

1절에 머물러 있지 말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통치자이시고 왕이십니다.

믿음으로 고백하고 선포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17~18-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십니다.

1절에서 여호와여로 시작했던 시인은 17~18절에서도 여호와여로 시작합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돕지 않고 멀리 계신 듯해 탄식하며 불렀습니다.

17~18절에서는 가난한 자들을 도와달라며 여호와를 부릅니다.

 

 

 

 

 

 

 

 

 

 

 

 

 

 

 

시편 11

주께 피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터가 무너지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늘의 보좌에 앉아 인생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신뢰시로 분류합니다.

 

1~3절은 대화시입니다.

선택의 순간입니다.

하나님께 피할 것인가? 산으로 피할 것인가?

내 주관에 따를 것인가? 주변 사람의 말을 들을 것인가?

 

다윗은 피할 만한 일을 만났습니다.

피할 일이 생겼습니다.

일은 자꾸 생깁니다.

피할 일이 없는 곳은 무덤뿐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로 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이 시의 배경은 사울에게 쫓기는 중에 2차례 살려준 사건입니다.

첫 번째 사울왕을 살려줍니다.

그랬더니 곁에 있는 사람이 조언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가장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합니다.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합니다.

선의를 가진 사람이 탁하게 여기고, 타협하라, 신앙을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현실적으로 쉬운 길을 택하라고 말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11편에는 두 산이 있습니다.

내 산이 있고 여호와의 산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살지 말라는 산입니다.

애굽이 산이 되기도 하고, 바벨론이 산이 되기도 합니다.

산에는 각종 산당이 있는데, 성공, 권력의 산이기도 합니다.

그 산으로 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2절은 시인이 피한 이유입니다.

마음이 바른 자는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활을 당기고 활을 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선택이 우둔한 선택이라는 화살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사는 것을 우숩게 보는 화살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이야기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동굴에 들어온 사울을 살려줍니다.

사울을 살려준 이후 다윗은 이전보다 더 심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블레셋으로 피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고통이 더 심해집니다.

 

터가 무너진 것과 같은 고통입니다.

인생의 기반이 무너졌습니다.

병에 걸리고, 직장을 잃고, 가족을 잃을 것과 같이 터가 무너졌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과 같이 터가 무너졌습니다.

믿고 살던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탄식과 한탄으로 가득합니다.

 

의인이 무엇을 하랴?

더 힘든 일을 만나면 우리를 어디로 향하게 합니까

하나님께 향한 사람인 의인은 무엇을 하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4~7절은 하나님을 신뢰함을 드러냅니다.

4-의인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시온산에 있는 성전으로 달려갑니다.

성전으로 피합니다.

보좌에 앉아 인생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보좌는 왕이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터가 무너진 상황에서 누가 일합니까?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내주하시며 우리를 통촉하시고 감찰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와서 우리와 함께 광야를 지나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좌에 있으니 즉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터를 유지할 수 있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터가 무너짐은 징계가 아니라 시험입니다.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5-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나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믿을 때 하나님께 피할 수 있습니다.

 

 

6-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의인 롯을 지키셨습니다.

개인적인 터가 흔들릴 때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터가 흔들리까 롯은 두려워했습니다.

롯은 하나님이 원하는 곳으로 피하지 못했습니다.

두려운 롯은 소알에 거주하다가 두려우니까 굴에 거주하게 됩니다.

근친상간을 범하게 됩니다.

세상의 산에 거했기 때문입니다.

 

7-제가 의인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의인은 하나님께 피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시편의 결론이 비슷합니다.

답이 단순합니다.

시편은 지식을 얻기 읽으면 안됩니다.

새로운 지식을 전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믿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지만 누리지 못한 것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한결같이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가?

나도 다윗처럼 살 수 있을까?

터가 무너져도 피할 길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은 무엇을 할까요?

하나님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시편 12:1~8

말에 관한 말씀입니다.

1~4절은 악인의 말은 거짓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5~8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악인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로 인해 경건한 자가 끊어졌습니다.

경건한 자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헤세드)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졌습니다.

아멘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주변에 사랑과 아멘을 말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갑작스럽고 절박한 위기의 상황에 단도직입적으로 구원해 주세요.

아버지 도와주세요.

 

시인은 엘리야와 같아 보입니다.

엘리야가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사랑과 아멘을 말하는 자는 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자를 남겨 두셨습니다.

 

경견한, 충실한, 믿을만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집니다.

반면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는 사람만 남았습니다.

그들이 남아서 세상을 좌지우지합니다.

사랑과 아멘을 하는 사람이 끊어지게 된 배경으로 악인들의 존재를 전합니다.

악인들이 하는 말의 특징이 2~4절입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텅 빈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다는 의미입니다. 알맹이가 없는 말입니다.

 

아첨합니다.

매끄럽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거짓보다 한 수 높은 말입니다.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하고 뒤돌아서 비난하는 말을 합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거만하게 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마음을 가진자입니다.

두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말과 입의 말이 다른 것입니다.

 

누구에게 합니까?

가까운 이웃입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말이 부패하면 인간관계가 파괴됩니다.

말은 하나님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부패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됩니다.

 

자신의 말을 분석해야 합니다.

생각과 말이 다른가?

 

왜 그렇게 합니까?

4절입니다.

내 입술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만이 말이 부패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말이 곧 법이다. 옳지 않다고, 우리 뜻대로 된다고. 반대할 수 없다. 지금은 우리 세상이다. 압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의 말입니다.

사사기 21: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시대의 죄이었습니다.

말의 부패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반전이 일어납니다.

가난한 사람들만 당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은 탄식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괴로워하고 눌린 자의 탄식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일어나는데, 가난한 사람들과 착취를 당하는 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이 일어섭니다.

거짓말하고 아첨하는 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워져서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듣고 계십니다.

안전한 지대로 이끌어 갈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지키십니다.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중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6절의 말씀처럼 순수한 은처럼 거짓말도 섞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련한 순수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왜곡도 없습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전부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말 때문에 고통을 당한 이들이 위로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안으로 들여보내어 거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곳이 안전한 곳이라는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십니다.

7~8절은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악한 세력으로부터 영원까지 지키시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길이 되고 진리가 됩니다.

영혼과 인생의 답으로 주셨습니다.

 

거짓말하는 세대에서 지키십니다.

다윗의 고백이며 우리들의 고백입니다.

8-이러한 세대로부터 지키십니다.

현실은 비열함이

아첨, 이긴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자는 사람을 지키십니다.

 

 

 

 

 

 

 

 

 

 

 

 

 

 

 

 

 

 

 

 

 

 

 

 

 

 

 

시편 13:1~6

12편은 말에 관한 시입니다.

13편은 눈이 무엇을 보는가에 대한 시입니다.

