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12~28절
세겜에서 북쪽에 있는 도단은 이스르엘 평원의 일부분입니다.
일전에 세겜에서 일도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된 나머지 요셉을 보내서 형들이 양떼를 잘 돌보고 있는지 보고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던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도 사랑하고 염려가 되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형들이 멀리서 오는 요셉을 보고 형들이 죽이기를 꾀했습니다.
먼 길에서 온다는 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최소한 먹을 것이라도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이기로 모의 하는 것은 아주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죽이면 그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보자고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미워도 종으로 팔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요셉 개인의 입장으로 생각할 때, 형들이 팔았다는 것으로 종살이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당시 종이 되는 경우엔, 전쟁 포로가 되어 종이 됩니다. 또는 빚은 지면 종이 되기도 합니다. 형들에게 팔렸다는 것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수백 번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장면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두 명의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르우벤과 유다입니다.
레아의 자식들입니다.
22절, 29절은 르우벤의 행동과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죽이자고 했습니다.
살리자고 한 사람은 르우벤입니다.
르우벤은 살려서 아버지에게 돌려주려고 했습니다.
구덩이에 집어넣자고 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르우벤의 기지에 의해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맏형다운 행동을 했습니다.
르우벤이 이렇게 행동한 것은 과거 아버지의 첩을 범한 잘못을 깨달아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형들은 밥을 먹고 있습니다.
요셉은 구덩이에게서 애걸했습니다.
르우벤이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르우벤은 몰래 요셉을 커내서 돌려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상인에게 팔자고 제한을 한 이는 유다입니다.(26~27절)
유다는 구덩이에 놓아두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팔자고 했던 것입니다.
유다도 요셉을 살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르우벤과 유다의 역할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공동체 안에는 분란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처럼 미숙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은 서로 다른 두 생각의 충돌이라고 합니다.
생각의 차이는 서로 인정해야 하는데, 나쁘다와 옳다로 가면 큰 싸움이 됩니다.
생각이 차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끌고 가면 갈등이 커집니다.
부산까지 가는데 길을 선택하는 것은 취향문제입니다.
갈등이 없기를 바라면 안 이뤄집니다.
화해시키는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그가 바로 르우벤과 유다입니다.
중재로 살아왔나, 한쪽에 편을 들었습니까?
우리를 화평케 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피스메이커가 필요합니다.
르우벤과 유다는 사람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미움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15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형들은 요셉을 향한 미움 감정을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습니다.
요셉이 힘들고 안타깝지만 하나님은 요셉이 견디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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