탄식이 찬양으로 바뀌는 것은 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때의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픔이었습니다.

그 고통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4번이나 어느 때까지이니까라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다윗은 고통 가운데서 오랫동안 기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자 하나님께 얼마나 더 버텨야 되며,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냐며 탄식을 했습니다.

 

저는 1~2절에 어느 때까지이니까?”라고 질문하는 다윗의 심정을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동안 수 없이 많이 어느 때까지이니까?라고 하나님께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신앙인은 상황이 바뀌지 않고 오래 지속되면 1~2절의 질문을 합니다.

 

다른 번역

1 오 주님이시여, 언제까지 나를 잊고 계실 것입니까?

언제까지 숨어 계실 것입니까?

2 언제까지 내가 고민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가 날마다 슬퍼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원수가 나를 보고 우쭐대야 한단 말입니까?

 

다윗은 4가지 사실에 질문을 던집니다.

먼저 하나님이 나를 잊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고백이 있습니다.

시편 42:9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하나님이 자신을 향한 호의를 거두었고 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얼굴을 숨기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임재를 보이지 않으니까 내가 무엇을 보고 용기를 얻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외면으로 내면은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언제까지 내가 고민해야 합니까?

내면으로부터 기도해도 소용없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봐도 소용없다, 할 것 다 해 봤다와 같은 냉소적인 음성이 들렸던 것입니다.

 

원수들의 괴롭힘이 언제 그칠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했구나?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나도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게 될 때가 있구나.

나도 이런 질문을 때가 있겠구나.

 

다윗은 탄식에 머물지 않고 3~4절에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3개 동사로 요청을 표현했습니다.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혀주소서입니다.

나를 생각하사는 하나님 나 좀 봐 주세요.

내 고통을 하나님이 봐 주세요.

내가 살아가는 인생을 다 봐주세요.

하나님밖에 없다고 한 사람의 기도입니다.

 

나는 안보이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나의 눈을 밝혀 주옵소서입니다.

내 눈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 눈이 어두워서 주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괴롬과 아픔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니 나의 눈을 밝혀 주옵소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눈을 밝혀 주세요.

상황을 바꿔주세요 말하기 전에 내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을 보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보시는 것으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스데반이 주목하여 보고는 눈이 밝아진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눈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눈을 밝혀 주니까 주님의 영광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기쁨과 노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보게 해 달라는 이유가 4절입니다.

하나님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 죽겠습니다.

원수가 내가 이겼다고 말하지 못하게 해 주옵소서.

나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기뻐할까봐 두렵습니다.

 

 

내가 망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욕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금이 갑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를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해결책이나 약속이 하나도 없습니다.

상황이 바꾸지 않았는데, 찬양과 기쁨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윗은 더 원망으로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합니다.

5~6절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변함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게 될 것을 기뻐합니다.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었습니다.

은총이 담기면 노래가 됩니다.

응답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이룰 것이라고 확신하고 선포하는 기도입니다.

상황을 달리 볼 수 있도록 간절히 구합니다.

 

 

 

 

 

 

 

 

 

 

 

 

 

 

 

 

 

 

 

 

 

 

 

 

 

 

시편 14:1~7

53편이 거의 똑같습니다. 쌍둥이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시편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정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경험해서 얻은 지혜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프로이드와 하나님과 동행한 C.S 루이스는 유사점이 많습니다.

둘은 조숙했고,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아버지와 불화했고, 가족의 신앙을 버렸습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발달단계를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인간연구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을 끝까지 거부하여 자살로 인생을 마쳤습니다.

루이스는 젊은 시절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다시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기독교 영성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의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이고 누가 어리석은 자일까요?

 

1절은 어리석은 자에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히비리어 나발이라는 단어입니다.

성경 속에 나발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비가일의 남편이지만 다윗의 호의를 악으로 갚은 자입니다.

나발은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어리석어서 이런 증상이 나옵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마음은 지,,의가 활동하는 좌소입니다.

사람의 중심입니다.

내 마음을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자신의 마음에 변하는 것으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없으면 좋을 텐데와 같은 바램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인용하여 해석한 말씀이 로마서 3: 10~12절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면 자기를 바르게 통치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의 특징입니다.

부패합니다. 생명이 없기에 썩었습니다.

뿌리로부터 잘려진 가지는 썩습니다.

생각이신 하나님께 분리되었기에 썩어 못쓰게 됩니다.

 

나에 집중되어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부패하게 합니다.

 

또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데, 행실이 가증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두 가지의 선이 있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도덕적인 선입니다.

도덕적 선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한 인간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영적인 선이 있습니다.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살펴보십니다.

하나님은 숨어 계십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4~5절은 어리석은 자들의 태도를 언급합니다.

악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떡 먹듯이 먹습니다.

떡을 먹는 것은 일상에서 가장 번번이 반복되는 행위입니다.

눈에 띄는 행위입니다.

그만큼 악한 태도가 일상에서 반복해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이 처음에 힘들지만 자꾸 반복되면 죄인 줄 모르게 됩니다.

양심에 화인을 맞으면 밥 먹듯이 죄를 짓게 됩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기와 고난에 직면해도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거기, 그때, 그 장소에서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의인과 함께 계시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6절에 가난한 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설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자입니다. 악인들은 가난한 자를 비난합니다. 조롱합니다. 무시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가 지혜로운 자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떡으로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사는 것을 보여주면 됩니다.

불쌍하지 않고 곤고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 됩니다.

위를 보고 살아야지를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악인들은 스스로 두려워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존재에 관한 내용입니다.

인간의 복은 하나님께 피하는 자입니다.

복이 없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피할 곳이 없는 자입니다.

자신에게 피합니다.

, 건강, 권력, 명예에 피하는 자입니다.

변하는 것을 피난처로 삼은 자는 어리석다고 합니다.

 

 

 

 

 

 

 

 

 

 

 

 

 

 

 

 

 

 

 

 

 

 

 

 

 

 

 

시편 15:1~5

질문과 응답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매우 특별한 시편으로 분류합니다.

비슷한 형식을 취한 곳이 있습니다.

시편 24;3~5절은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자의 자격을 묻고 그의 대해 조건들을 제시합니다.

“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사야 33:14~16절은 누가 불과 함께 하겠느냐고 묻고, 질문에 대한 조건을 제시합니다.

“14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15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16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순례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 거할 수 있는 자의 조건을 묻고 있습니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2~5절에서 조건들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시편 15편을 지혜시로 분류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일상의 삶에서 얼마나 거룩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요즘말로 바꾸면 누가 예배자입니까?에 대한 대답으로 볼 수 있습니다.

 

1

누가 장막에 머물수 있으며 누가 성산에 거할 수 있는가?

장막은 일시적으로 머무는 공간입니다.

성산은 완전한 정착을 이루는 공간입니다.

해석을 하면 누가 임시적인 삶의 공간에서 영원한 처소를 향해 가는 자입니까?

성도의 일생이 담아진 고백이 감춰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거할 수 있는 자의 자격 조건을 묻고 있습니다.

 

2~5절은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시합니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5가지와 하지 말아야 할 5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십계명을 연상케 합니다.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이 조건도 두 부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거할 수 있는 자의 성품과 이웃과의 관계로 요약됩니다.

성도들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 할 수 있습니다.

 

2절은 적극적인 조건입니다.

행하며, 실천하며, 말하며는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흠 없는 삶을 살기, 옳은 일을 행하기, 진실하게 말하기입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윤리적으로 온전하게 살려고 하고, 불의를 행하지 않고, 진실은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중심을 보라는 것입니다.

나의 관계가 망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3절은 소극적인 조건입니다.

아니하고, 아니하며 아니하며는 소극적인 조건입니다.

혀로 남을 중상하지 않기,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기, 이웃을 비방하지 않기입니다.

이웃에게 관계에 표현되는 행동입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망가지면 안됩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말이 중요합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말, 즉 언어에 관한 내용입니다.

마음의 상태가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언어입니다.

언어에 관한 내용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4절은 2개의 적극적인 조건입니다.

경건치 않는 자를 멸시하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기입니다.

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은 심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망령된 자를 멸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에게 멸시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존대해야 합니다.

심장이 뛰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따르고 싶어 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태도입니다.

여기엔 기준이 있습니다.

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본받지 않기 위해서 의도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존경할 수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존경하는 마음을 통해 내 삶이 정돈됩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합니다.

서원을 이야기 한 이유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내면의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킴으로 내가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5절은 소극적인 조건입니다.

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돈의 기능대로 행하는 자이야 합니다.

이자 받지 말기, 뇌물 받지 말기입니다.

고통을 이용해서 나의 풍요롭게 하는 데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배와 우리 일상의 삶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예배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어서 오라고, 받아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찬양 잘하는 사람, 말씀 많이 아는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배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스킬이 나오지 않습니다.

절차에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의 중심,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다 지키는 자는 성산에 머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가지를 다 지킬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약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시편 16:1~11

믹담시입니다.

56~60편도 믹담시입니다.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다만 쫓기는 가운데 읊조리는 간절한 기도로 해석합니다.

기도가 신뢰입니다.

그래서 신뢰시로 분류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예언했다고 해서 황금시로 부르기도 합니다.

 

1절은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주께 피하는 난민과도 같습니다.

나를 위하여 울타리를 쳐 주세요.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게 해 주십시오.

 

다윗을 비롯하여 주께 피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신앙고백으로 보입니다.

첫째로 2~3절은 주밖에 나에게 좋은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2절에 반복해서 주님이 나의 복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연결됩니다.

주는=주 밖에는, 나의 주님은=나의 복입니다.

주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확신은 우상을 섬기지 않게 합니다.

4절입니다.

다른 신을 택하면 어떻게 되는가?

괴로움이 더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처하는 복을 입에 담지 않겠습니다.

다른 신으로 이끌려가지 않도록 지켜주세요.

주밖에 없다고 하는 자만이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밖에 좋은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밖에 없으면 즐거움이 바뀝니다.

누구와 더불어 즐거워할까요?

나의 모든 즐거움은 이 땅의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성도는 존귀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만큼 즐거움이 없다는 것이다.

남의 잘되는 것이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남이 아닙니다.

같은 성도이기 때문에 함께 누리게 됩니다.

다른 성도들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옆에 있는 성도가 나의 즐거움인가? 괴로움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즐겁다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을 위한 삶이 기쁨이었습니다.

나의 야망과 나의 비전을 위해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밖에 없으면 하나님의 결정을 수용하게 됩니다.

5~6절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사업이고, 하나님이 나의 소득이고, 하나님이 내 분깃을 들고 계시고, 하나님이 내게 재로 준 구역은 같은 의미를 반복한 것입니다.

나의 기업, 외모, 성별, 가족, 직장 등으로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주신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분깃은 12지파에게 분배한 땅을 가리킵니다.

 

12자파에게 균등하게 분배했을까요?

아닙니다.

제비를 뽑아 분대되었습니다.

므낫세는 넓은 땅을 분배받았고, 아셀은 서쪽의 비옷한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베냐민지파는 비탈과 광야로 이룬 척박한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유다지파는 우물이 별로 없는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결정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관점의 차이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합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기준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기준을 없애야 합니다.

나의 기질, 환경, 자녀를 비롯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받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수용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생각해서 나에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면 수용이 가능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하나님의 최상이라는 생각입니다.

고통, 불만거리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꼭 필요해서 허락하셨다는 최상의 환경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아니지만 주관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필요하니까요.

그런 수용에 의한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주밖에 없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은 7~8절입니다.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이 무엇일까를 놓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모습입니다.

항상 하나님이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흔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9절은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겁고, 육체도 안전히 살게 됩니다.

10-죽음 넘어까지 지킴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음부에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섞어 부패되지 않게 하실 것이다.

11-그 따라가는 길이 생명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8~10-부활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부활을 설명하면서 본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2:25~28절입니다.

삶의 고백이었는데, 그의 고백을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을 예언한 것으로 받았고, 그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히 안전하게 살게 해 주셨습니다.

 

 

 

 

 

 

 

 

 

 

 

 

 

 

 

 

 

 

 

 

 

 

 

 

 

 

 

시편 17:1~15

시편은 각종 기도로 가득합니다.

시편의 기도는 기도의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장되거나 위선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아플 때는 아프다고 표현하고, 기쁠 때 기쁘다고 말합니다.

감사할 상황에는 감사하다고, 찬양할 상황에 놓이면 입을 열어 찬양합니다.

시편의 기도는 감정을 강요하거나 억누르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 그 어려움이 내 실수가 아닐 때 더욱 힘듭니다.

나의 실수로 인한 고통이라면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열심히 살아왔는데,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을 만나면 난감합니다.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매우 낙심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겪는 고난과 아픔을 어떻게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까?

17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얼마나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피조물이 의미가 있으려면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1, 15절의 의입니다.

무죄하다, 깨끗하다가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말합니다.

사람이 세운 의는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집니다.

의롭다고 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모습을 의롭다고 표현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를 봐 달라고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악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자신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10~12-악인의 모습입니다.

악인의 마음은 비만해져서 감각을 상실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죄악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먹이를 낚아채는 사자와 같습니다.

 

다윗은 이런 악인의 질투와 시기 때문에 애매한 고난을 겪습니다.

내가 이런 고난에 처해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까?

 

1~2-기도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시작합니다.

호소를 들으소서, 주의하소서, 기울이소서

쉐마 아도나이에 대해 세 가지 다른 표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나를 대적하고 구원하시는 분을 알기 때문입니다.

2절은 경건한 삶이 뒤따르는 기도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시고 기도를 들어달라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함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죄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마음,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주님 나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 주옵소서.

 

기도한다고 한순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건한 삶을 돌아보시고 긍휼히 여겨달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3~5-고통 중에서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흠잡을 데 없도록 내 마음을 드립니다.

입술을 지키는 것입니다.

행동을 지킵니다.

나의 삶이 주의 길로 가겠다고 결정하게 됩니다.

정해주신 길로 가기 때문에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실족하지 않게 됩니다.

 

부패하는 첫 번째 자리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17:9, 잠언 4:23

마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마음을 지키면 다 지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 결정하면 그 문제가 더 이상 나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지킬 것인가?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서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건강한 지식이 뒷받침된 기도이어야 합니다.

6~7-하나님 이렇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출애굽 직전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처럼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성경 속에 갇힌 분이 아니라 오늘도 나타나시는 분으로 인정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의 오른손으로 일하심을 인정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갖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8~9-눈은 신체 중에서 가장 예민합니다.

하나님이 눈동자같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분명하게 나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13~14-쿠마 아도나아를 구합니다.

나 대신, 그를 대항하여 무너뜨려주옵소서.

주의 재물로 영원한 나라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기 배를 채우고,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소.

내가 세속적인 방식에 따라가지 않게 해 주옵소서

 

기도 방법을 배우게 되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걸리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15-결론

아침에 깰 때마다 주의 형상으로 만족합니다.

문제는 여전히 있지만 주님의 향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시편 18:1~19

사무엘하 22장과 똑같습니다.

대표적인 감사 시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면서 쓴 시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다가오셨고, 건져주셨는지를 고백하는 감사 시입니다.

삶의 고백입니다.

자신의 살아온 고백입니다.

수많은 삶의 고비를 넘기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1절은 아주 유명한 고백입니다.

다윗은 주께 피하는 인생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윗은 용사라기보다는 하나님께 피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인생의 고백을 하기 때문입니다.

적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힘을 의지합니다.

사울왕은 왕이라는 힘을, 압살롬은 인기를 힘으로 봤습니다.

사울과 압살롬은 그 힘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힘은 왕이나 권력이 아닙니다

힘의 원천인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힘을 사랑했습니다.

적들은 힘을 이용하기만 했습니다.

그 힘을 이용해서 욕망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변하지 않는 힘이신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적용) 나는 주님을 이용해서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가?

나는 주임을 이용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2절이 삼하 22:1절과 같습니다.

반복되는 단어는 나의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어떤 분~~~하나님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고 구체적입니다.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나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 경험하지 않으면 이런 기술이 쉽지 않습니다.

 

2절의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표현은 삶의 경험과 밀접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웠는지 알 수 있는 단어입니다.

다윗은 도망자이며 군인이었습니다.

군인과 관련된 표현은 요새, 방패, 산성입니다.

광야에서 도망자로 살 때의 표현은 반석, 바위, 구원의 뿔입니다.

도망자와 군인으로 만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를 건지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시 도망자와 군인으로 만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자신의 현실 속에서 느낀 하나님을 고스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일상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십니다.

다윗은 곳곳에서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32절에도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47절에도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석은 기초입니다. 반석은 근본입니다. 반석은 시작입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석위에 모든 것을 안전하게 쌓은 놓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모든 삶의 근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기초이며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도 반석 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보산에서 여리고를 바라보면서 모든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부른 노래입니다.

그의 노래에서도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다윗이나 모세는 반석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나의 운전대, , 솥뚜껑, , , 망치와 같은 분입니다.

 

다윗은 구원의 뿔이라고 고백합니다.

삼상 2:1-내 뿔//10-

삼하 22:1~2절로 끝나는데 다윗의 노래로 완성됩니다.

구원의 뿔로 완성됩니다.

 

4~6-그러면 위험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닦진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친밀감이 있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고백한 것입니다.(6)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6절은 하나님과 친밀감이 하나님의 신뢰감으로 확장됩니다.

그 분을 믿으면 믿을수록 친해집니다.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하자 일어난 일입니다.

7~15-하나님이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려고 다가오시는 표현입니다.

자연의 현상을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16~19-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을 고백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 건지다는 확실하게 구원했다는 여러 가지 표현입니다.

 

적용) 나도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길 원했습니다.

내 삶 속에서는 경험되지 않는가?

다윗은 어떻게 반석 되신 하나님을 인생의 소망으로 두었을까요?

반석 되신 하나님이 지켜주신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19:1~14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합니다.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자기를 알리시는 분,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연만물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다윗은 우주만물을 통해 만나고, 말씀을 통해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1~6절은 일반계시,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엘로힘은 창조주입니다.

다윗은 눈에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을 봤습니다.

다윗은 궁창인 우주를 보면서 하나님을 봤습니다.

다윗은 창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 봤습니다.

다윗은 하늘과 궁창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드러내는 것으로 봤습니다.

다윗은 날과 밤도 하나님의 지식을 드러내는 것을 봤습니다.

다윗은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보니까 그렇게 보였던 것입니다.

 

3~6절은 들을 수 없다고 해서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연이 말도 없고 들리지 않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봤습니다.

하나님의 질서와 신실하심을 봤습니다.

5절은 일출에 대한 멋진 표현으로 보입니다.

태양은 고대 사회에서는 신으로 간주되었고, 이스라엘 안에서는 우상으로 간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태양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태양의 열기를 피할 수 없듯이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지키시고 있다는 것을 봤습니다.

다윗은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입니다.

매일의 일상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시며, 끝까지 인도하시는 분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든 피조물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보면 됩니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보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별을 만든 분을 보지 못하고,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죄로 얼룩진 인간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7~10절은 특별계시, 초자연계시입니다.

자연계시로 완전하지 못합니다.

작품을 설명해 주는 해설집을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을 설명한 말씀이 필요합니다.

여호와는 나와 언약을 맺으시는 분입니다.

매일 살아갈수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율법, 증거, 계명, 교훈, , 법은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입니다.

다양해도 표현해도 완전하고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영을 깨어나게 하고, 영을 거듭나게 합니다.

 

말씀의 특징이 있습니다.

1) 완전합니다.

말씀은 가장 완벽한 이력서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담은 설명서입니다.

이렇게 완전하여 사람을 소성케 합니다. 회복시키십니다.

말씀은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일으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2) 확실합니다.

유혹에 넘어간 우둔한 자도 깨닫게 하여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지혜로운 자로 바꿉니다.

말씀이 우둔한 자를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거울을 통해 보면 사람이 보입니다.

3) 정직합니다.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위로의 말씀을 찾을 때, 고심하고 있는데 해답이 발견될 때,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될 때, 말씀이 가득할 때 기쁨이 옵니다.

말씀의 광맥을 찾아야 합니다.

4) 순결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주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눈을 밝혀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5) 정결합니다.

6) 진실합니다.

7) 의롭습니다.

 

어떻게 반응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10~13절입니다.

두 가지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 경고받고 지켜야 합니다.

 

말씀은 세상 귀하다고 하는 것과 비교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송이꿀과 꿀과 같은 말씀은 달콤한 즐거움을 주며 치유의 효과를 제공합니다.

더 사모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값진 보물이 있는데, 그 가치를 알지 못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말씀은 경고와 상을 줍니다.

다윗은 이것을 경험했기에 이젠 놓치지 않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주의 종이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지키겠다고 간구합니다.

그것이 가장 큰 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새롭게 되겠습니다.

말씀은 허물을 깨닫게 하는데, 그의 반응이 회개입니다.

늘 죄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14-, 마음, 생각이 하나님께 열납되길 원합니다.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려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도록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죄인임을 깨닫는 자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반석은 자연계시입니다.

구속자는 예수님으로 이루실 구원을 이루시는 특별계시입니다.

이 감격과 기쁨이 나의 마음과 묵상으로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시편 20:1~9

20편과 21편은 제왕시로 분류합니다.

20편이 왕의 승리를 기원한다면, 21편은 왕의 전쟁 승리를 기뻐하는 감사라 할 수 있습니다.

 

환난 날에 드리는 중보기도입니다.

위기를 만나야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 실체가 드러납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봅니다.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경험에서 나온 반응입니다.

 

전쟁을 앞둔 상황입니다.

가장 극단적인 위험의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이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과 전쟁을 앞둔 상황으로 봅니다.

 

왕과 백성은 전쟁을 나가기 전에 무엇을 했을까요?

백성은 왕을 위한 중보기도를, 왕은 소제오 번제를,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뜻을 전했습니다.

네게, 너의 너를, 너는 왕을 가리킵니다.

백성들이 왕을 위해 여호와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주님께서 왕에게 응답되길 기원합니다.

 

1~5-왕은 성막 안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고 있는 시간에 백성은 왕을 위해 기도합니다.

6-성막 안에 있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7~9-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승리의 확신을 찬양합니다.

밖으로 나오는 왕을 보고 백성들이 큰 소리로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백성들이 드린 왕을 위한 중보기도의 내용입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며, 왕을 위한 기원입니다.

6가지의 내용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1) 환난 날에 응답하시길,

애굽에서 야곱(이스라엘)을 건져내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구원의 하나님께서 환난에서 구원해 주시길 바란다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드시길

승리에 대한 표현입니다.

3) 성소에서, 시온에서 붙드시길 기원

성소와 시온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에서 도움이 주어질 것임을 의미합니다.

4) 소제와 반제를 하나님이 받길 원하노라

제사는 여호와에 대한 헌신과 복종을 암시합니다.

여호와의 호의 구하고 여호와께만 헌신하겠다는 고백입니다.

5)마음 속에 있는 소원이 이루시길 원하노라

6)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길 원하노라

왕의 기도를 듣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길 원한다는 내용입니다.

 

6절은 왕의 제사 현장에 있는 제사장이나 선지자이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기름 부어 택하신 왕을 도우신다는 것을 압니다.

굳센 오른 손으로 왕을 구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왕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하실 것이라고 전합니다.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하나님 편에서 왕에게 선포합니다.

 

7~9절은 백성들이 제사를 마치고 나오는 왕을 향한 기도입니다.

백성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에 찬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7절은 세상의 군사력, 세상의 힘을 통해서 승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어떤 사람들은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만 왕과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무엇이 인간적인 노력이고 무엇이 세상의 병거와 말을 의지하는 것이며 무엇이 세속적인 지혜란 말인가?

이를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기도는 전혜 하지 않으면서 노력에만 의지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도와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세상의 병거와 말을 의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노력이요 비성경적인 신앙의 자세입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할까요?

믿음이 생기도록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한 사람에게 먼저 나타난 것은 기도에 대한 확신입니다.

왕과 백성은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확신을 선포한 것입니다.

적군은 반드시 패배하고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입니다.

 

환난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만사형통 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을 위한 중보기도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구원의 힘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분명히 들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환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성막 밖에서 왕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강한 믿음이 생깁니다.

결과를 보고 믿지 말고 기도를 통해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르게 인도해 줄 것입니다.

 

 

 

 

 

 

 

 

 

 

 

 

 

 

 

 

 

 

 

 

 

 

 

 

 

 

 

 

 

 

 

 

 

 

 

 

시편 21:1~13

20편에 전쟁을 나가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의 마음을 갖고 왕과 백성은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특히 백성은 왕을 위해 중보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핵심은 시편 20:7절입니다.

그 기도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21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서 환난 날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시편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도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에서 왕이 나오면 일차적으로 다윗입니다.

2차 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위험과 권능에 대한 말씀입니다.

3차 적으로는 내가 받게 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다윗과 백성은 환난 날에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기도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1~2절은 고백에 대한 기도의 응답으로 기뻐합니다.

환난 날에 주의 힘, 주의 구원으로 승리케 했다는 것에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20:4절에서 마음의 소원대로 응답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입술의 요구도 들어주셨습니다.

환난 날에 구원해 달라는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기쁘고 감사합니다.

1~2절은 그 기쁨이 얼마나 큰 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각종 기도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응답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에 속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마음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이 응답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마음에 속 들어야합니다.

 

백성들은 다윗에게 기도 응답뿐만 아니라 더 큰 은혜를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모든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이 무엇을 알게 했을까요?

3~6절입니다.

하나님이 왕의 기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응답하셨느가를 노래합니다.

풍성한 복, 순금 관, 장수, 구원, 존귀, 위엄, 지극한 복으로 표현합니다.

다윗은 이 복이 하나님께 왔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도록 했습니다.

3-하나님이 넘치는 축복을 주심을 알게 했습니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영접하심을 노래하도록 했습니다.

4-하나님이 생명을 연장해 주셨음을 알게 했습니다.

5~6-하나님이 존귀와 위험으로 높이 세우셨음을 알게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자신을 찬송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영광을 받지 않습니다.

잘 되면 보통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다윗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태도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놀라운 태도입니다.

성공한 후 변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하면서 은근히 자기를 내세우기 일쑤입니다.

 

7절은 시편 20:6절과 같은 구조입니다.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인해 왕은 영원토록 흔들리지 않게 된다고 선언합니다.

다윗이 여호와를 의지했고, 하나님의 뜻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 인애를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했습니다.

 

8~12-백성은 왕이 미래에도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찬양합니다.

원수는 한 번의 패배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모든 원수들, 미워하는 자들, 원수들과 그들, 그들의 후손, 그들의 자손, 그들이, 그들을로 표현되는 원수들은 미래에도 계속 대적자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승리할 것입니다.

 

이렇게 확신한 이유는 체험이 미래에 대한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미래에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원수들까지 승리했을 말씀하십니다.

승리가 이미 주어졌음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승리를 주셨습니다.

 

13-주님의 뜻에 온전히 맡깁니다.

기도응답에 대한 태도를 교훈합니다.

 

 

 

시편 22:1~21

메시야 시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예언을 한 시입니다.

16개의 메시야의 시가 있습니다.

2, 8, 22, 24, 40, 41, 45, 68 69, 72, 89 91 102 110, 118편입니다.

22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절규하신 말씀입니다.

 

어떻게 이런 100년 뒤에 오실 메시야를 예언할 수 있는가요.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가능합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지만 하나님은 시간 넘어에 계십니다.

다윗이 감동되었을 때, 장차 오실 메시야도 이런 고난을 겪을 것이라고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인이 가장 흔든 경우가 언제 일까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입니다.

진짜 고통, 고난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응답하시면 견딜 수 있습니다.

 

다윗도 나를 버리셨는가? 숨어 계신가? 돕지 않는가?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다윗에게도 응답하지 않으셨구나.

이는 어둠의 터널, 짙은 어둠 속에서 씨름, 버림받은 사람의 심적인 절망을 표현입니다.

 

언제 이런 고독과 절망의 순간이 있었는가?

질병을 앓다가 소망이 끊어지는 것을 느낄 때, 심적으로, 영적으로 절망을 느낄 때입니다.

1~2절은 절망에 빠져서 몸부림치고 있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기도해도 응답하지 않을 때, 신앙인만이 느끼는 고통입니다.

이 욥은 고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3:8~10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30:19 20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예수님은 이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버림받았고, 실제로 죽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로 부르짖었고,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고통은 예수님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뤄졌습니다.

다윗의 시적인 표현이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당했습니다.

다윗이 괴롭다는 표현이지만 예수님에게 실제였습니다.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는 예언의 성취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룬 승리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해야 23편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진정한 승리가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예언 시입니다.

 

좀 다른 이야기인데 시편의 순서를 보면 또 다른 은혜가 있습니다.

20편 전쟁을 나가기 전에 기도입니다.

21편은 승리의 기쁨과 감사를 드린 기도입니다.

22편은 고통 중에 부르짖은 기도에 하나님의 무응답입니다.

승리했는데, 왜 고통이 찾아왔을까요?

세상의 승리가 줄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 얻은 자에게 찾아온 것은 공허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응답에 대한 갈급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임재를 애타게 기다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버림받은 고통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3~5절에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지향할 바입니다.

응답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찬송 받으실 분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과거에 어떤 기도에 응답하셨는가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여호수아 기도했더니 응답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을 믿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옛날을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럴 때 부르짖을 때 들으셨는데, 나의 기도도 들으시겠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6~11-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탄식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조롱받고 피하는 존재입니다.

비웃고 입술로 츠츠거리고, 머리를 흡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빈정댑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한 줄 아세요.

동정하지 않고 벌레 취급합니다.

침을 뱉고, 머리를 흔듭니다.

빈정대고 조롱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했고, 사람에게 버림을 당했습니다.

철저히 버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을 위해 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9~11절은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알을 깨는 아픔을 이겨내야 합니다.

고통을 잊으려는 노력 때문에 심각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12~21-대적할 수 없는 환경에 처했습니다.

그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14~15절입니다.

마음이 물처럼 녹아버렸습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습니다.

인간이 당한 최악의 상황입니다.

 

19~21절은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반드시 구원하셨습니다.

 

고통, 고난을 통과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감사의 찬송이 나옵니다.

눈물로 시작했다가 기쁨과 찬양으로 마칩니다.

결국은 감사입니다.

깊은 밤을 만나도 아침의 찬란한 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

왜 나를 버렸느냐도 믿음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표현할 수 있다는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23:1~6

시편 1편과 23편 가장 많이 알려진 시입니다.

양 떼를 이끄는 목자와 시편 23편의 말씀이 담긴 액자를 보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신뢰한 시로 분류합니다.

 

이 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말씀이 있습니다.

바른 믿음 생활에 대한 6개 조항으로 해석합니다.

믿음의 선포로 봅니다.

1)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1)

부족함이 없기에 아낌없이 나누는 것입니다.

2) 그가 나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기에 나는 평안하게 하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2)

늘 평안의 누려야 합니다.

불안에 오면 주 안에 있기를 잊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3) 내 영혼을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는 선언입니다.

날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날마다 새영혼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침마다 새로워야 합니다.

4)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5) 내 잔이 넘칩니다.

원수 앞에서 모라는 듯이 승리의 잔을 드는 겁니다.

영적인 권위가 주어졌기에 잔이 넘치는 겁니다.

여호와이레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6) 여호와의 영원히 삽니다.

죽음을 넘어섰는데,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삽니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삽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삽니다.

불리한 조건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해석입니다.

인칭의 변화로 시를 구분합니다.

1~3절은 하나님을 3인칭으로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4~6절은 하나님을 2인칭으로 부루고 있다고 합니다.

원어로 보면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1~3절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에서 나온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묵상에 대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4~6절은 묵상 중에 은혜가 충만하게 되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직접 대면하듯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중에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것으로 봅니다.

인도와 사랑이 커서 직접 기도하고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당신께서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 다른 시각은 공급하심과 보호하심으로 시를 구분 합니다.

부족함을 공급하시는 하나님, 어려움에 보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봅니다.

5곳의 장소를 강조합니다.

푸른 초장, 물가입니다.

배고프고 목마를 때 필요한 장소입니다.

의의 길은 잘못된 길로 빠졌을 때 필요한 길입니다.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는 위기를 만났을 때를 상징합니다.

잔치는 보상과 축복을 상징합니다.

여호와 집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5가지 장소는 인생을 살면서 한 번 정도 맛보는 형편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인생에 겪는 다양한 체험에서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1절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묵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목자되신 하나님이 다양한 형편에서 채우십니다.

 

2절입니다.

목자가 양 떼를 인도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싱싱한 풀밭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게에 1절의 고백처럼 내가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생존을 책임져 주신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은 영혼을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지치고 쓰러질 수 있는 상황에서 회복시켜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하나님의 명예 때문에 이 일을 행하십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금송아지를 섬겼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 백성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에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에 죽였다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 명예 때문에 뜻을 돌이키십니다.

 

신체적으로 지쳬 있을 수 있고, 정신적으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재정적으로나 인간관계 측면에서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인해 회복된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망하는 것 좋은데, 하나님의 이름이 손상이 갈 텐데요.

내 주변에 사람들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별로 인 것 같다고 할텐데요.”

하나님의 이름, 명예를 위해 저를 의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합니다.

 

4절입니다.

양들이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밤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늑대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전쟁터입니다.

 

그런데 두렵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 골짜기는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한 삶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팡이는 양 떼를 공격하는 들짐승을 공격할 때 사용됩니다.

막대기는 양 떼를 돌보고 통제할 때 사용됩니다.

광야를 인도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입니다.

마태복음 28:20절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사망의 꼴짜기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5절입니다.

원수는 늘 있습니다.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승리의 잔이 넘치도록 채우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명예를 회복시켰습니다.

 

6절입니다.

현재의 확신이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집에 거하게 됩니다.

 

다윗은 부족함이 없는 인생입니다.

군인이며 왕입니다.

대단한 신앙인입니다.

 

 

 

 

 

 

 

시편 24:1~10

사무엘하 6장을 배경으로 쓴 시로 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오벧에돔 집에 복을 줍니다.

다윗이 오벧에돔 집에서 다윗성까지 법궤를 모시고 옵니다.

만군의 왕이 다윗성에 들어오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배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어떤 예배자의 예배를 받는가?

 

하나님이 누군신지를 알아야 찬양하게 됩니다.

세상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건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왕이십니다.

자연만 봐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이 해결되면 인생의 99%가 해결됩니다.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많은 것이 햐결됩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같이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내 것이 아니니까 죽어도 두고 가는 겁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인생이라는 겁니다.

 

3절은 시온산에 오를 자 누구인가?

누가 예배드리는 자인가?

누가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는가?

시온을 거룩한 곳으로 부르는 이유는 그곳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입니다.

 

4절은 대답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이어야 합니다.

손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회개하는 삶입니다.

깨끗한 그릇을 씁니다.

인격과 삶이 깨끗해야 합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뜻을 허탄한 데에 두는 것과 거짓 맹세하는 것은 우상숭배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 다른 것을 경배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갈라진 자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 자는 성전에 들어가 여호와를 에배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에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5절은 약속입니다.

누가 누리는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과 의를 줍니다.

영혼이 잘되고 고난을 이기는 힘과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온전한 사람이 의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6절은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야곱은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삶을 삽니다.

얼굴을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를 구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따라오는 복입니다.

다윗은 7~10절에서 하나님을 영광의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적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7-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는 성문이 위로 올라가면서 열리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성문을 통해 들어오십니다.

승리하신 하나님이 성문을 통해 들어오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합니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십니다.

전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들어가십니다.

예루살렘을 성을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찬양으로 봅니다.

 

우리의 왕은 누구인가?

개선가를 크게 부르며 기쁨으로 환호하며 맞이해야 할 영광의 왕은 누구인가?

 

법궤와 함께 들어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임마누엘을 갈망하는 다윗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25:1~22

알파벳 시입니다.

다윗은 기도에 관한 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다윗이 어떻게 기도했는가를 시편에서 많이 만나게 되는 이유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여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자기가 자격이 있어서나, 공로가 있어서 기도의 자리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문제를 보기 앞서서 하나님을 먼저 바라봤고, 하나님의 성품에 집중했습니다.

 

6절을 보면, 주의 성품은 긍휼과 인자입니다

성품에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달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떻게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까?

4절입니다.

, (8, 9, 10, 12)입니다.

하나님의 길과 나의 길이 있습니다.

 

다윗에게도 7절에 죄와 허물의 길이 있습니다.

반항했던 길들입니다.

다윗도 젊었을 때는 자기의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7-젊은 시절에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세요.

이유 없는 반항했던 잘못된 길들을 기억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길로 택할 것인가 나의 길을 택할 것인가?

내 맘대로 살면 편한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길로 가라고 할까?

하나님이 세상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라고 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제품의 사용 설명서가 있습니다.

카센터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차가 오토인데, 수동으로도 운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장님이 정말로 몰랐나고 하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고 운전만 합니다.

충분히 누리지를 못합니다.

 

성경은 인생의 사용 설명서입니다.

연구하고 배워야 합니다.

익숙하게 되면 잘 알아서 살게 됩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안물어 봐도 알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하나님의 길을 가르쳐 줄까요?

 

9-온유한 자에게 가르쳐 줍니다.

온유는 신분이 낮고 비천한 상태의 사람, 하나님 앞에서 비천하게 여기는 자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왕인데, 온유한 자가 되어있습니다.

겸손한 다윗에게 주의 길을 가루쳐 줍니다.

 

12-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의 택할 길을 가르쳐줍니다.

주님을 섬겨 따르는 자에게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줍니다.

 

13-그런 사람은 평안히 살고

14-친밀함을 누립니다.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시고 자신의 언약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15절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물=덫에 걸리지 않습니다.

악에 덫에 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막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길을 따라갑니다.

 

16~22절은 잘 사는데, 근심도 있습니다.

죄를 사해주옵소서, 죄에 민감한 사람, 죄 사함을 고백할 줄 아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피할 곳이 하나님이다.

16~~22 개인의 탄식으로 시작해서 공동체로 확대됩니다.

구원하소서

가르치소서

용서하소서

탄식하는 이유는 19절에 알 수 있듯이 원수들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인의 원수가 아닙니다.

공적인 원수들입니다.

22절의 공적인 기도로 끝냅니다.

이스라엘을 구해달라는 것입니다.

왕이기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데, 내가 넘어지면 이스라엘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26:1~12

다윗은 완전한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완전함은 비난받을 것이 없는 삶, 오점이 없는 삶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6:8~9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를 완전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어떻게 노아가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방주에서 나와서 수치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완전한 자로 불린 이유는 8절의 말씀처럼 노아가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은 도덕적인 완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바른 관계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완전하게 살았다고 주장합니다.

이유가 3절입니다.

1) 주의 인자하심입니다.

인자하심은 당신의 실패함이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항상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사모하고, 받고 살았습니다.

2) 진리=당신의 신실함에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변함이 없는 주님의 진리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완전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스스로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비난받을 것이 없는 삶, 오점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완전함의 특징입니다.

나의 교제권이 누구인가를 말합니다.

1) 허망한 사람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남을 속이는 사람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2) 간사한 사람, 외식한 사람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3) 악을 행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어울리면 물들게 됩니다.

환경이 중요합니다.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영향을 받습니다.

섞이지 말아야 한다.

 

시편 1: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사사기는 복 없는 사람의 삶을 보여줍니다.

사사기는 그들을 쫓아내지 않고, 함께 살고, 동화되었고, 타락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완전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됩니다.

1) 6-주의 제단을 사모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죄씻을 받고 살았습니다.

2) 7-하나님의 찬양, 놀라운 일들을 간증하면서 살았습니다.

3) 8~9-교회공동체를 좋아했습니다.

자기 관리를 잘했습니다.

영적인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자기의 영혼을 부탁합니다.

자녀답게 죽게 해 달라고 합니다.

보호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4) 10-악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기도합니다.

뇌물과 선물의 차이가 있습니다.

뇌를 굴리면서 주는 것은 뇌물, 선한 마음으로 주는 것은 선물입니다.

5) 11-완전함에 행하오니, 이 삶을 이끌어 가면서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있어야 완전함이 유지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6) 12-평탄한 길은 안전한 길입니다.

거룩한 무리 속에서 예배하면서 살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사람과 환경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작지만 영적인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밥상, 한국기행, 극한직업, 나는 자연인이다.

행복할 것이 없는 분들로 보이는데, 행복하다고 하는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환경 속에서 감사하다고 하면 행복한 것입니다.

불행하다고 선택하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넌 불행해야 돼 해도 나는 행복하다고 하면 행복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충분히 경험한 사람입니다.

 

 

 

 

 

 

 

 

 

 

 

 

 

시편 27:1~14

다윗 시편의 반 이상은 고난과 역경을 만나서 하나님께 부르짖은 내용입니다.

다윗의 감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은 공포,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실은 마음이 떨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불안, 불만, 부족의 문제로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 해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공포를 최소화할 수 있고, 다룰 수 있고, 자기를 지킬 수 있습니다.

1~6-공포 위기 속에서 신앙고백입니다.

7~12-공포와 위기 속에서 기도입니다.

13~14- 기도 가운데 갖게 되는 확신입니다.

 

다윗이 처한 현실은 공포를 주기에 충분합니다.

2~3절은 다윗이 직면한 현실입니다.

악인들, 대적, 원수들, 군대, 전쟁입니다.

전쟁은 정말 무섭다고 합니다.

영화가 아닌 실제 전쟁터에서는 참호 속에서 손만 내밀고 총을 쏜다고 합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살았습니다.

 

1. 확실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신앙고백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두렵지 않다. 아무리 환경이 무서워도 하나님이 있는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겠느냐.”

현실을 느끼는 대로 고백한다면 다윗처럼 고백할 수 없습니다.

믿는 것과 느끼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나는 염려가 되지만 하나님께 맡겼으니 평안하다고 고백합니다.

감정에 지배받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을 배워야 합니다.

감정의 말인가? 믿음의 말인가?

감정의 말만 하면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믿음이 좋을수록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다, 구원이다, 생명의 능력이다, 여전히 태연하다고 믿음의 고백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4~6절입니다.

청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청하고 싶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매일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새벽기도이고요, 큐티입니다.

예배를 먼저 드리는 살고 싶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는 해결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인식과 말씀인식이 있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에는 천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구하는 것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믿는 대로 고백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진실해야 합니다.

나 다른 것 소원 없어요,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요.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7~12

믿는 바를 고백하는 사람은 반드시 기도합니다.

믿는 바를 바라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다윗은 기도를 주의 얼굴을 찾는 것으로 봤습니다.(8)

 

13~14

흔들리지 않은 마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나는 안 망한다.

기도에서 나오는 확신입니다.

공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담대할 수 있고 강할 수 있습니다.

영의 양식을 날마다 먹고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신앙은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기도-담대해졌습니다.

공포가 노크할 때 믿음이 나갔더니 거기에 아무도 없더라.

 

 

 

 

 

 

 

 

 

 

 

시편 28:1~9

시편 26편과 유사합니다.

시편 26편에서 다윗은 완전한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완전함은 비난받을 것이 없는 삶, 오점이 없는 삶을 가리킵니다.

26편에서 다윗은 악인들의 윤리적인 삶을 대조를 이룹니다.

시편 28편에는 자신을 악인들과 함께 심판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개인기도 시작해서 기도의 확신을 갖게 되고 중보기도로 마치게 됩니다.

1~5-도움을 요청합니다.

6~8-찬양과 확신

9-4개의 중보기도

 

1~2절은 여호와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장면입니다.

1-하나님은 나의 반석과 같은 분입니다.

반석은 보호, 안전, 피난처의 상징입니다.

다윗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답답한 현실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그래서 죽을 것만 같습니다.

이런 현실은 우리도 가끔 만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은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기도의 일차적인 응답입니다.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응답입니다.

이 자체가 복입니다.

 

고통은 살아 있는 자가 느끼는 것입니다.

나병은 고통을 모르는 질병입니다.

영혼이 산산조각 났는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벌입니다.

다윗은 죽을 것만 같지만 기도하고 있습니다.

 

2-성소를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손을 들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항복한다는 표시입니다.

손을 드는 순간에는 악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의지하겠다는 싸인입니다.

 

3~5절은 위기 상황에 빠뜨린 악인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악인들은 입과 손으로 죄를 짓습니다.

3~5-손으로 악한 일을 하면서 입으로 화평을 말합니다.

그래서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사탄의 일꾼도 의인처럼 말합니다.

주변에 위선자가 많습니다.

조폭과 같은 위악자가 차라리 낫습니다.

선한 처하면서 악한 일을 하는 것을 더 나쁘다고 말합니다.

의로운 척하면서 속으로 대우받기를 원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6-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게 됩니다.

각 권의 마지막에 나오는 축복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옵니다.

하박국의 응답과 같습니다.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강 같은 평화가 온 것입니다.

 

이대로 쓰시든지, 고쳐 쓰시든지, 데려 가시든지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대부분 고쳐 쓰십니다.

하나님은 재활용에 능하십니다.

 

7~8-하나님이 들으셨다는 확신이 오면 이런 찬양을 하게 됩니다.

손에 쥔 것이 없지만 준 것처럼 찬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미래를 앞당겨 사는 능력입니다.

 

9-절박한 사정에 나왔는데 믿음으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백성을 위한 중보자로 나서게 됩니다.

개인기도가 중보기도로 끝나게 됩니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수렁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영혼뿐만 아니라 병, 아픔, 의심, 낙담, 절망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하는 사업에 복을 주옵소서,

그들의 목자가 되시고,

그들을 인도하소서,

하나님이 들고 다녀주옵소서

 

다윗은 위험한 상황에서 흔들리는 않는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반석과 요새는 흔들리지 않음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위선적인 악인들로 인해 마음이 고통스럽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을 겁니다.

겉으로는 미소 짓지만 마음 속으로는 악으로 가득 찬 위선자들을 보면서 인간에게 실망하고 분노했을 겁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기도의 능력은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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